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택시호출 시장 90%를 장악하고 있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지난 2일 빠른 택시배차 서비스 '스마트호출'의 수수료를 1천원에서 최고 5천원으로 높이며 사실상 요금 인상에 돌입했다.
업계와 시민단체 등의 거센 반발로 결국 요금 인상은 철회했지만 카카오T의 시장 지배력에 맞서 공공 모빌리티 앱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더욱 힘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일 카카오T의 수수료 인상 등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수원역으로 나온 택시기사가 있다. 윤진수(54)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경기수원시지부장이다. 지난 16일 수원 전국택시노조 수원시지부 사무실에서 윤씨를 만나 그가 거리로 나오게 된 뒷이야기를 들었다.
윤 지부장은 24살이던 지난 1992년 2월16일 택시기사로 처음 운전대를 잡았다. 원래 모 공공기관에서 일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던 중 친구 소개로 택시 일을 하게 됐다.
"당시 현찰로 바로바로 소화할 수 있는 것이 택시였습니다. 남녀노소 제 차를 타고 전국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이 참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왔습니다."
첫 손님은 수원 우만동 현대아파트에서 수원역까지 차를 잡은 60대 노신사였다. 5㎞ 남짓 되는 짧은 거리였다. 아버지뻘 손님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그는 '택시운전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은 누가 내 손님이 될지, 목적지는 어디가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의외성이 그를 설레게 했다. 정확한 운임은 기억이 안 나지만, '24살 어린 청년이 택시 일을 한다'며 웃돈까지 받았다.
얼마 후엔 첫 장거리 손님도 받았다. 4명의 가족 승객이었다. 원래 수원역으로 향하던 길에 갑자기 송탄동으로 길을 돌렸다. 그렇게 윤씨는 그날 평택을 처음 가 봤다. 운임으로 1만5천원을 받았다.
평범한 택시기사로 살던 윤 지부장은 3년 만인 1995년 3월15일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는다. 당시는 카카오T의 수수료 대신 택시회사에 일정 금액을 납부하는 '사납금'의 비중이 더 크던 시절이었다.
수원 소재 다른 운수회사는 사납금을 대당 1천~2천원 올렸지만 윤씨의 회사는 1만2천원, 훨씬 큰 폭으로 올렸다. 노조 간부로 활동하던 윤 지부장은 이 문제로 회사와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웠다.
"임금협정에서 구 협약이 아직 만료가 안 됐는데 회사는 무턱대고 사납금을 올리려고 했습니다. 회사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하는 시기에 노조 내부의 혼란까지 겹쳐 대응이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회사와 투쟁을 계속하던 윤 지부장은 결국 다른 조합원 2명과 함께 해고된다.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무효소송을 거는 등 법적 대응까지 불사해 1년 만에 구제 신청을 받는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택시노조 일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돌아보면 일찍부터 회사에 맞서서 택시 노동자를 대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일한 만큼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한다는 문제의식도 있었구요."
"기사들은 모두 카카오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아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제대로 대응하기 힘든 거죠. 그래도 수원에서는 카카오 대신 수원만의 향토콜을 이용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바람이 있어요."
카카오T의 시장 장악이 점점 심해지던 지난 4월 수원시는 수원시 택시업계 3개 단체와 함께 공공 택시호출앱을 도입한다.
배차는 카카오T와 똑같이 알고리즘으로 이뤄지지만 별도의 호출비와 중개수수료는 없다. 시민 공모로 '수원e택시'라는 명칭이 붙었고, 모델은 수원시 캐릭터인 개구리 모습의 '수원이'가 맡았다.
지금은 철회됐지만 카카오측 수수료 인상 시도
독점적 지위 기반 '유료화 본색' 폐해 홍보 노력
"수원 북문에서 출생해 고등동에서 54년째 살고 있어요. 출범하자마자 5천 콜이 터졌을 때 감격스러워 환호성을 질렀죠."
수원시에 따르면 수원e택시 가입자 수는 지난달 1일 기준 3천859명에 달해 전체 수원 택시기사의 83%가 가입했다.
앞으로 모범택시 서비스를 업데이트하고 앱에서 수원의 실시간 교통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서비스 확대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공택시앱 수원e택시의 흥행에도 카카오T는 차근차근 유료화에 착수하고 있다. 지난 2일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 빠른배차 서비스인 '스마트호출' 수수료를 1천원에서 5천원으로 높이며 사실상의 요금 인상에 돌입했다.
지난 2015년 출범 당시에는 무료 서비스로 시작했지만 시장 점유율이 90%에 달하자 '유료화 본색'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요금 인상 일주일 후인 9일 그는 수원역에서 택시기사들에게 '간곡히 호소드립니다'는 제목의 유인물을 배포하기 시작했다.
유인물에는 이렇게 써 있다. "(택시 기사들은) 한 평 남짓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에서 검은 아스팔트길을 달리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희망을 가져보지만 노동 강도는 점점 높아만 가는 현실입니다. 거대기업인 카카오T블루는 4차 산업, 플랫폼 산업으로 포장돼 점점 택시산업을 잠식해 나가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배포한 유인물은 8천부. 각 사업장과 택시기사 쉼터, 충전소에는 같은 내용으로 대형 현수막 40개를 게시한 상황이다. 지난 13일 카카오T가 요금인상안을 철회했지만 그는 이 같은 활동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카카오T는 앞으로도 독점적 지위를 기반으로 요금제를 변형해가면서 수수료를 올릴 겁니다. 그 과정에서 택시기사와 시민들에게 어떤 피해가 돌아갈 수 있는지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수원e택시가 카카오T의 대항마로서 자리 잡으려면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꼭 필요합니다."
글/이여진기자 aftershock@kyeongin.com
■ 윤진수 지부장은?
▲ 1992년 2월16일 원일운수주식회사 입사▲ 1997년 7월 원일운수노동조합 제6대 위원장▲ 2002년 3월 원일운수노동조합 제8~13대 위원장▲ 2009년 3월 전국택시노련 경기지역본부 부의장▲ 2015년 3월 한국노총 수원지역지부 부의장, 수원시노동자종합복지관 운영위원▲ 2016년 2월 수원과학대학교 졸업▲ 2018년 12월 수원시 녹색교통회관 관장, 경기택시장학재단 감사, 수원노총장학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