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삶의 막다른 곳에 다다른 456명 시민이 목숨을 두고 경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목숨 하나당 책정된 값은 1억원. 주인공을 비롯한 참가자 모두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채무를 진 사람들이다. 우리 주변에 현실판 '오징어 게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20대에 홈패션 사업을 성공시킨 박온비(65·고양)씨가 그런 경우다. 남편이 보증을 서 집을 날리는 신파 같은 이야기가 그에게 찾아왔다. 쇼핑몰에 1억4천만원을 투자했으나 매출은 980만원에 그쳤고, 그는 작업실로 구했던 지하창고에서 12년을 살았다.
20대 사업 성공한후 보증 잘못서
집 날리고 12년동안 지하창고 삶
장마가 아니어도 제습기 없이는 살 수 없는 그곳에서 전기요금이라도 내기 위해 베이비시터·요양보호사·보험 영업직 등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구했다.집 날리고 12년동안 지하창고 삶
수원에 사는 박창희(60·가명)씨도 가족을 통해 빚을 지게 됐다. 서울 양재동에서 꽃집을 운영하던 중 친형이 꽃 경매를 해주겠다는 말에 선뜻 돈을 맡겼다. 돌아온 건 5천800만원의 빚. 친동생은 박씨가 잠든 사이 인감을 훔쳐 보증을 섰다.
'가족 배신' 30년간 주민등록 말소
병원 못가… 이 모두 빠지고 노숙
병원 못가… 이 모두 빠지고 노숙
가족을 믿고 두 번이나 보증을 선 대가는 가혹했다. 30년 동안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로 살게 됐고, 이 때문에 병원은 언감생심. 치과를 못 가 이가 모두 빠졌다. 그는 수원역 노숙인이 됐다.
김광소(58·부천)씨는 과일 도매상 2곳에 소매를 하는 청과가게 7개를 거느린 잘나가는 상업인이었다. 신장이식수술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종업원이 2억원을 횡령해 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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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손을 잡고 찾아왔다.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고, 병원비와 생활비로 어느새 빚은 3억원으로 불어났다. 김씨에게는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오징어 게임은 민주주의 규칙이 통용되는 자본주의 세상을 풍자한다. 운과 실력으로만 승부를 가리며 투표로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오징어 게임은 공평하고, 너희에게 빚만 지우는 바깥세상은 지옥이라 말한다. 한데 현실 속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들은 어둠보다 빛을 본다.
박온비씨는 악착같이 모은 돈 500만원에 경기도 극저신용대출로 300만원을 지원받아 비닐하우스 1동을 인수했다. 가스 불조차 놓을 수 없고 겨우 잠만 잘 수 있는 공간이지만 박씨는 "이곳이 문화공간이 되길 원해요. 사람들과 함께 작품도 만들고 꽃도 키우고 싶어요"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금융복지'로 재기 노력
"같이 울어준 직원들 따뜻함 느껴"
노숙인 박창희씨는 지난 8월 30년 만에 다시 '주민'이 됐다. 동사무소 직원과 복지금융지원센터 직원들의 도움으로 매달 47만원의 긴급 지원비를 받게 된 것이다. 그는 "면담을 하면서 직원분들이 나를 위해 같이 울어줬어. 부모한테도 못 느껴본 따뜻함이었지"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경기도민 1인당 가계빚 '9972만원')"같이 울어준 직원들 따뜻함 느껴"
/신지영·이자현기자 naturelee@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