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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검사, 변호사, 판사)과 친분이 있는 사람은 전국 만 19세 이상 시민을 표본으로 할 때 14.2%에 불과하다. 검사(2천292명)와 변호사(2만3천417명·지난해 기준)보다 법관이 상대적으로 수가 적기 때문에 판사를 직접적으로 알고 지내는 국민은 약 8% 뿐이라는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와 남은영 연구원의 연구 결과가 있다.

법원조직법과 대법원규칙 제2966호 '각급 법원에 배치할 판사의 수에 관한 규칙'을 보면 대한민국 법관 수는 3천214명이다. 판사 정원은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약칭: 판사정원법)으로 정한다. 2014년 12월31일 일부 개정 시행한 뒤 현재까지 정원을 바꾸지 못했다.

개정 시행 당시인 2014년 대한민국 전체 인구수는 5천132만7천916명. 법관은 전 국민의 0.0055%에 불과하다. 판사정원법은 1963년 12월 하급법원판사정원법을 폐지하고 제정·시행했다. 당시 판사 정원은 376명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63년 대한민국 등록 인구수는 2천726만1천747명으로 법관은 이 중 0.0013%를 차지했다. 증원은 꾸준히 이뤄졌지만, 복잡·다원화한 현대사회에서 법관의 수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은 '법관특별시'
시민 1천만 시대가 깨진 오늘날 서울에 지방법원장은 5명이다. 1천400만 인구를 눈앞에 둔 경기도의 지방법원장은 둘 뿐이다. 서울엔 동서남북으로 지방법원이 있고,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와 서울정부종합청사 소재지인 중구와 종로구, 강남구, 서초구, 관악구, 동작구 등 6개 자치구를 관할하는 서울중앙지법까지 뒀다.

5개 지방법원에 더해 회생·행정·가정법원 등 3개 특수법원이 기능한다. 총 8개 하급법원의 법관 수는 총 851명이다. 서울고법에서 근무하는 법관을 더하면 1천47명이다. 전체 법관의 32.57%가 서울 소재 법원에서 근무한다.

서울특별시가 아니라 '법관특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관의 서울 밀집 현상이 심화하는 와중에 서울시 인구는 30년 전인 1992년 1천93만5천230명으로 최고점을 찍고, 2021년 10월 953만2천428명으로 지속 감소했다.

 

인구 1천만명 미만 서울 지방법원장 5명
1400만명 눈앞에 둔 경기도에는 2명뿐
전체 법관의 32.5% 1047명이 서울에 근무

경기도·인천광역시 관할 지방법원 본원은 수원지법·의정부지법·인천지법 등 3곳이고 수원가정법원과 인천가정법원이 있으며 각 지방법원 별로 5개(성남·안산·안양·평택·여주), 1개(고양), 1개(부천)씩 지원을 뒀다.

경기·인천 관할 하급법원에서 근무하는 법관의 수는 수원지방·가정법원 본·지원 359명, 의정부지법 본·지원 152명, 인천지방·가정법원 본·지원 192명 등 703명이다. 경기도에 수원고등법원 법관 46명을 더하면 557명, 경인지역 전체 법관의 수는 749명이다.

서울은 인구 9천104.5명 당 법관 1명이 있다. 경기는 2만4천326.0명, 인천은 1만5천338.6명 당 1명에 불과하다. 가파르게 증가한 인구수와 비서울로의 정치·사회·문화·경제 분권을 특히 사법부가 대응하지 못한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사법부의 시선이 비서울을 향할 기미가 없다. 서울의 법관 인구 밀도는 빽빽한데, 비서울 법관은 수만명 중 1명이다. 게다가 법관들은 비서울 발령을 받아도 서울중앙지법 관할에 자택을 그대로 두고 근무지에선 셋방살이를 한다. 길면 5년, 짧으면 2년 안에 서울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과 경기인천의 고법부장급 법관 수 차이는 사법부의 '지역 홀대'를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지방법원장은 동급이다. 서울고법 부장을 하다 지방법원장을 한 뒤 다시 돌아가 고법 부장을 한다.

서울고등법원엔 '지방법원장급' 판사가 60명 있다. 경기도청 소재지 수원시와 100만 도시 용인, 신도시 개발로 팽창하는 화성시와 오산시 340만 인구를 관할하는 수원지법의 고법부장급은 법원장이 유일하다.

지난 2019년 3월 수원고등법원이 개원한 뒤 경기도의 고법 시대 3년차에 접어든 올해 870만 경기남부 지역민의 고법부장급 법관은 고법 부장판사 15명에 수원지방법원장까지 총 16명뿐이다.

