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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습지. /고양시 제공

한강하구 장항습지가 람사르습지 인증서를 받은 지 5개월 만에 생태관광지 조성 계획이 전면중단됐다.

지뢰 폭발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데다 폭우로 물이 불어날 때마다 유실 지뢰가 강 상류에서 유입될 가능성이 크지만 이를 막을 방안은 없기 때문이다.

한강하구 지역인 고양시 신평동, 장항동, 법곶동 등에 걸친 7.6㎞ 구간의 도심 속 장항습지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 구간이어서 생태계가 다채롭고 특이하다.

저어새, 흰꼬리수리, 재두루미 등 천연기념물과 큰기러기, 붉은발말똥게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 32종을 포함한 생명체 1천 66종의 터전이기도 하다. 매년 3만여 마리의 철새가 찾아들고 버드나무 군락지에는 갯벌에 구멍을 파고 버드나무와 갯벌을 오가는 말똥게가 집단 서식한다. 습지 크기는 5.956㎢로 환경부 소관 람사르 습지 17곳 중 경남 창녕군 우포늪(8.609㎢) 다음으로 크다.

유실 지뢰 제거 어렵고 홍수 때마다 추가 유입 우려 때문
지뢰 사고 후 공무원 무더기 형사처벌도 사업 동력 상실 원인

장항습지는 올해 5월21일 람사르협약 사이트(wwww.ramsar.org)에 등록됐다. 생물다양성이 우수하고 습지 유형이 독특해서 국제적으로 보전 가치가 높은 곳으로 람사르협약 사무국이 공식 인정한 결과다.

고양시는 국제기구로부터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자 장항습지를 보전하고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행주산성, 한강생태공원, 호수공원 등과 연결함으로써 거점 생태관광지로 육성하고 체계적인 습지 관리와 견학을 위해 장항습지센터를 세우기로 했다. 버드나무숲 속 33개 물골 복원과 생태계 교란종 제거, 탐조대 추가, 겨울 철새 먹이 주기와 쉼터 조성 등 계획도 잇따라 발표했다.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듯하던 장항습지 종합관리 계획은 지난 6월 암초에 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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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습지. /고양시 제공

장항습지에서 외래식물 제거와 환경정화 작업을 하던 50대 남자가 유실 지뢰를 밟아 발목이 절단됐기 때문으로 사고 지점은 2018년 민간인 출입 통제가 풀려 생태탐방로가 조성되던 곳이었다.

지난해 7월 장항습지 인근 한강 변에서 지뢰 폭발로 70대 남성이 크게 다치고 두 달 뒤 고양시 대덕생태공원과 행주산성역사공원 인근에서 M14 대인지뢰가 발견된 데 이어 다시 인명사고가 생기자 시민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장항습지에서 폭발한 M14 지뢰는 강원도 양구와 화천 비무장지대(DMZ) 등에 매설됐다가 장마철 폭우 등으로 유실돼 북한강을 통해 흘러들어온 것으로 군 당국은 추정한다.

M14 지뢰는 신관을 뺀 나머지는 플라스틱으로 제작돼 금속탐지기로 찾기 힘든데다 작고 가벼워서 강물에 휩쓸려 수백㎞까지 떠내려갈 수 있다. 유실 지뢰는 만조기에 바닷물에 밀려 장항습지 일대에서 돌 틈이나 나무 사이에 끼었다가 물이 빠지면 그대로 남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대적인 수색을 해도 좀처럼 수거하기 힘들다. 지뢰를 어렵사리 제거하더라도 임진강이나 한강 상류에서 폭우가 내리면 언제든지 다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한강하구로 연결된 전방 지역의 매설 지뢰를 모두 없애지 않으면 장항습지는 지리적 특성상 늘 불안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양시와 한강유역환경청 공무원 5명이 지뢰 폭발 사고와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형사처벌되면서 장항습지 생태공원화 계획은 추진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일산 동부경찰서는 유실 지뢰가 장항습지에 묻혔을 가능성이 있으니 위험 표지판을 부착해 관리해달라는 군 당국의 요구를 담당 공무원이 이행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최근 당사자들을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에 대해 고양시 공무원노조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뢰 제거와 안전관리 권한이 군에 있는데도 사고 책임을 지자체에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고양 시민사회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도 장항습지 지뢰 사고는 예고된 참사라며 공무원노조의 주장에 동조했다.

이들은 지난 14일 성명을 통해 "지뢰 폭발 지점은 시민들이 생태체험과 환경정화 등을 위해 수시로 방문한 곳이어서 위험이 상존했다"며 "지뢰 없는 장항습지의 지속가능한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양시는 장항습지 곳곳에 묻혔을 유실 지뢰의 위험성이 커진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자 생태공원화 사업을 강행할 수 없다고 보고 안전장치가 확보될 때까지 관련 사업을 무기 연기하기로 했다.

고양시 관계자는 19일 "람사르 습지 등록을 계기로 국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생태공원 거점 조성에 예산까지 서둘러 편성했는데 지뢰 위험이 커져 해당 사업을 전면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양/김환기기자 kh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