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들어도 깊이 각인되는 음악들이 있는데,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의 제1곡 '운명의 여신이여'는 그 대표격이라고 생각된다. 관현악 총주와 합창에 의한 폭발적 시작이 청자의 감각을 일깨우며, 현과 목관의 조용한 반주에 얹혀서 나오는 속삭이는 형태의 합창이 특유의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후 작곡자가 악보에 표기한 크레셴도에 힘입어 리듬과 음향 모두에 활력을 더한 음악은 이내 막을 내린다. 3분이 채 걸리지 않는 음악은 두고두고 청자의 머리에 남게 된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운명의 여신이여'는 숱한 영화와 CF의 주제음악으로 쓰였다. 특히 록음악 팬들은 오지 오스본의 음악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꽤 있다. 오지 오스본이 자신의 밴드에 몸 담았던 요절한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에게 바치는 라이브 앨범의 앞 부분에 '운명의 여신이여'를 사용하면서 상당히 인상적인 시작을 알렸기 때문이다.
소설가 루이제 린저의 두 번째 남편이기도 했던 독일 작곡가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는 소프라노, 바리톤, 테너 독창과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일종의 대형 칸타타이다. 전체 25곡으로 구성됐으며, 1937년 초연됐다. 오르프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카르미나 부라나'는 '노래'를 뜻하는 라틴어 '카르멘(Carmen)'의 복수형인 '카르미나(Carmina)'에 '보이렌(Beuren)' 지방을 일컫는 라틴어 명칭인 '부라나(Burana)'가 합쳐진 말로 '보이렌의 노래'라는 의미이다.
1803년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베네딕트 보이렌 수도원에선 익명의 유랑 수도사와 음유시인에 의해 10~13세기 경에 쓰인 250여편의 세속 시가집이 발견됐다. 오르프는 이 중 몇 편을 발췌해 곡을 입혀서 대편성 칸타타로 완성했다.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는 25곡으로 구성됐다. 서(序)는 '운명의 여신이여'와 '운명의 타격' 2곡으로 구성됐다. 제1부 봄의 노래(8곡), 제2부 선술집에서(4곡), 제3부 사랑의 뜰(10곡)로 이어지며, 종(終)은 '운명의 여신이여' 1곡으로 구성됐다. '운명의 여신이여'가 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형태다. 전곡 연주 시간은 연주자에 따라 1시간 내외다.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지 100년도 되지 않은, 이 작품이 인기를 끄는 요인으로 몇 가지를 꼽을 수 있겠다. 중세 떠돌이 수도사나 음유시인이 쓴 술, 여자, 사랑에 대한 풍자적 가사를 사용함으로써 시공을 초월한 매력이 있으며, 음악 형식적으로는 작품의 전개와 화성 모두 간결함을 추구하면서 복잡한 20세기 음악어법을 피했다.
인기가 많다보니 음반도 무척 많다. 거대한 스케일에 현란하면서도 세밀한 음향이 어우러지기 때문에, 음악 내·외적으로 비교하면서 들어볼 음반들이 많다. 그래도 연주 내용적 측면에서 1960년대에 나온 오이겐 요훔이 지휘하는 베를린 도이체 오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쇤베르크 어린이 합창단에 최상급 솔리스트들인 군둘라 야노비츠(소프라노), 게르하르트 슈톨체(테너),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바리톤)가 참여한 DG 음반 만한 연주는 없다고 생각된다. 여타 작품들에선 이처럼 결정반으로 하나를 꼽는 게 가능하지도 않고 스스로도 내켜 하지 않지만, 이 작품은 예외라 할 수 있겠다. 음반 표지에 작곡자의 친필 사인이 담겼다.┃사진
과거엔 레코드숍에 가서 음반을 구매해야 해당 음악을 들어볼 수 있었다. 요즘은 유튜브 검색창에서 해당 작품과 연주자 명만 입력하면 해당 연주를 들어볼 수 있는 시대다. 한 소절만 들어도 '아하! 이 음악'이라고 생각할 '운명의 여신이여'를 듣고서 '카르미나 부라나' 전곡을 접하고 알아가면 좋을 것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체교육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