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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수 성악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실력을 인정받은 바리톤 김기훈이 경인일보 독자들에게 손 하트를 만들어 보여주고 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우승을 너무나도 하고 싶었어요. 간절한 기도가 통한 것 같습니다."

올 상반기 우리나라 성악계에 낭보가 전해졌다. 세계적인 성악가들을 배출한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이하 카디프 콩쿠르)에서 바리톤 김기훈(29)이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2년마다 개최하는 세계적인 성악 콩쿠르인 카디프 콩쿠르는 쟁쟁한 실력의 가수들이 예선부터 최종 경연까지 치열한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리아 부문(Main Prize)과 가곡 부문(Song Prize)의 우승자를 가리는데, 아리아 부문에서 우승한 한국인 성악가는 김기훈이 처음이다.

오페라계의 떠오르는 신예이자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던 유망주 김기훈은 이번 우승으로 세계 무대에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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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아리아 부문에서 우승한 김기훈의 모습. /BBC 제공

 

김기훈의 다양한 색깔을 보여준 콩쿠르
이번 콩쿠르는 김기훈에게 도전의 연속이었다. 1라운드 예선 때 김기훈이 선택한 코른골드의 '죽음의 도시' 아리아는 그전까지 잘 부르지 않았던 곡이었다.

김기훈은 "평가하는 심사위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며 "열심히 노래하고 있는데 혹시 곡을 잘못 골랐나 생각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그런데 심사위원이 이 곡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처음엔 으레 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경연 이후 자료 화면을 보고서야 심사위원이 눈물을 흘린 사실을 알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곡이었던 것이다.
간절함 담아… 다양한 곡 소화능력도
예선 뜻밖의 선곡 심사위원이 눈물 흘리기도
항상 일 하는 데 있어 '최대한 평소처럼' 준비
성공 무대 좋지만 컨디션 핑계 대고 싶지 않아

결선에서는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바그너의 '탄호이저', 조르다노의 '아드레아 셰니에' 아리아를 차례로 불렀다. 각각의 분위기와 색깔이 다른 세 곡을 통해 김기훈이 가진 부드럽고 섬세한 목소리와 매력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김기훈은 "가장 잘할 수 있는 곡 위주로 골랐다"며 "다양한 색깔을 보여줄 수 있도록 처음 곡은 고전음악을, 두 번째 곡은 잔잔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세 번째 곡은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을 각각 선곡했다"고 말했다.

김기훈은 올해 카디프 콩쿠르에 앞서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콩쿠르에서 얻은 좋은 결과였지만 아쉽게 1위를 놓치다 보니 우승이 더욱 간절했다.

노래에 실린 진심과 간절함이 통한 것일까. 김기훈의 목소리는 물론 다양한 곡을 소화하는 능력까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국, 우승 트로피는 김기훈의 손에 쥐어졌다. 그는 "우승을 하고 싶었지만, 진짜 우승할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컨디션 조절 어떻게 하세요?

'컨디션 조절 어떻게 하나?'란 질문은 김기훈에게 가장 곤란한 물음이다. 컨디션 관리라고 할 게 따로 없기 때문이다. 이번 카디프 콩쿠르에서도 특별한 준비는 하지 않았다.

김기훈은 "항상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 최대한 평소처럼 하려고 한다"며 "승리에 대한 갈망, 성공한 무대에 대한 갈망도 좋지만 컨디션이란 핑계를 대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하지만 좋은 무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강하다. 세계무대에서 인정받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은 한국인인 그에게 게을리할 수 없는 일이다.

김기훈은 "오페라를 만든 나라에 사는 그들에게 견주려면 노래를 정말 뛰어나게 잘해야 한다"며 "곡에 대한 표현, 곡을 이해하는 능력은 물론 소리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여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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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김기훈이 경인일보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이런 김기훈에게도 예상치 못한 참사(?)는 있었다. 2019년에 열린 오페랄리아 콩쿠르 세미 파이널 무대에서 반주를 맡은 피아니스트가 '바리톤'인 김기훈에게 '테너' 키로 연주한 것.