장성근 전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은 "풀뿌리 민주주의가 지방분권을 꽃피우고 권력의 분산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했다"며 "서울에 쏠려 있는 법관과 서울 위주의 법조 산업과 서비스는 지역을 병들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남·안산·고양 등 지원 본원 승격 '희망'
300만 인천시민 상소심 원정 설움은 여전

경기남부 지역민들은 수원고법 개원으로 서울 서초동 원정 상소심의 설움을 씻어냈으나 성남·안산·안양·평택·여주 등 5개 지원 중 토지관할 인구 100만명 이상 지원의 본원 승격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경기북부의 의정부지법 고양지원도 마찬가지다. 고양지원은 남북통일을 대비해 통일특별법원 설치 주장도 병행하고 있다. 의정부지법은 오는 2022년 3월1일 남양주지원을 개원한다. 인천지법은 2025년 3월1일 북부지원 설치를 예정하고 있다. 하지만 300만 인천 지역민의 상소심 원정 설움은 기약 없이 이어진다.

법원행정처 기획운영담당관실 관계자는 "법원 설치 및 승격 문제는 단순히 인구수만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할구역의 인구·면적 및 인구 추이, 타 지원과의 비교, 사법 접근성 비교, 청사사정, 형평성 등 한정된 사법자원의 효율적 배분 등 제반 사정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질 저하로 이어진 비서울 사법서비스
사법부의 비서울 외면은 법관의 판단 유보와 재판 지연으로 지역민에게 제공하는 사법 서비스의 양과 질 모두의 저하로 이어진다.

형사 사건 피해자들은 검찰청의 담당 검사가 바뀌면 가슴을 치고, 소송 당사자들은 재판장이 바뀌면 땅을 친다. 형사 공판에서 재판장이 아닌 합의부 배석 판사만 바뀌어도 공판절차를 갱신한다.

공판절차 갱신은 이미 진행된 절차를 일단 무시하고 다시 진술거부권 고지, 공소장 낭독 혹은 공소사실 요지 진술 등을 하는 형사소송규칙이다. 한시가 급한 피해자들은 검사가 공소장을 다시 읽을 때, 한숨을 푹푹 쉰다. 수개월 간 진행한 재판이 도돌이표를 만나 처음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매년 2월 법관 정기인사 시점이 되면 판사들은 두 개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후임 판사에게 사건들을 넘기고 떠나거나 밤낮없이 판결서를 작성하고 재판을 열어 미제 없이 새 임무를 받거나 둘 중 하나다.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법관에겐 꺼림칙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재판 당사자는 일부러 소송을 지연할 의도가 없다면, 법정에 나서는 일이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전세 보증금 사기 사건' 피해자 권모(35)씨는 "신혼집을 장만하려고 묶어 둔 전세 보증금을 빼앗아간 집주인이 1년간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다가 끝내 보석으로 풀려나고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것도 화가 나는데, 재판장이 바뀌고 아예 처음부터 재판이 다시 진행되는 것 같아 속이 터진다"며 "국민과 함께하는 재판도 물론 중요하지만, 신속한 재판을 통해 보다 빠르게 소송 절차를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경기·인천 형사피고인 6만9천명 서울보다 많아
수원지법은 민사본안·형사 장기미제 상위권
법관 '워라밸' 문제… 국회 판사증원법 내놔

대법원이 지난 9월 공개한 2021 사법연감에 따르면 경기·인천에서 형사소송을 치른 피고인은 구속 5천25명, 불구속 6만4천46명 등 총 6만9천71명이다. 서울은 구속 4천569명, 불구속 4만2천22명 등 4만6천591명으로 경기·인천의 67.45% 수준이다.

경기·인천엔 소장 접수부터 판결까지 2년을 넘긴 장기 미제 사건도 다수다. 서울중앙지법을 제외하고 수원지법 본원만 민사본안 사건 369건으로 1위를 차지했고 인천지법 본원도 1건 차이로 뒤를 이었다. 수원지법은 형사사건 장기 미제 역시 2년 초과 불구속 사건에서 145건으로 서울동·서·남·북 지방법원을 모두 앞질렀다.

법관들은 공히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주창한다. 특히 수원지법 법관들은 전국 법원 최초로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업무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적정 선고 건수를 제시했다.

국회는 '판사증원법'을 내놨다. 형사재판과 민사 소액사건 담당 판사를 현행보다 2배까지 점진적으로 늘리기 위한 판사정원법 개정안 발의에 여당 의원 30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탄희(용인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관 정원을 3천214명에서 4천214명으로 점진적으로 증원하되 2022년부터 2026년까지 5년에 걸쳐 각각 200명을 증원하자는 법안"이라며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보장을 위해 포괄적인 중·장기 법관 증원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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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 손성배, 배재흥 기자
사진 : 김금보·김도우 기자
편집 : 김동철, 장주석 차장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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