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거리를 걷다보면 종종 'ㅇㅇㅅㅋㄹ'이라고 적힌 간판을 봅니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를 뜻하는 간판입니다.
여기서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15세기를 살았던 세종이 현대로 온다면 'ㅇㅇㅅㅋㄹ' 간판을 어떻게 읽을까요. 우선 아이스크림이란 말 자체가 알파벳으로 쓰인 영어 'ice cream'을 한국어로 옮긴 말이기에 'ㅇㅇㅅㅋㄹ'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건 자명합니다. 그렇다면 발음은요.
여기서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15세기를 살았던 세종이 현대로 온다면 'ㅇㅇㅅㅋㄹ' 간판을 어떻게 읽을까요. 우선 아이스크림이란 말 자체가 알파벳으로 쓰인 영어 'ice cream'을 한국어로 옮긴 말이기에 'ㅇㅇㅅㅋㄹ'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건 자명합니다. 그렇다면 발음은요.
'세계 속의 경기도'에서 'ㄱㄱㄷ'로 경기도 대표 상징물 변화
사용 9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평가가 후한 편은 아닌 듯 싶어
사용 9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평가가 후한 편은 아닌 듯 싶어
현대를 사는 우리는 'ㅇㅇㅅㅋㄹ'이라는 자음(정확히는 'ㅏ','ㅣ'와 'ㅅ','ㅋ','ㄹ'의 모음+자음) 덩어리가 '아이스크림'이란 단어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지만 아마 세종에게 'ㅇㅇㅅㅋㄹ'이 '아이스크림'이라는 음가를 가진다는 것을 추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종이 창제한 한글은 초성·중성·종성이 모여 음절을 이루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어 자음만 단독으로 쓰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글이 만들어진 원리와 문자의 운용 방법을 설명하는 훈민정음 해례는 한글이란 문자를 만든 원리와 각 문자의 결합 방식, 그리고 사용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훈민정음은 한글이 초성과 중성 혹은 초성·중성·종성이 합쳐 네모 꼴의 하나의 글자를 만들어 사용된다고 설명합니다.
15세기 세종이 21세기 경기도에 온다면 'ㅇㅇㅅㅋㄹ' 만큼이나 낯선 간판을 또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바로 'ㄱㄱㄷ'라는 간판입니다. 'ㄱㄱㄷ'는 올해부터 쓰이기 시작한 경기도 대표 상징물(Government Identity)입니다.
그전까지 경기도는 '세계 속의 경기도'라는 GI를 사용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용한 지 9개월 가까이 지난 'ㄱㄱㄷ'에 대한 평가가 후한 편은 아닌 듯 싶습니다. 어딘가 장난스럽기도 하고, '세계 속의 경기도'처럼 명징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라는 게 제 해석입니다.
15세기 세종이 21세기 경기도에 온다면 'ㅇㅇㅅㅋㄹ' 만큼이나 낯선 간판을 또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바로 'ㄱㄱㄷ'라는 간판입니다. 'ㄱㄱㄷ'는 올해부터 쓰이기 시작한 경기도 대표 상징물(Government Identity)입니다.
그전까지 경기도는 '세계 속의 경기도'라는 GI를 사용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용한 지 9개월 가까이 지난 'ㄱㄱㄷ'에 대한 평가가 후한 편은 아닌 듯 싶습니다. 어딘가 장난스럽기도 하고, '세계 속의 경기도'처럼 명징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라는 게 제 해석입니다.
여기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외국어, 특히 영어를 외래어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 한국어에선 한글 모음에 해당하는 음가가 없는 알파벳에 모음 'ㅡ'를 부여합니다. 한국어는 자음에 해당하는 초성과 모음에 해당하는 중성이 모여 하나의 음절을 이루지만, 영어는 그렇지 않아서 입니다.
