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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대다. 코로나19 영향으로 활동반경이 줄어들며 재택근무, 비대면 등 자신만의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공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 여러 매체들을 보면 집, 인테리어 등을 주제로 한 아이템이 넘쳐난다.

이는 '건축'을 아우르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인문학적 개념까지 더한 '건축인문학'으로 관심을 확대시켰다.

얼핏 최신 개념 같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70)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건축은 인문학'이라고 말해왔다. '빈자의 미학'으로 대표되는 건축철학을 30여 년간 구축해오고 있는 승효상 건축가를 서울 동숭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 겸 서재, 생활공간이기도 한 '이로재(履露齋)'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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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을 그의 사무실 겸 서재에서 만났다. 그는 공공의 활동을 접고 개인의 설계작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건축철학 '빈자의 미학' 30여 년간 구축
'장식은 죄악' 아돌프 로스에 영향
'건축가가 건축 통해 세상 혁명' 깨달아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 내세워

먼저 근황을 물었다.


"국가건축정책위원장직을 마감하면서 (공공 직책을) 완전히 끝낸다고 선언했다. 제 개인의 건축작업에 집중하겠다 했고 현재 건축설계작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그는 제5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서울시 총괄건축가, 파주출판도시 코디네이터 등 열거하기도 벅찰 만큼 다양한 직책을 맡아왔고 그런 그가 더 이상 공적인 직책은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그는 쉼 없이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 건축의 거목 김수근 선생 수하의 공간연구소에서 일했고, 중간에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에서 공부를 마쳤다. 이후 공간연구소 대표이사직을 맡았고 1989년 건축사무소 이로재의 문을 열었다.

"1980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빈)로 유학을 갔다. 비엔나에 가서 건축가 '아돌프 로스'(20세기 초 활동, '장식은 죄악'이라 규정하고 일체의 장식을 제거한 집을 지었다)를 알게 됐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영감을 받아 모더니즘이 시작됐고 20세기 패러다임이 됐다. 아돌프 로스 이전과 이후 건축이 달라졌다. 건축가가 건축을 통해 세상을 혁명시킬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1980년대 좌절적 상황에 건축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다 건축을 통해서 우리 시대를 바꿀 수 있구나 하는 신념을 갖게 됐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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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김포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전경. /김포시 제공

이후 그의 건축철학인 '빈자의 미학'이 모습을 갖추게 된다.

"1982년 (오스트리아 빈) 활동하고 돌아와 공간연구소에 다시 들어갔다. 김수근 선생이 돌아가셔서 대표이사직을 맡게 됐고, 그러다 1989년 공간연구소를 졸업(나왔음)하고 승효상 건축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막상 독립했지만 그때도 내 건축이 뭔지를 몰랐다. 방황하다가 젊은 건축가끼리 모여 4·3그룹을 결성(1990년)했고,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이라는 전시회(1992년)를 열면서 '빈자의 미학'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그로부터 이것이 승효상 건축의 주제어가 됐다."

그가 말하는 '빈자의 미학'은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이며 성장과 팽창으로만 내달리던 우리 시대에 비움과 절제라는 화두를 던졌다. '빈자의 미학' 개념을 발표한 지 30년. 이 개념에도 변화가 있는지 물었다.

"1992년에 선언하고 1996년에 책을 썼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다 알고 선언했다고 할 수가 없다. 마땅히 옳은 길일 것 같다고 추측해서 선언하고 그다음에 실천하기 위해 그 틀을 만들었을 뿐이다. 또 그 틀에서 도망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이후로 30년 가까이 지났으니까 실천을 통해서 영역의 확대를 해오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쓸 책의 제목도 정했다고 귀띔해주었다. 바로 '빈자의 미학 제론'. "그간 실천한 내용을 모아 상세히 기술한 책이 될 거다. 30년간 어휘도 늘었고 어떻게 하는 게 옳은 것이라는 것도 가늠하게 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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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김포 애기봉평화생태공원 내부. /김포시 제공
 

경기·인천에서 발견하는 공간의 가치
경기도 어마어마한 잠재력 있는 땅
접근 굉장히 조심스럽게 해야
인천은 서해 있어 지정학적으로 중요
서울권 속해 메가시티 전략에 휘말려

그의 건축물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공간의 가치를 더하지만 경기·인천지역 곳곳의 공간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도시라는 게 위치도 다르고 맥락도 다르고 역사도 달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특히 경기도는 워낙 넓고 한마디로 말할 수 없지만 접경도시로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땅이라 접근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무장지대 개발, 평화공원 만들고 하는 것을 나는 소위 '뻘짓'이라고 하는데 좀 더 현명한 생각 있는 사람들이 충고하는 걸 들어야 한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인천에 대해선 "인천은 서해 바다가 있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근데 서울권에 속해 있으니까 메가시티 전략에 휘말리는 것 같다. 결단코 그래선 안 될 것으로 생각하고 서울과 결별된 전략이 필요하다. 한꺼번에 수도권으로 묶임을 당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천만의 전략이 중요하다. 땅의 위치나 역사 이런 것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 막강하다. 자꾸 서울과 묶으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지난달 개관한 김포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의 설계를 맡았던 그는 "시공과정에서 현행법 때문에 한계가 있었지만 정말 대단한 곳이다. 한국인이면 평생 한 번은 들러봤으면 한다. 우선 경치가 정말 좋고 지척이 북한 땅이라 여러 생각이 많이 든다. 민족적 생각을 비롯해 세계에 관한 생각까지 아주 다양한 생각이 떠오른다. 세 개의 강이 모여 흘러서 바다로 나가니까 거기에 대한 상념도 남다를 것이고 우리나라의 운명, 장래, 역사 등에 대해서 깊이 생각, 사유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라고 강력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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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장묘시설 '시안'의 천의 바람. /시안 제공

