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24일 오후. A씨는 인천 서구 검단에서 일을 하다 사다리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심장이 멈췄다. 인근 병원에서 1차 치료를 받았으나 추가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됐다.
닥터헬기가 출동했고, A씨는 인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으로 이송돼 저체온 치료를 받았다. A씨는 인천에서 닥터헬기가 도입된 후 첫 번째로 이송된 환자였다.
응급의료 전용헬기 '닥터헬기'가 첫 운항을 시작한 지 10년을 맞았다. 지난 2011년 9월23일 도입돼 이튿날 첫 운항을 한 닥터헬기는 그동안 1천500여 차례 운항하며 서해5도를 비롯한 의료 취약 지역의 응급환자를 살리는 데 역할을 했다.
닥터헬기는 의료 취약 지역에서 발생하는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골든 타임'을 지키기 위해 도입됐다. 중증 외상 환자는 1시간, 뇌혈관 질환은 3~6시간 정도가 지나면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커지는데, 이 시간을 '골든 타임'이라고 한다.
도심 지역은 병원과의 거리가 가까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도서 지역 등은 상황이 다르다. 병원이 없는 섬도 있고, 보건지소가 있더라도 의료 인프라가 열악하다.
닥터헬기는 헬기를 이용해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고,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동승해 현장으로 날아간다는 점에서 다른 항공 이송수단과 차별화된다. 헬기에 응급수술이 가능할 정도의 전문장비와 의약품이 실려있어 즉각적인 치료도 가능하다. 운항 대상은 중증외상, 심뇌혈관질환 등 응급수술과 치료가 필요한 환자다.
닥터헬기는 의료 취약 지역의 환자를 살리는 데 톡톡히 역할을 했다. 365일 일출~일몰 시간에 운영되는 인천 닥터헬기는 10년간 1천485회 출동했다.
응급의학과 응급구조사는 남동구 구월동 길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닥터헬기 출동 준비를 한다. 당직인 전문의 등은 닥터헬기 요청 전화가 오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식사 등도 도시락으로 해결한다고 한다.
닥터헬기 요청은 소방, 의료인, 마을 이장 등 지정자가 할 수 있다. 출동 요청이 오면 관제사와 응급구조사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연결된다.
가천대 길병원 외상센터 당직의 출동 대기 '식사 도시락 해결'
관제사는 요청 지역과 관련해 풍향과 풍속, 군사 지역 여부 등을 고려해 출동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 동시에 응급구조사는 출동 가능한 질환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한 약품과 장비 등을 준비한다.
출동이 결정되면 닥터헬기는 인천 부평구 일신동에 있는 계류장에서 길병원 권역외상센터까지 날아와 전문의와 응급구조사 등을 태우고 현장으로 향한다. 이때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닥터헬기 요청은 섬 지역에서 많이 이뤄지는데 보건지소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가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19 신고를 받은 소방당국이 판단해 닥터헬기 출동 요청을 하기도 한다.
출동한 곳을 지역별로 구분하면 섬 지역으로 이뤄진 '옹진군'이 626회(42.2%)로 가장 많았으며, 인천과 가까운 충남권 등 타 지역 493회(33.2%), 강화군과 영종도 등 366회(24.6%) 순이었다.
서해 최북단 섬인 백령도 출동도 51차례나 됐다. 닥터헬기를 도입한 초반엔 헬기 규모가 작아 50㎞ 내외로 운항했으나, 2018년 중형헬기가 도입되면서 서해 5도인 백령·대청·소청도까지 운항이 가능하게 됐다.
배로 4시간 소요 백령도 헬기 '70분만에 도착' 골든타임 사수
세계 최초로 도입한 독일은 80대 보유 반경 50㎞내 1대씩 배치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백령도까지 배를 타고 가면 4시간 정도가 걸리지만 헬기를 이용하면 70분 정도면 의사가 현장에 도착해 응급처치 등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그만큼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닥터헬기가 1천 번째로 수송한 환자는 백령도 주민이었다. 80세 여성 B씨는 2018년 6월12일 협심증 증상으로 자택에서 쓰러져 백령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심박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등 상태가 악화돼 닥터헬기가 출동했고, 가천대 길병원으로 이송됐다. 지체할 경우 심정지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B씨는 빠르게 혈관 확장을 위한 치료를 받고 회복할 수 있었다.
닥터헬기가 10년 동안 운항한 거리를 모두 합하면 20만㎞에 달한다. 이는 지구 다섯 바퀴에 해당하는 거리다. 환자 이송을 위해 하늘을 날았던 시간은 6만2천분, 약 1천300시간에 이른다.
헬기가 이·착륙할 때 피할 수 없는 것이 '소리'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면서 발생하는 소리는 115㏈ 정도다. 풍선이 터질 때 나는 소음과 비슷한 수준이다.
닥터헬기가 운용되는 계류장과 거점병원 주변 지역에서 헬기 운용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리 때문에 생활에 불편함을 겪는다는 민원이 발생하기도 한다.
계류장·병원 주변 주민들 생활민원 '역풍'… 인식 개선 캠페인
505항공대 인근 주민들이 소음 민원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닥터헬기가 도입된 가장 큰 이유는 위급한 환자를 더 빠르게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헬기에서 나는 소리가 '소음'이라기 보다는 '생명의 소리'로 이해해주길 바라고 있다.
2019년엔 '닥터헬기 소리는 생명입니다'라는 캠페인이 진행되기도 했다. 4강 신화를 쓴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 전 감독도 2019년 이 캠페인에 참여했다.
히딩크 전 감독은 "This noise can save life(닥터헬기 소음은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라며 닥터헬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사람을 살리는 게 먼저인데 이착륙 소음에 대한 민원이나 착륙지 제한 때문에 닥터헬기가 환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며 "소음을 참아서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토가 한반도의 1.5배 정도인 독일은 1970년대에 세계 최초로 닥터헬기를 도입했다. 현재 80대의 닥터헬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국을 반경 50㎞로 구분하고, 한 개의 원에 1대의 헬기를 배치하는 식이다.
일본은 2001년부터 구급의료용 헬기인 'Doctor-heli'를 운영하고 있다. 헬리콥터 운항회사로부터 빌린 전용기에 구급 장비를 설치해 각 거점에 대기하고 소방기관으로부터 요청을 받으면 의사와 간호사가 동승해 5분 안에 이륙하는 시스템이다.
50㎞ 내외 한계 2018년 중형헬기 도입후 서해5도까지 날아가
42대의 헬기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예산으로 운용되고 있다. 학교 운동장, 야구장, 공원과 같은 임시 이착륙장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병원 기반의 응급의료 전용헬기 운용체계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게 의료계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2011년 인천을 시작으로 전국에 권역별로 7대의 닥터헬기가 운용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닥터헬기 운항횟수가 증가하고 있다.
김양우 가천대 길병원장은 "도서지역 주민뿐 아니라, 섬을 찾은 누구라도 응급상황 시 신속하게 닥터헬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닥터헬기는 인천과 서해안 시민 모두를 위한 최고의 응급 이송수단임에 틀림없다"며 "권역책임의료기관인 가천대 길병원이 앞으로도 모범적으로 닥터헬기를 운영하며 시민들의 건강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정운기자 jw33@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