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016년 근절 원년 예산 반영없이 '발표'에만 그쳐
아동 자립지원 지자체에 전가… 한발 늦게 '즉각분리'
경기도 위원회 유야무야·심리치료센터 1년만에 종료
아동돌봄과 신설후 보육 사각지대 발굴 '불행중 다행'

지난해부터 '공공성 강화' 지자체 전담공무원 배치
경찰과 따로 조사 '가정파탄범' 등 폭언·협박 일쑤
거의 매일 야간 당직에 신고 1건 1년간 관리하는 셈
피해아동쉼터·보호시설 턱없이 부족 충청도 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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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입양아동학대사건, 이른바 민영이사건의 첫 재판이 다음 주로 다가왔다. 서울 양천구 16개월 입양아 학대사망사건인 정인이 사건 이후 그래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리의 기대를 무참히 깬 사건이다.

가정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동학대의 특징인데, 민영이 사건은 그 전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가 주목해야 할 사건이기도 하다.

어린이집도 가지 못했고, 코로나19로 바깥 외출도 쉽지 않아 양부의 지속적인 폭행에도 가족 외에는 누구 하나 민영이 상태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다.

만약 정부 등 우리 사회가 보다 촘촘한 보호망을 구축하고 있었더라면, 그래서 가정 안에 숨어있는 아이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민영이는 지금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 그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나

정부가 아동학대 근절을 부르짖는 해에는 유독 잔인한 아동학대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전말이 만천하에 드러나면 국민적 공분이 들불처럼 일어난 후 가장 마지막에 정부가 대책을 발표하는 수순이다. 이건 '공식'과 같다. 사건이 잔혹할수록, 사람들의 분노가 클수록, 정부가 발표하는 대책의 가지 수도 정비례한다.

2016년은 정부가 아동학대 근절의 '원년'으로 삼은 해다. 그 해에는 유독 아동학대로 아이를 살해한 후 암매장하는 사건들이 많았다. 평택 원영이 사건이 그랬고, 부천에서 백골로 발견된 여중생이 그랬다.

생애주기별 아동학대 예방체계를 강화하겠다, 조기발굴이 어려운 위기 아동을 위해 시스템을 구축하겠다, 가해부모에게서 피해아동을 우선 신속하게 분리하겠다 등이 아동학대 근절 원년에 쏟아진 대책들이다. 그렇다면 정말 달라졌을까.

예산을 보면 알 수 있다. 참여연대가 2017년도 보건복지예산을 분석한 자료를 살펴보면 위의 대책과 관련된 예산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딱 잘라 비판했다. 그나마 늘어난 요보호아동자립지원사업 역시 지방자치단체에 전가하는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2014년부터 아동학대사업이 보건복지부 예산을 떠나 기획재정부의 '복권기금', 법무부의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서 충당됐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인 2014년, 보건복지부는 칠곡계모 아동학대살인사건, 울산 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이 일어난 후 '아동학대 예방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아동보호전문기관 확충 및 전문성 강화를 강조했다.

이뿐일까.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아동학대 문제를 전담하는 '아동학대대응과'가 신설된 것은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19년이다. 또 아동학대 현장 개입을 위해 지자체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바로 지난해인 2020년이며, 정인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가해부모와 피해아동의 즉각분리제도가 시행됐다.

이쯤 되면 정부의 대책은 한발 늦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따라갈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된다.

# 아동학대 현장의 최전선, 자치단체는?


아동학대는 비단 정부만의 책임일까. 생각해보면 아동학대가 주로 벌어지는 '가정'은 자치단체와 가장 맞닿아있다.

경기도를 비롯해 도내 31개 자치단체 역시 지방자치의 기치 아래 자율적인 정책 개발과 예산 편성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지난 세월, 자치단체는 무엇을 했을까.

아동학대와 관련해 경기도가 발표한 정책 및 보도자료를 검색해 그 후의 행적을 따라가 보았다. 2008년 경기도는 경기도아동학대예방위원회를 신설했다.

당시 보도자료에는 경찰, 아동보호기관, 의료기관, 변호사 등과 정기회의는 물론 필요에 따라 수시 회의를 하며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지만 현재 해당 위원회는 사라졌고 그간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알 수 없다.

2012년엔 경기아동심리치료센터를 개소했다. 경기도 내 민간 아동복지시설에 센터를 설치해 학대아동 심리치료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업은 1년짜리 사업으로 종료됐다.

이를 담당했던 복지시설 측은 "당시 도 예산을 지원받아 심리치료센터를 개소했는데 그 해에만 운영하고 다음 해 폐쇄된 걸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대신 복지시설은 경기도에 위탁받아 운영하는 경기남부아동일시보호소에 심리치료팀을 운영하며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 외엔 교육, 토론회, 자문위원회 정도의 단편적인 정책들이 즐비한데, 평택 원영이 사건으로 전국이 들끓었던 2016년 경기도는 '학대아동 예방 및 조기발견 시스템 구축 관계기관 회의'를 열고 처음으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경기도를 필두로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시·군 자치단체, 경찰청이 합동 TF팀을 구성하고, 읍·면·동 주민센터와 통장, 반장, 이장 등 각종 협의회 등 지역사회 리더들이 학대아동 조기발견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등이 주요 골자였다.