김기훈은 "저는 절대음감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때는 첫 음을 치자마자 구분이 됐다"며 "시작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그만둘까 말까. 멘트를 해야 할까.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며 "온라인 스트리밍도 되고 있었고, 일반적인 오디션과 다른 경연이라 어쩔 수 없이 부르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테너 파트를 하는 분들을 존경한다"고 웃어 보였다. 이후 반주자가 잘못 연주한 것을 사과하고, 주최 측이 다시 기회를 주면서 콩쿠르 2위라는 성적과 청중상을 차지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성악 "너무 재미있다"
김기훈이 본격적으로 성악을 시작하게 된 것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학생이 뒤늦게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것이다. 성적 우수생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이후 공부에 손을 놓고 학교에서 시간만 보내다 간 학생 김기훈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고2 때였다.

누구보다 평범한 사람이지만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았던 그에게 교회 성가대 세미나에서 성악을 권유받은 것은 운명 같은 일이었다. 테스트를 받으러 간 곳에서 극찬을 받았고, 부모님을 겨우 설득했다. 그렇게 성악을 시작한 지 3~4개월 만에 전국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오페랄리아 콩쿠르 위기의 순간
세미파이널서 피아노 연주자 '테너' 키로 반주
절대음감 아니었지만 첫 음 듣자마자 만감 교차
어쩔수 없이 불러… 다시 기회 얻고 2위 입상
김기훈은 "가장 중요한 건 성악을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며 "성악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힘든 순간도 찾아왔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다르게 아무리 해도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김기훈은 "성대결절도 있었고, 마치 기억상실증이 걸린 사람처럼 성악의 기초부터 다 잊어버렸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컨트롤도 안 돼 성악을 그만두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때 은사인 연세대 김관동 교수를 따라 자신을 하얀 도화지로 만들고 새롭게 스케치했다. 스승을 온전히 따라가려고 했고, 그때부터 급격히 실력이 늘었다. "가르치는 사람의 역량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잘 맞아 떨어져 시너지가 난 것 같다"고 김기훈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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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다른 목표를 향해 가겠다
김기훈은 이 모든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 혼자만의 능력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성악을 하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여기에는 자신을 이끌어준 김관동 교수는 물론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성정문화재단이 있었다.

김기훈은 지난 2015년 성정문화재단의 성정음악상을 수상했다. 그는 "재단에서 응원부터 시작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장학금 등 어떤 형태로든 지속해서 지원해줬다"며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고, 그만큼 예술가에게 많은 관심을 두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많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때 시작한 성악
교회 성가대서 권유… 3~4개월만에 전국 우승
'성정음악상 인연' 문화재단 물심양면 지원받아
세계 5대 오페라극장에서 주연 서보는 게 목표
혹시 욕심나는 콩쿠르 무대가 남진 않았을까. 김기훈은 "없다"고 했다. 이번 카디프 우승이 어쩌면 콩쿠르의 최종 목표였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콩쿠르의 목표는 이뤘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인생의 다른 목표를 향해 가겠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이다.

그의 공연 스케줄은 2025년까지 잡혀있다. 2024년에는 그토록 바랐던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 '라보엠'으로 데뷔를 앞두고 있다. 많은 제안이 밀려들면서 부담도 되고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에게는 세계 5대 오페라극장에서 주연으로 서보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끝까지 겸손함을 잃지 않은 김기훈은 "어떤 대접을 받아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 김기훈은?

-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수석 졸업
- 하노버 음대 석사 만장일치 만점 졸업 및 최고 연주자과정 중
- 독일 하노버 슈타츠오퍼 솔리스트(2016~2019)
- 2021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아리아 부문(Main Prize) 우승
- 2019 오페랄리아 2위 및 청중상
- 2019 제16회 차이콥스키 콩쿠르 남자성악 2위 수상
- 서울국제콩쿠르 1등, Maritim wettbewerb 1preis 청중상
- 성정콩쿠르 최우수상, 성정음악상 광주성악콩쿠르 우리가곡상
- 수리음악콩쿠르 대상, 파파로티 성악콩쿠르 3등
- 엄정행콩쿠르 대상, 중앙음악콩쿠르 3등, 동아음악콩쿠르 1등, 한국성악콩쿠르 2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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