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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 부모 100여명이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정부의 장애인 탈시설화를 규탄하며 '누구를 위한 탈시설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1.7.26 /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

"솔직히 중증장애인과 하루만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장애인들의 탈시설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증장애인 및 그 가족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장애인 탈시설'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로 장애인거주시설 거주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지원'으로 대표된다. 장애인의 인권신장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이들을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로 정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19년 시범사업을 거쳐 지난해부터 전국적 확대 시행을 추진 중에 있으며 오는 8월에는 이와 관련한 정부의 탈시설자립지원로드맵이 발표될 예정이다. 국회에는 국회의원 68명이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약칭 탈시설지원법)'을 지난해 12월 발의해 계류 중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찬반 입장이 극명히 갈리고 있다. 특히 중증발달장애인을 둔 가족들은 기본 취지는 존중하면서도 현실에선 그 한계가 분명하다며 밀어붙이기식 제도 추진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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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 부모 100여명이 보건복지부 앞에 모였다. 이들은 정부의 장애인 탈시설화를 규탄하며 '발달장애인 가족을 죽음으로 몰고 가지 말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1.7.26 /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

26일 전국에서 모인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 부모 100여 명이 폭염 속에 상복을 입은 채 거리로 나섰다. 세종시에 소재한 보건복지부 정문에서 35℃를 육박하는 뜨거운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날만큼은 생업도 포기한 채 모였다. 이들은 열흘 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2만여 명 가까운 동의를 얻은 '시설퇴소는 우리에게 사형선고다!'라는 청원과 괘를 같이한다. 당시 청원인은 "지난 10년간 장애인복지의 주된 화두는 '탈시설'이었다. 그런데 정작 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는 발달장애인들은 탈시설 당사자임에도 제대로 목소리도 내보지도 못한 채 변화를 직격탄으로 맞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6월 광주광역시 외곽의 한 농로에서 60대 어머니와 자폐성 장애를 가진 20대 아들이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과 같은 해 3월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40대 어머니가 10대 발달장애아들과 숨진 사건을 예로 들며 "중증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벼랑 끝에 서 있다"며 정부의 탈시설 정책을 규탄하고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다.

지난 4월 통계청 기준 국내 장애인구는 263만3천여 명. 이중 거주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은 1.1%인 2만9천700여 명이다. 거주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을 살펴보면 79%인 2만3천700여 명이 지적·자폐성 장애인인 중증발달장애인이다. 정부의 장애인 탈시설 정책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은 "탈시설 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들 대부분은 신체장애인이다. 전체 등록장애인의 76%에 달한다. 그들은 시설이 필요하지 않고 지역에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시설의 도움 없이 살아가기 힘든 중증발달장애인은 다르다. 무조건적인 탈시설 요구는 명백한 폭력이며 인권침해다. 자립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에게 막무가내로 '너도 자립하라'는 것이 정당한 것이냐"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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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 부모 100여명이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정부의 장애인 탈시설화를 규탄하며 '보건복지부는 탈시설 로드맵 철회하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1.7.26 /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

이날 거리로 나선 전국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부모회 김현아 공동대표는 "탈시설만 하면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다양한 장애 유형이 고려되지 않고 이용장애인과 그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정책은 즉각적인 철회되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장애인 거주시설은 점점 줄이고 폐쇄하는 쪽으로 진행해 각 시설마다 대기자가 100명 안팎에 이르는 현실에 '입소대기자 죽어간다', '시설입소 허용하라'라며 피켓을 들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대해 "대기자로 보면 시설거주에 대한 수요가 있는데 공급이 전무한 실정이니 중증발달장애인을 돌보는 보호자들은 몇 년째 과부하가 걸려있는 실정이다. 어린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돌보고 치매 어르신들도 요양원에서 돌보는데 왜 힘센 치매 환자라고 불리는 중증발달장애인은 부모와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광주/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