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지역의 내륙국 우즈베키스탄을 연구하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전문가로 꼽히는 성동기 인하대학교 교수에게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2000년 한국인 최초로 우즈베키스탄 현지 대학에서 역사학 학위를 받았고, 2007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우즈베크어-한국어' 사전을 펴냈다.
2010년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아미르 티무르'에 관한 책을 국내 최초로 한국어로 썼고, 2014년에는 국내 최초로 대학을 해외에 수출한 사례로 꼽히는 '인하대 타슈켄트 캠퍼스(Inha University in Tashkent, IUT)'에서 대외협력실장 겸 'IUT 예비대학(IUT Pre-University)' 교장으로 일했다.
그는 올해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펴냈다. 한국인 저자가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를 한국어로 정리한 책을 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현지 대학서 학위 받고 사전·영웅·역사 정리한 책 출간
북방 외교에 중요한 조언도
북방 외교에 중요한 조언도
지난 18일 인하대 60주년 기념관 12층에 있는 연구실에서 성동기 교수를 만났다. 그는 언뜻 보아도 180㎝에 가까운 키에 100㎏은 훌쩍 넘어 보이는 거구였다. 성 교수는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는 우즈베크인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웃었다.
책장은 낯선 문자로 쓰인 제목의 책들로 빼곡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유학하며 수집한 러시아어와 우즈베크어로 서술한 역사 관련 책들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에게 왜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가졌는지 물었다. 성 교수는 "돌이켜보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경쟁자가 없는 소위 '블루오션'에 관심을 가진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애초에 그의 관심사는 우즈베키스탄이 아니었다. 러시아어를 배운 것이 시작이었다.
그가 러시아어를 배우게 된 계기는 이렇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지원 학과를 고민하던 시기는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이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자본주의 진영에서 참가를 거부한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이에 맞서 공산권 국가가 대거 불참한 1984년 LA올림픽 이후 세계인의 축제다운 올림픽이 열린 해였다.
그의 고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러시아어를 배우는 것이 전망이 있다"고 부모님에게 조언했고, 그의 아버지가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수험생인 그도 러시아어를 전공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노어노문학과에 진학했다. 당시 러시아어를 배울 수 있는 대학교는 전국을 통틀어 4곳에 불과했다고 한다.
1996년 외무고시에 낙방한 그는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고, 그해 우연히 모스크바에서 우즈베키스탄 출장이 잦은 한 선배를 만났다.
성 교수는 "그 선배가 '한국에 중앙아시아 관련 전문가가 없으니 우즈베키스탄에 대해 공부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회상했다. 선배의 조언을 들은 성 교수는 "운명의 화살이 심장에 확 꽂히는 느낌을 받았다"고 당시 느낌을 표현했다.
우즈베키스탄과 관련된 문헌이 국내에는 사실상 없던 시기였기에, 성 교수는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미지의 나라에 마음이 끌렸고 배우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 은사님도 '해당 지역의 전문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좋은 결정을 했으며 중앙아시아의 역사·문화 중심인 우즈베키스탄에서 반드시 우즈베크어로 공부하고 학위를 받으라'고 응원했다"고 설명했다.
1996년 9월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타슈켄트에 있는 언어센터에 입학해 우즈베크어, 우즈베크의 역사, 우즈베크의 문학을 배우고 무사히 졸업, 1997년 6월 우즈베키스탄 국립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에 입학해 공부를 마쳤다.
2002년부터 모교인 고려대에서 강의를 했고 우즈베키스탄과 관련된 연구 논문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2008년부터 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 연구교수로, 2014년부터는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전문가인 그는 우리나라 정부가 추진하는 북방 외교에 중요한 조언을 다수 했다. 2005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순방에 나서기 전 성 교수로부터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떠났고, 2009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순방을 떠나기 전에도 우즈베키스탄과 주요 어젠다를 설명했다.