영어를 외래어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 한국어에선
모음에 해당하는 음가가 없는 알파벳에 모음 'ㅡ' 부여
이런 식의 사고방식 익숙한 세대 'ㄱㄱㄷ'는 ㄱㄱㄷ로 읽혀
모음에 해당하는 음가가 없는 알파벳에 모음 'ㅡ' 부여
이런 식의 사고방식 익숙한 세대 'ㄱㄱㄷ'는 ㄱㄱㄷ로 읽혀
민영방송 SBS를 '스브스'로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이런 식의 사고 방식이 익숙한 세대에겐 'ㄱㄱㄷ'는 곧 '그그드'로 읽히게 됩니다. 아직까지 'ㄱㄱㄷ'라는 GI는 '경기도'로 곧장 이어지지 않고, '그그드'와 '경기도' 어디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ㄱㄱㄷ'는 말 그대로 상징이기에 한글 창제의 기본 원리를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도 없고 외국어 표기 방법에 따른 혼란을 강조할 이유도 없습니다. GI '세계 속의 경기'가 만들어진 2005년 당시엔 이른바 '세계화'의 여진이 남아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은 이미 세계화를 이룬 뒤였지만, 지자체 혹은 지방정부 역시 세계화를 해야 한다는 게 일종의 시대 정신처럼 통용될 때였습니다.
세계화는 곧 행정 선진화의 의미처럼 받아들여졌고 이것이 곧 '세계 속의 경기'가 16년을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했죠. 'ㄱㄱㄷ'라는 GI는 무겁지 않습니다. '세계' 뿐 아니라 모음 'ㅕ'와 자음 'ㅇ', 또 모음 'ㅣ'와 모음 'ㅗ'를 떨쳐낸 'ㄱㄱㄷ'에는 가벼움이 있습니다.
'ㄱㄱㄷ'를 바라보는 도민들은 마치 'ㅇㅇㅅㅋㄹ' 간판을 보듯 편하게 경기도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세계화나 행정 선진화를 이뤄야 한다는 부담과 무게가 'ㄱㄱㄷ'에서는 느껴지지 않아서입니다. 민원인을 주눅들게 하는 위압적인 모습이 'ㄱㄱㄷ'의 경기도에는 없습니다. 지자체·지방정부 역시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행정을 펼쳐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요즘입니다. 도로나 건물을 짓는 것보다는 복지, 특히 현금성 복지를 펼치는 편이 더 낫다는 게 이 시대 행정가들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사실 'ㄱㄱㄷ'는 말 그대로 상징이기에 한글 창제의 기본 원리를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도 없고 외국어 표기 방법에 따른 혼란을 강조할 이유도 없습니다. GI '세계 속의 경기'가 만들어진 2005년 당시엔 이른바 '세계화'의 여진이 남아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은 이미 세계화를 이룬 뒤였지만, 지자체 혹은 지방정부 역시 세계화를 해야 한다는 게 일종의 시대 정신처럼 통용될 때였습니다.
세계화는 곧 행정 선진화의 의미처럼 받아들여졌고 이것이 곧 '세계 속의 경기'가 16년을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했죠. 'ㄱㄱㄷ'라는 GI는 무겁지 않습니다. '세계' 뿐 아니라 모음 'ㅕ'와 자음 'ㅇ', 또 모음 'ㅣ'와 모음 'ㅗ'를 떨쳐낸 'ㄱㄱㄷ'에는 가벼움이 있습니다.
