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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경기도 내 산성 및 보루에 대한 최소한의 관리를 위해 자치단체에서 먼저 향토유적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자치단체는 향토유적으로 선정할 경우 복원·관리비 100%를 자체 예산으로 충당해야 해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이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것을 문화재로 정의하고, 지정 절차 및 관리 등을 관련 법령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
 

국가·시·도 지정 문화재들과 달리
복원·보호·관리에 많은 예산 들어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지자체도 있어

지정 주체별로는 국가지정문화재(문화재청장이 지정), 시·도지정문화재(시장·도지사가 지정)로 구분되며, 국가지정문화재는 사적, 국보·보물, 천연기념물, 명승 등으로 나눠 차등해 보호하고 있다.

국가 또는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면 복원과정을 거쳐 지속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관리한다. → 표 참조

문화재별 차이는 있지만, 국가 지정문화재의 경우 국비 100%가 지원되고, 시·도지정 문화재도 국비(70%)와 시·도비(15%)가 지원된다. 하지만 향토유적의 경우 시·군비 자체예산만으로 복원·관리를 진행해야 한다. 자치단체마다 향토유적 지정을 꺼리고 있는 이유이다.

특히 산성의 경우 많은 예산을 투입해 오랜 기간 복원을 해야 하고, 이후에도 보호·관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예산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예산이 많지 않은 자치단체는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도내 산성의 경우 포천 보개산성, 포천 성동리산성, 안산 성곡동산성 등 약 5곳만 향토유적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경기도 내 한 자치단체 관계자는 "한번 예산을 투입해 끝나는 작업이라면 고려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많은 예산을 투입해 관리해야 하는 문화재 특성상 지자체마다 향토유적 지정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문화재청 차원의 기본관리계획과 지원이 없으면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향토유적 지정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발굴조사 등의 절차를 토지소유주 동의 없이 강제로 진행할 수 없도록 한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의 조항도 자치단체 차원의 문화재 관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 산성 대부분이 사유지이기 때문이다. 

 

 

문화재청 "국가 지정 위해 먼저 해야"
도내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곳 5곳뿐

 

문화재청 관계자는 "산성이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의지를 갖고 향토유적 또는 도 지정 단계를 거친 후 문화재청에 심의 신청을 할 수 있어 현시점에서는 향토유적 지정이 먼저다"라며 "지자체마다 문화재 보호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는 만큼 향토유적 지정과 관리 등에 관해 지역별 특색에 맞는 보호·관리 제도를 조정해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지역 산성은 대부분 삼국시대에 지어졌다. 쉴새 없이 국경이 뒤바뀐 혼돈의 삼국시대. 삼국의 경계가 지금의 경기도지역에 집중돼 있었다. 당시 공격과 방어를 용이하게 하고 물고기잡이 등 생계를 위해 한강유역을 차지하려 했던 삼국의 일촉즉발, 위태롭던 상황이 산성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백제가 가장 먼저 한강유역을 점령하고 오랜 기간 경기도를 점유하면서, 이를 지키기 위해 건립한 산성들이 가장 많다.

이천의 설봉산성, 고양 북한산성, 성남·광주 남한산성, 오산 독산성 등이 백제에 의해 초축됐다. 북한산성, 남한산성, 독산성 등은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돌을 높게 쌓아 올리는 등 강력하게 개보수해 수도를 지키는 산성으로 활용했다.

고구려도 많은 산성을 쌓았다. 고구려는 연천 당포성을 비롯 연천 호로고루, 포천 반월성지 등 주로 경기북부에 성을 포진시켰다. 한강 이남에는 용인 석성산성이 유일하게 고구려가 초축한 성으로 서기 475년 장수왕이 백제를 공략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신라가 건립한 경기지역 산성은 김포 수안산성이 유명하다. 한강유역 쟁탈전에서 밀렸던 신라는 진흥왕 시대에 한강 하류를 장악하고 서해안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산성을 건립했다.

고려 시대에는 산성들이 방어를 위한 개념에서 행정통치를 위한 기능으로 확장된다. 화성시 태안읍 수원고읍성과 평택 비파산성 등은 당시 행정의 중심이자, 주민보호를 위한 방어용으로 지어졌다.

조선 시대에는 남과 북의 외침으로부터 수도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삼국시대 만들었던 기존 성들을 보다 강력하게 보수해 사용했다. 조선 시대에 초축된 수원화성은 행정통치를 위한 대표적인 읍성으로, 현존하는 읍성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성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성곽의 일부가 파손되고, 손실됐지만, 초축 당시의 자료인 '화성성역의궤'를 참고해 복원돼 관리되고 있다.

재단법인 한성문화재연구원 김병희 원장은 "경기지역 산성은 삼국시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면서 많이 지어졌고, 이후 중국과의 교류를 관장하거나 방어용으로, 또 도성을 방어하기 위한 성곽들로 다양하게 만들어져 활용됐다"며 "특히 고대 산성들은 행정 치소를 겸하면서 성내에 건물지, 집수지 등 많은 시설물들이 설치된 것들도 많아 고대 문화 및 건설토목 기술력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말했다.

/김대현기자 kimd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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