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아동학대 발생 건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3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한 '2020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피해 건수는 2015년 1만1천715건에서 2017년 2만2천367건, 2019년 3만45건으로 계속 증가했다. 학대 행위자가 부모인 경우가 2만5천380건으로 전체의 82.1%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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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2020 아동학대 연차보고서' 중 '아동학대 유형별 발생 현황'. 2021.8.31 /보건복지부 제공

정부가 아동학대를 범죄로 규정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2014년 아동학대처벌특례법이 제정된 뒤에야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학대 행위자 부모인 경우 82.1%
범죄 규정 된지도 오래되지 않아

아동학대는 한 가정 내에서 벌어진 일로만 여겨졌다. 아동학대 피해자들이 누군가에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가 아동학대를 방치했기에 생존자는 스스로 미래를 그려 가야만 했다.

사회가 아동학대에 무관심했던 때, 학대를 겪었던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동학대로부터 살아남은 이들은 한평생 트라우마를 짊어지고 살아갔다. 하지만 이들은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트라우마 전문 비영리 민간 심리치료센터 '사람마음 협동조합'이 설립된 이유기도 하다. 이곳은 임상 심리 전문가와 상담심리사 등이 함께한다. 총 22명이 일하는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그들은 매년 70여명의 새로운 아동학대 생존자를 만나고 있다. 센터 창립 멤버인 최현정 임상심리전문가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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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협동조합의 임상심리전문가 이윤경, 이송희씨(왼쪽부터) / 트라우마치유센터 사회적협동조합 사람마음 제공

민간 치료센터 年 70여명 보듬어
"설립 당시 치료비용 너무 높아"
"2012년 센터 설립 당시만 해도 어떠한 경험을 트라우마로 인식하고 심리 지원을 한다는 일에 대한 중요성이 알려져 있지 않았어요. 당시는 정신건강의학과나 심리치료센터에서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너무 높은 비용을 요구하고 있어서 이용도 쉽지 않았고요. 그래서 센터 설립을 결심하게 됐죠."

아동학대 생존자들은 중독, 자해, 자살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정체성을 형성해야 할 아동기에 경험한 학대는 성인이 돼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동학대 트라우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넘어선 그 이상의 후유증을 경험하게 돼요.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하는데요. 감정이나 고통의 강도가 학대를 경험하지 않은 이들보다 극단적인 경우가 많아요. 게다가 아동기에는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정체성을 형성해가는데 그 환경이 학대와 무관심으로 가득했던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죠." 
성인 되어서 혼란 겪는 경우 많아
'학대 입증' 요구하는 정책 비판
이어 그는 "아동학대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로 회복력이 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며 "이제 책임을 지고 행동해야 하는 건 사회다"라고 강조했다.

"피해자 스스로 모든 회복을 책임져야 한다는 분노는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문턱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죠. 국가와 지자체가 나서서 생활, 법률, 심리 지원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지원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는 아동학대 경험 입증을 요구하는 현 정책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성인들의 트라우마는 아동기 경험과 상당한 관계성을 갖지만, 정작 지원에 나서야 할 정부에서는 둘의 인과 관계만을 요구한다는 지적이다.

"아동기 학대를 경험한 성인이 자신의 과거 학대 경험을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삶의 질,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평가하는 체계와 심리 지원 기금이 필요합니다.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안이 필요합니다. 트라우마 치료는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니까요."

/이시은·이자현기자 se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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