그의 건축 스펙트럼은 장묘시설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경기 광주에 소재한 장묘시설 '시안가족추모공원'이 그것으로 승효상은 이곳에 '천의 바람'과 '모모헌'을 설계했다.

"난 묘지라는 것을 죽은 사람을 위한 시설이라 생각지 않는다. '천의 바람'은 납골당이다. 사람을 구성하는 게 영혼, 육체로 되지 않았나. 육체는 화장하면 없어져 버리는 것이고, 영과 혼도 하늘로 올라간다고 보면 묘역에는 실체가 없다. 그런데도 왜 만드냐면 남아있는 우리를 위해서다. 우리가 가서 죽은 자를 근거로 우리 스스로 성찰하기 위해 만드는 게 묘역이다."

'천의 바람'은 미국 인디언 구전가요 '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시를 공간적 요소로 재해석했다.

"우리는 대체로 특별한 일이 아니면 묘역에 안 간다. 서양에서는 안 그렇다. 묘역이 도시 내 있는 곳도 많고, 공원적 개념이라 사람들이 자주 가서 안식을 갖고 온다. 천의 바람이라는 자체가 인디언의 노래다. 그 가사가 '내 무덤 앞에서 울지마라. 나 거기 없다. 난 떠도는 바람 같다' 이런 얘기다. 묻힌 사람이 나하고 관계가 없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스스로 조용히 평화를 얻고 사유하면 좋겠다고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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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장묘시설 '시안'의 천의 바람. /시안 제공

시안은 죽은 사람을 위한 집 '유택(幽宅)'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써내려 가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목표까지 세웠다.

그의 지치지 않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실패에 대한 강박관념이 커서 그런 것 같다. 뭔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까, 뭔가 해놓은 일이 불안하니까 또 일을 하게 되고 하는 일마다 만족스럽지 못하니까 또 그걸 보충하기 위해 집중하게 된다. 불안이 동력이라 생각한다"는 그는 체력적 뒷받침을 위해 30년 가까이 해오고 있는 게 있다.

"검도가 성격이 나하고 딱 맞다. 검도는 페인트모션(속이는 동작)을 쓰면 얻어맞는다. 정자세를 하고 기다렸다가 상대방의 허점이 보이면 들어간다. 항상 스트레이트로, 본질로 들어가는 게 검도다. 단도직입이란 말처럼."

 

유네스코 등재 목표 광주의 장묘시설
시안추모공원내 '천의 바람' 등 설계
美 인디언 노래 공간적 요소로 재해석
묻힌 사람이 자신과 관계 없을지라도
스스로 평화 얻고 사유하면 좋겠다 싶어
인터뷰하면서 그에게 '이 시대의 건축'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옛날에는 정보를 소수가 독점하던 시대였다면 지금은 모든 이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시대여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단 하나의 사상은 있을 수 없다. 이 시대가 하도 개별화되고 파편화되고,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 쓰고 서로 적대시하는 시대라 고민이 크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공동체가 붕괴될 것이다. 그래서 건축을 통해 어떻게 사람들을 안전한 공동체로 만들까 하는 것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위기의식이다. 건축을 통해 공공성을 어떻게 높일까 하는 문제가 건축가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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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장묘시설 '시안'의 천의 바람. /시안 제공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세상의 위대한 걸작들을 보면 그것을 남겼을 때 건축가들의 나이가 70대가 많다. 건축은 내가 사는 집을 설계하는 게 아니라 남의 집을 설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관조가 깊을 때 좋은 작업이 나올 수 있다. 그러니까 건축은 나이 든 이가 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건강만 허락된다면 공공에서의 활동도 다 내려놓은 상태라서 내 개인의 작업에 더 몰두할 것이다. 지금 건축설계를 잘할 때라 지금부터 하는 작업을 두고 봐 주시면 좋겠다. 뭔가를 잘 만들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에 차 있다.(웃음) 물론 또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켜봐 달라."

글·사진/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

■ 건축가 승효상은?

▲ 1952년 부산 출생
▲ 경남고교,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동 대학원 건축학과에서 석사 학위
▲ 1974~1980년 건축가 김수근의 '공간연구소' 근무
▲ 1980~1982년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에서 수학
▲ 1986~1989년 공간연구소 대표이사
▲ 1989년 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齋) 설립
▲ 1990년 젊은 건축가 14명의 모임인 '4·3 그룹' 결성
▲ 1999년 파주출판도시 코디네이터
▲ 200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 2014~2016년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
▲ 2018~2020년 제5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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