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마지막화 전사장면서 나온 음악
이순신 장군 고뇌할 때 마다 어김없이 흘러나오며 분위기 고조
시청자 관심 이끌어낸 바로 이 곡이 '브루크너 교향곡 7번 2악장'
이순신 장군 고뇌할 때 마다 어김없이 흘러나오며 분위기 고조
시청자 관심 이끌어낸 바로 이 곡이 '브루크너 교향곡 7번 2악장'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2004~2005년에 걸쳐 방영됐다. 104부로 구성된 '불멸의 이순신'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충무공 이순신의 일대기를 다뤘다.
이 드라마는 이순신 역의 배우 김명민을 세상에 알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랜 무명 기간을 보낸 김명민은 이 드라마에서 인생연기를 펼치며 세상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확실히 알렸다.
요즘에도 역사채널(케이블TV)과 유튜브 등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의 마지막회는 1598년 11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을 담았다. 7년 간 계속된 조선과 일본의 전쟁을 끝내는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도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한다.
드라마의 마지막회의 시작은 장중한 음악과 함께 한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이순신 장군은 도열한 병사들을 돌아보면서 독백을 한다.
'천지신명이시여 이기게 해주소서. 적을 무찌른다면 오늘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이때의 배경 음악이 브루크너 교향곡 7번 2악장이다. 이순신 장군이 고뇌하는 장면에선 어김없이 배경 음악으로 자리한 이 음악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장군의 고뇌와 전쟁을 앞둔 전장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내 주면서 시청자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음악사에서 '3B'는 성이 B로 시작하는 작곡가 바흐와 베토벤, 브람스 등 3인을 지칭한다. 베토벤과 말러 사이의 가장 중요한 교향곡 작곡가로 평가되는 안톤 브루크너(1824~1896)를 브람스 대신 포함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린츠 인근서 태어난 브루크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
어린 브루크러에게 성당과 웅장한 오르간은 음악적으로 큰 영향
어린 브루크러에게 성당과 웅장한 오르간은 음악적으로 큰 영향
오스트리아 린츠 인근의 안스펠덴에서 태어난 브루크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어린 시절 그는 부모님과 성 플로리안 성당에 종종 갔다. 높이 솟은 탑과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바로크 건축양식의 성당과 웅장한 오르간(1771년에 제작된 이 명품 오르간은 현재 '브루크너 오르간'으로 불린다)은 어린 브루크너에게 종교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13세에 이 성당의 성가대원이 되었고, 24세에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는 등 성 플로리안 성당에서 보낸 17년은 브루크너 음악의 근간이 형성된 시기였다. 31세에 빈 음악원 교수였던 지몬 제히터를 찾아가 6년 동안 작곡을 배운 후 나름의 스타일을 갖춘 첫 작품('미사 D단조')을 40세에 발표했다. 슈만과 바그너, 브람스 등의 첫 걸작이 20대에 나온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늦었다. 44세에 '교향곡 1번'을 발표한 브루크너는 5년 후인 1873년엔 '교향곡 3번'을 완성해 바그너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거대한 규모와 곡의 난해함으로 인해 당대 오케스트라들은 연주를 거부했다.
1877년에 이르러서야 작곡가가 직접 빈 필하모닉을 지휘해 초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공연장의 청중은 연주 중에 하나둘 빠져나갔고, 연주가 끝났을 땐 20여명 만이 남았다고 한다. 굴욕의 순간에 17세의 청년 음악도였던 말러가 기립 박수로 작곡가에게 존경을 표시한 일화는 유명하다.
1884년 초연된 '교향곡 7번'은 작곡가에 큰 성공을 안겨줬다. 성공의 요인은 선율미가 도드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선율이 많고 브루크너의 여타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금관악기의 강한 음색이 절제되어 있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브루크너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는다.
특히 이 작품의 2악장(아다지오)은 작곡자가 평소 존경한 바그너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를 띤다. 브루크너는 바그너의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에서 사용된 바그너튜바(호른과 튜바의 중간 정도 되는 악기)에 2악장의 주제 선율을 연주하도록 했으며, 자신의 종교음악 '테 데움'의 선율을 일부 차용하기도 했다.
13세에 이 성당의 성가대원이 되었고, 24세에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는 등 성 플로리안 성당에서 보낸 17년은 브루크너 음악의 근간이 형성된 시기였다. 31세에 빈 음악원 교수였던 지몬 제히터를 찾아가 6년 동안 작곡을 배운 후 나름의 스타일을 갖춘 첫 작품('미사 D단조')을 40세에 발표했다. 슈만과 바그너, 브람스 등의 첫 걸작이 20대에 나온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늦었다. 44세에 '교향곡 1번'을 발표한 브루크너는 5년 후인 1873년엔 '교향곡 3번'을 완성해 바그너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거대한 규모와 곡의 난해함으로 인해 당대 오케스트라들은 연주를 거부했다.
1877년에 이르러서야 작곡가가 직접 빈 필하모닉을 지휘해 초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공연장의 청중은 연주 중에 하나둘 빠져나갔고, 연주가 끝났을 땐 20여명 만이 남았다고 한다. 굴욕의 순간에 17세의 청년 음악도였던 말러가 기립 박수로 작곡가에게 존경을 표시한 일화는 유명하다.
1884년 초연된 '교향곡 7번'은 작곡가에 큰 성공을 안겨줬다. 성공의 요인은 선율미가 도드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선율이 많고 브루크너의 여타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금관악기의 강한 음색이 절제되어 있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브루크너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는다.
특히 이 작품의 2악장(아다지오)은 작곡자가 평소 존경한 바그너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를 띤다. 브루크너는 바그너의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에서 사용된 바그너튜바(호른과 튜바의 중간 정도 되는 악기)에 2악장의 주제 선율을 연주하도록 했으며, 자신의 종교음악 '테 데움'의 선율을 일부 차용하기도 했다.
지휘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교향곡 7번' 전곡 연주 시간은
70~80분 정도 소요… 유튜브서도 연주 검색해서 들을 수 있어
70~80분 정도 소요… 유튜브서도 연주 검색해서 들을 수 있어
지휘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전곡 연주 시간은 70~80분 정도 소요된다. 1악장과 2악장이 각 20여분씩이며 3악장 10분, 4악장 15분 정도이다. 전반 두 악장이 거대한 구조이다 보니, 지휘자들의 입장에서도 1·2악장에 너무 몰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결과적으로 3·4악장을 지리멸렬하게 만든다. 때문에 노련한 지휘자들의 연주를 감상하면 좋은데, 이른바 '명브루크네리안'들인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귄터 반트, 오이겐 요훔 등의 연주로 접해보자. 유튜브에서도 이들의 연주가 검색된다.
거대한 성당과 장대한 우주를 연상시키는 악상과 숭고한 아다지오 악장, 압도적인 피날레 악장 등을 갖춘 그의 음악은 꾸준히 음악애호가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말러의 제자이자 20세기 위대한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생전에 "말러는 신을 찾기 위해 계속 방황한 반면 브루크너는 이미 찾았다. 그의 음악에는 신이 살아 있다"고 평가했다.
거대한 성당과 장대한 우주를 연상시키는 악상과 숭고한 아다지오 악장, 압도적인 피날레 악장 등을 갖춘 그의 음악은 꾸준히 음악애호가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말러의 제자이자 20세기 위대한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생전에 "말러는 신을 찾기 위해 계속 방황한 반면 브루크너는 이미 찾았다. 그의 음악에는 신이 살아 있다"고 평가했다.
/인천본사 문체교육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