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무질서한 확산 방지'와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 보전', 그리고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환경 확보'. 현행 법 체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목적이다. 적정 도시 규모를 유지할 수 있게 돕고, 국민의 정서 순화 공간으로, 때론 생태적 공간으로 활용토록 하자는 취지가 크다.
논란도 있다. 개발제한구역 지정으로 직·간접적인 손해를 보는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공공개발 사업 추진을 위한 잇따른 개발제한구역 해제가 새로운 도시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도 하나 펼쳐놓고 극비로 그은 '선'… 도시문제 해결하려 재산권 족쇄
이 시기 쌀 부족 문제도 국가적인 이슈였다. 잡곡이나 분식(粉食) 장려 등 쌀 소비억제와 함께 쌀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한 농지 보전 정책도 중요했다.
휴전선과 가까운 지역의 인구 집중 회피와 군사시설 입지 확보도 필요했다. 영국의 그린벨트 제도, 일본의 근교지대(近郊地帶)와 시가화조정구역 제도 등이 참고가 됐다고 한다.
정부는 1971년 7월 개발제한구역 도입을 발표한다. 당시 정부는 서울 중심부에서 반경 15㎞를 기준으로 폭 2~10㎞ 지역을 개발제한구역으로 설정, 이 지역 안에선 일체의 건물 신축과 단지 조성 등 개발을 금지했다. 서울시 행정구역의 20%인 129.4㎢와 경기도 구역 329.4㎢ 규모였다. 일부 개발행위가 가능한 풍치지구 15.3㎢가 포함됐다.
인천에 개발제한구역이 설정된 건 이듬해 8월이다. 정부가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중심으로 반경 35㎞ 이내 6개 지역을 총망라한 768.6㎢ 넓이의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을 지정 고시한 것이다. 기존보다 2배 정도 넓어진 것이다.
정부는 이후 1977년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대도시와 도청소재지, 공업도시와 자연환경 보전이 필요한 도시 등 14개 도시 권역에 총 5천397.1㎢를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했다. 서울을 비롯한 7개 특별·광역시를 비롯해 106개 시·군·구가 포함됐다. 면적으로는 국토 면적의 5.4% 규모였다.
현장조사 없이 3개월만에 속전속결 지정
정밀하지 못한 작업에 초기부터 큰 반발
제한적 건축행위 허용외 20여년 그대로
개발제한구역 지정 작업은 3개월간 극비로 진행됐다고 한다. 현장조사도 없이 지도를 펴놓고 작업을 진행해 지역적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획일적으로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했다.
연필선 굵기에 따라 오차가 생길 수 있는 1만분의1 정도의 지도로 작업이 진행됐는데, 정밀하지 못한 작업이었던 만큼 집은 하나인데 마당 위는 개발제한구역에 포함되고 아래쪽은 그렇지 않은 상황도 나타났다. 개발제한구역이 집을 관통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회고다.
반발은 상당했다. 초기 서울 주변 개발제한구역엔 건축허가가 가능한 도시계획구역이 포함됐다. 이 도시계획구역은 도시계획법에 근거한 구역이었는데, 개발제한구역 지정도 도시계획법을 근거로 시행됐다. 법적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도시계획 공고를 할 때는 언제고 이번에 다시 개발제한구역을 설정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불평이 나왔다. 개발제한구역에 들지 않은 지역의 땅값 상승과 주택난 심화 우려를 비롯해 사유재산권의 지나친 침해 문제 등이 거론됐다. 개발제한구역 지정 50년이 지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한적으로 건축행위 등을 조금씩 허용하는 등 행위 완화가 있었지만 '구역불변의 원칙'은 20여년간 유지됐다.
국민의 정부서 깨진 '불변 원칙'에도 부족한 지원, 원주민 수십년 응어리 못 풀어
같은 해 12월 헌법재판소는 개발제한구역 내 재산권 행사 제한 내용이 포함된 도시계획법 21조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도시확산의 제한과 자연환경 보전이라는 공익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점은 원칙적으로 합헌이지만 나대지나 오염된 도시근교 농지처럼 토지를 종래의 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거나 토지가 쓸모없게 된 경우 등은 정부가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위헌이라고 했다.
재산권 침해의 경우 적정한 수단으로 그 침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비례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1989년 인천시로부터 축사 철거 요구를 받고 헌법소원을 낸 배모씨 등의 손을 10여년 만에 들어준 셈이다.
1999년 제주, 춘천, 청주 등 7개 중소도시권의 경우 친환경적 도시계획수립을 전제로 개발제한구역이 전면 해제됐고, 수도권과 부산권을 비롯한 전국 7대 대도시권은 부분적으로 해제됐다. '구역 불변의 원칙'을 깨고 '구역의 합리적 조정·활용'기조로 전환된 것이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2000년)돼 토지매수청구권 제도 등 주민 재산권 보장과 생활불편 해소, 도시의 계획적인 성장 등을 도모하기도 했다.
1998년 헌재 '재산권 제한' 불합치 결정
작년까지 전국 30% 해제… 경인지역 10%
주민들 의료·문화·복지부문 소외 여전
정부 토지매수액, 연평균 500억원 불과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개발제한구역 면적은 3천829.1㎢ 규모다. 애초 지정 면적 5천397.1㎢ 과 비교하면 30% 가까이 줄었다. 인천과 경기도는 애초 1천398.8㎢에서 1천250.4㎢로 10% 정도 감소해 전국 상황과 대비됐다.
정부는 생활편익과 복지 증진 등을 위한 주민지원사업을 추진 중이다. 토지 소유자의 재산권 보장과 도시환경 보전 등을 위한 토지매수제도도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주민지원사업의 경우 도로, 주차장, 공원 등의 기반시설을 정비하는 생활편익사업에 전체 사업비의 75% 정도가 편중돼 의료·문화·복지서비스 등 다양한 행정수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토지매수제도에 활용된 재원은 연평균 500억원 정도에 불과한 상황이다. 지난 2015년에서 2017년 사이 정부의 개발제한구역 토지매수 현황을 보면, 정부가 사들이기로 한 매수 대상 토지는 신청 면적의 평균 16% 정도에 불과하다.
인천·경기지역의 경우 이 비율은 평균 13% 수준으로 더 떨어진다. 사달라는 요구는 많은데, 이를 다 사들이지 못하는 셈이다.
매수 기준가격 역시 공시지가로 낮게 책정돼 있어 신청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개발제한구역 주민들의 목소리도 있다. 개발제한구역 주민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책이 주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중은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개발제한구역 원주민들을 위한 지원 제도들이 존재하지만 운용과정에서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모두 보상하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그들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과 보상이 유지·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8월 2·4 부동산 대책 후속 조치로 인천 남동구 구월동 일대 개발제한구역 220만㎡를 해제해 1만8천가구의 공동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구월2 택지의 경우 사실상 인천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어 인근 구도심 지역의 공동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김용하 전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도심 내 개발제한구역에 1만8천가구의 공동주택이 한 번에 들어서면 인근 구도심의 인구가 이쪽(구월2지구)으로 쏠려 구도심 공동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며 "구월2지구 일대 개발제한구역 유지를 전제로 이미 주변에 고밀도 개발이 진행된 상황에서 새로운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 도시계획 측면에서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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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현준, 김주엽 차장
사진 : 김용국 부장, 조재현 기자
편집 : 김동철, 장주석 차장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