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남 농협중앙회 안성시지부 과장
유승남 농협중앙회 안성시지부 과장은 "농협을 위해 헌신을 해온 만큼, 퇴직 후에는 지역사회를 위해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2021.8.25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

유년시절 보고 겪은 장면이 강렬해 삶의 원칙으로 자리 잡는 경우가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각각 육상과 핸드볼 안성시 대표로 뛰면서 가정형편 탓에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주린 배를 채워준 건 친구들의 부모가 싸온 도시락이었다.

이웃들의 조건 없는 '나눔'을 일찌감치 갚고 싶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시간이 생기면 틈틈이 평택의 장애인 학교인 '동방학교'를 찾았다. 학교 친구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말동무가 됐고 학교 이곳저곳을 누비며 시설 청소 등 봉사활동을 했다.

그 무렵부터 충북 음성의 꽃동네에 매달 1천원씩 후원했다. 김장철이면 동네를 찾아 주민들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활약했다. 


작년 태풍 피해 복구 직접 흙 걷어내
고향 귀국 외국인 빈자리 해결 고민
장애인 복지시설에도 20년째 후원중


유승남(56) 농협중앙회 안성시지부 과장은 동료들에게 소문난 '봉사왕'이다. 정작 이 소문을 유 과장만 모르는 듯했다. 익히 전해 들은 활동들을 되짚으며 인터뷰를 요청하자 유 과장은 "이런 인터뷰를 하는 게 동료들에게 참으로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쳤다.

지난해 이맘때 안성은 태풍의 영향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유 과장의 이웃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을회관에 흙탕물이 들어차자 손발을 걷어붙이고 직접 흙을 걷어냈다. 폭우가 지나간 뒤에는 피해를 입은 이웃들의 집에 장판과 벽지를 새로 깔았다. 당장 필요한 생필품도 나눴다. 농협중앙회 안성시지부가 발 빠른 복구에 나설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몫을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게 속썩이던 태풍이 비교적 올해는 잠잠하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불청객은 여전히 말썽이다. 농촌에서 내국인 청년들이 사라진 자리를 외국인 청년들이 메우곤 했지만, 감염병 사태가 장기화되자 일손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중간에 고향으로 돌아간 외국인이 많아 그 빈자리에 대한 농촌의 고민이 크다.

유 과장은 농협이라는 채널을 통해 일손 문제를 해결하려 동분서주 애쓰고 있다. 유 과장은 "단기라도 봉사활동 의향이 있는 기업과 단체를 지속적으로 농촌과 연결한다"며 "(이렇게) 올해 농촌 봉사활동에 참여한 사례만 14건이나 된다"고 말했다.

그의 '나눔'은 농협이라는 직장 울타리에 얽매이지 않는다. 음성의 꽃동네뿐 아니라, 안성에 있는 한 장애인 복지시설에 매월 돈과 물품을 보낸 건 이미 20년 전부터 이어온 일이다.

유 과장은 지난 1995년부터 몸담아 온 농협에서의 퇴임을 1년 앞두고 있다. 시종일관 담담한 어조로 '나눔 정신'을 전하면서 소소한 계획도 밝혔다. 어린 시절, 이웃들로부터 보고 배웠던 나눔을 넓힌다는 생각이다.

"(저와) 같이 늙어가는 농촌을 위한 일은 물론 취약 계층을 위한 사업을 이어가고 싶다. 봉사 단체라면 마다하지 않고 어디든지 참여해 이웃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