그렇게 대대적인 발표 이후 등장한 것이 경기북부아동보호정책협의회였는데, 이 역시 한차례 회의를 진행했다는 보도자료만 있을 뿐 이후 소식은 찾을 수 없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경기도가 2019년에 아동학대 등 아동정책을 전담하는 '아동돌봄과'를 처음 신설하며 양육수당을 받는 가정 아동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지난해엔 만 3~6세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가정의 아동을 전수조사해 위기아동 17명을 발굴하기도 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주민등록사실조사사업과 연계해 통장, 이장 등이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가정 양육 등을 점검하고 문제가 있는 가정의 경우 직접 공무원이 나가 현장도 확인한다. 문제가 발견되면 보호시설 연계 등 후속조치를 하며 아동학대 예방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 이제는 달라질 수 있을까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가정파탄범이다" "(아동학대전담공무원한테) 내가 학대를 당하는 것 같다."

경기도 내 지자체 아동학대전담공무원들이 현장에 나가 아동학대 가해 부모에게 듣는 무수한 말들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하 전담공무원)'제도가 시행됐다.

아동학대전담공무원 자체사례회의
시흥시 아동학대전담공무원 자체사례회의 모습. /시흥시 제공

이들 전담공무원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수행하던 아동학대 관련 현장조사 등 관련 조처를 전담한다. 아동학대 현장에 공권력이 개입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수십년을 돌고 돌아 드디어 공공의 손길이 현장에 내려 앉았지만, 여전히 현장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어려움의 근본적 원인은 아동학대 대책을 만들 때 '탁상공론'만 펼칠 뿐 현장의 목소리는 귀담아듣지 않아서다.

아동학대는 피해아동 한 명 한 명에게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일인데, 현장은 이미 숱하게 '인력이 부족'하고 1인당 '업무가 과중'하며, 폭언 등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커 제대로 아동을 돌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외쳐왔다.

보건복지부는 1인당 연 50건의 신고를 처리하도록 배치기준을 마련했지만, 실제 현장은 인력이 부족해 야간 당직을 거의 매일 서야 하는 데다 야간 당직 수당도 없다.

게다가 신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동보호전문기관과의 사례관리는 물론 쉼터나 시설로 간 아이한테 문제가 생기면 후속 조치까지 맡아 보통 신고 1건을 1년 동안 관리하는 게 현실이다. 말 그대로 '기피부서 1순위'가 됐다.

지난해 10월부터 도내 전담공무원으로 일한 A씨는 "올해 5월까지만 벌써 300여건의 신고가 접수됐는데, 현재 (A씨가 속한 지자체의) 전담공무원은 4명이라 업무 강도가 엄청나다"며 "2인 1조여야 해서, 야간 당직을 주 3일 설 때도 있다. 당직 이후에는 대체휴일로 쉴 수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없어 쉬지도 못할 때가 많다"고 호소했다.

게다가 현장 출동이 주요한 업무인데, 별도 차량도 지원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지자체 전담공무원 B씨는 "국비로 내려온 차량 구매비는 1천만원에 그치고 나머지는 지자체가 부담해야 한다"며 "아동학대 이슈 때마다 제도는 계속 늘어나는데 현장은 이미 있는 제도도 활용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게다가 전담공무원은 주로 사회복지 업무를 맡던 공무원들로 구성됐는데, 누군가를 돕는 업무를 하다 가해 부모를 조사하며 학대 과정을 매번 지켜봐야 하는 업무로 인해 '심리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컸다.

A씨는 "우리가 따로 조사를 진행할 때마다 부모들은 이미 경찰에서 조사했고 종결됐는데 왜 경찰도 아니면서 문제를 다시 들추느냐는 식으로 실랑이하거나 폭언을 하는 일이 잦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더해 사후조치는 더 어려운 숙제다. 현재 경기도 내 쉼터와 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피해아동을 멀리는 충청도까지 내려보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지자체 전담공무원 C씨는 "지난해 자폐 아동에 대한 분리 조치가 필요했는데, 이 아이를 맡아 줄 시설이 전혀 없었다"면서 "결국 병원에서 1년 넘게 보호 중이다. 이젠 신고가 들어오면 '이 아이를 분리해야 하면 어디로 가지'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고 했다.

전담공무원들은 말한다. "쉼터·보호시설 확충, 심리치료 지원 등 최근 들어 지원하겠다는 말은 많이 나오는데 도대체 현장에 언제쯤 적용될지 이제는 가늠도 잘 안 된다."

/공지영·신현정기자 jyg@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