'ㄱㄱㄷ'를 바라보는 도민들은 마치 'ㅇㅇㅅㅋㄹ' 간판을 보듯 편하게 경기도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세계화나 행정 선진화를 이뤄야 한다는 부담과 무게가 'ㄱㄱㄷ'에서는 느껴지지 않아서입니다. 민원인을 주눅들게 하는 위압적인 모습이 'ㄱㄱㄷ'의 경기도에는 없습니다. 지자체·지방정부 역시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행정을 펼쳐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요즘입니다. 도로나 건물을 짓는 것보다는 복지, 특히 현금성 복지를 펼치는 편이 더 낫다는 게 이 시대 행정가들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세계화나 행정 선진화 무게가 느껴지지 않지만
당대의 시대 정신은 담았다고 볼 수 있어
당대의 시대 정신은 담았다고 볼 수 있어
이렇게 보면 'ㄱㄱㄷ'는 한글 음절 구성 원칙을 위반했을지언정 당대의 시대 정신은 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GI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지만 그보다 먼저 변하는 것이 생각을 담는 그릇인 언어입니다. 과거엔 전화기를 뜻하는 손 모양을 할 때, 가운데 세 손가락은 굽히고 엄지 손가락과 새끼 손가락을 펴 수화기 모양을 했습니다. 2000년 중반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이런 손 모양을 전화기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건 수화기가 아니라 평평한 스마트폰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수화기(受話器)라는 말도, 전화기(電話機)라는 말도 멀지 않은 시기에 사멸할 말입니다. 이 시대에 전기 신호를 소리로 바꾸어 들을 수 있는 기계(수화기)나 말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꿨다가 다시 말소리로 환원하는 기계(전화기)는 없고 오로지 스마트폰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GI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지만 그보다 먼저 변하는 것이 생각을 담는 그릇인 언어입니다. 과거엔 전화기를 뜻하는 손 모양을 할 때, 가운데 세 손가락은 굽히고 엄지 손가락과 새끼 손가락을 펴 수화기 모양을 했습니다. 2000년 중반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이런 손 모양을 전화기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건 수화기가 아니라 평평한 스마트폰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수화기(受話器)라는 말도, 전화기(電話機)라는 말도 멀지 않은 시기에 사멸할 말입니다. 이 시대에 전기 신호를 소리로 바꾸어 들을 수 있는 기계(수화기)나 말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꿨다가 다시 말소리로 환원하는 기계(전화기)는 없고 오로지 스마트폰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늙은 세대가 'ㅇㅇㅅㅋㄹ'을 낯설어 하듯, 젊은 세대는 전화기 손 모양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른 하나, 한국어의 급격한 변화는 한자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유력 정치인이 내뱉은 위리안치(圍籬安置)·봉고파직(封庫罷職)이란 단어를 현장에서 들었을 때 이해하지 못한 기자들이 대다수였습니다. 그래서 봉고파직을 '권고사직'이라고 써 1보 기사가 나갔습니다. 그것이 한자로 된 법전을 외웠던 50대 대선주자와 온전한 한글 세대인 2030 기자 사이 언어의 거리였습니다.
자음으로만 구성된 GI와 간판도, 한자어를 낯설어 하는 세대의 출현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활자매체가 아니라 전자매체로 모든 것을 접하고 더 빠르고 간편한 의사 전달 방식을 선호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런 와중에 오래도록 세밀한 정서를 전달해 온 우리말이 사라지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말로 하는 대화를 SNS의 인스턴트 메시지가 대체하고, 책보다는 게시판 글이 주를 이루면서 곱씹을 때 맛을 내는 단어는 비효율적이고 경제적이지 못한 말이 돼버렸습니다.
활자매체가 아니라 전자매체로 간편한 의사전달 선호하는 시대
자음 구성 GI와 한자어를 낯설어하는 세대의 출현 자연스러운 변화
자음 구성 GI와 한자어를 낯설어하는 세대의 출현 자연스러운 변화
한글날만이라도 사라져 가는, 그러나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곱씹을수록 맛을 내는 단어들을 읊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읊을 단어들은 1996년 출간된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고종석 저)에서 소개한 단어들입니다. 이 말들은 모두 소리 내 읊을 때에야 비로소 제 가치를 드러내는 말입니다.
가시내, 가시리, 각성바지, 각시, 간살, 강샘, 건드리다, 계명워리, 그녀, 그리움, 길들이다, 껴안다, 꽃, 남녀추니, 넋, 놀아나다, 눈맞추다, 달거리, 달콤하다, 덧정, 돌계집, 뚜쟁이, 맞선, 매초롬하다, 몸, 무르녹다, 바람, 반하다, 발가벗다, 보쌈, 봄빛, 붙어먹다, 비바리, 사랑, 살, 살갑다, 살친구, 살품, 삼삼하다, 샛서방, 서리서리, 설레다, 설움, 소박데기, 속삭임, 숫보기, 스스럽다, 시앗, 싱그럽다, 씨받이, 아내, 아롬, 아름답다, 아침, 애서다, 애틋하다, 얼마, 외로움, 은근짜, 임, 입맞춤, 젖꽃판, 제미붙을, 즐김, 짜릿하다, 함치르르, 허우룩하다, 호년, 홀어미, 후끈 달다, 후살이, 흐느끼다, 흐드러지다, 흐벅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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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