이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신북방정책'에 대해서도 우즈베키스탄과의 교류 전략과 관련한 총리실 산하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자문 역할을 했고,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 전,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의 역사·전략적 가치를 설명하는 정책 자료를 정부에 제공했다.
인하대학교를 우즈베키스탄으로 수출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인하대 교원으로서 러시아어와 우즈베키스탄어에 능통하고 우즈베키스탄에서 공부한 성 교수는 우리나라 교육 역사 최초의 대학 수출사례로 꼽히는 IUT 설립 현장 곳곳에 있을 수 있었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우즈베키스탄의 내각이 참여하는 국무회의에도 2차례나 참석했는데, 당시 IUT 설립은 우즈베키스탄의 대통령도 관심을 크게 가졌던 정부 사업이었다.
IUT에서는 신입생 선발, 커리큘럼, 학사 운영 등의 프로그램을 인하대가 100% 책임지고 주도하는데, IUT는 우즈베키스탄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큰 만족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입시에 부정부패가 만연해 불만이 많았던 우즈베키스탄 학부모들은 인하대가 책임지는 깨끗한 입시 절차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면서 "인하대의 성공이 2018년 여주대학과 부천대학이, 2021년 아주대학교가 타슈켄트로 진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성 교수는 남북통일 이후의 시대와 남북 철도 연결 등으로 중앙아시아의 대륙으로 진출하기에 앞서 우즈베키스탄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라시아의 한가운데인 중앙아시아, 또 중앙아시아에서도 한가운데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중요성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은 실크로드의 한복판으로, 칭기즈칸과 알렉산더 등이 모두 거쳤고 아직도 대륙의 많은 문화 유산이 남아있는 곳"이라며 "우즈베키스탄을 이해하면 다른 주변 중앙아시아 국가를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성 교수는 남북 분단으로 인해 우리가 대륙의 DNA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실크로드의 한복판' 대륙 문화유산 남아있어
중앙아시아 진출전 먼저 이해해야 할 곳
그는 "남북통일 이후 눈앞에 대륙이 펼쳐질 그때를 대비해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앙아시아 진출전 먼저 이해해야 할 곳
성 교수는 "우즈베키스탄을 국내에 알리기 위해 사전을 만들고, 우즈베키스탄의 역사적인 인물에 관한 책과 역사책을 만들어 한국에 알리는 것들은 그러한 뜻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들"이라고 설명했다.
유튜브 채널 통해 카자흐·조지아 등 인접국가 소개
한국에 알리는 유라시아대학 만들 것
성 교수는 저술 활동 외에도 유튜버로도 활동을 준비 중이다. 유튜브 채널을 활용해 우즈베키스탄을 포함해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등 인접 국가들을 소개하면서 우리에게 이들이 먼 나라가 아닌 가까운 이웃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한국에 알리는 '유라시아대학'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국에 알리는 유라시아대학 만들 것
그는 "우리는 대륙을, 대륙은 우리나라를 서로 잘 알고 있어야 적절한 시기에 모두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 성동기 교수는?
1969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부산에 용하다는 점쟁이가 항구도시에서 일을 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곳이 부산이 아니라 인천이었다. 이름을 거꾸로 하면 '기동성'인데, 그래서 그런지 태어날 때부터 대륙을 상대로 일할 팔자를 타고난 것 같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우즈베키스탄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전생에 실크로드 상인이 아니었는지 의심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남북통일이 빨리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체제전환 과정 경험을 북한에 적용하는 연구에도 매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우즈베키스탄의 역사', '아미르 티무르 : 닫힌 중앙아시아를 열고 세계를 소통시키다', '우즈베크어-한국어 사전'(공저), '21세기 유라시아 도전과 국제관계'(공저) 등이 있다. 연구논문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 개인숭배의 형성 과정과 특징 연구'(슬라브학보 등재 제35권 2호, 85-124, 2020), '우즈베키스탄 미르지요예프 정권의 외교정책 분석: 외교정책 변화와 추진의 배경 및 특징을 중심으로'(외국학연구 등재 51호, 253-284, 202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