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에게 한강 다리는 '명물'이다. 서울의 야경을 상징하는 피사체이면서,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바쁘게 오가는 다리 위 자동차의 행렬을 전망 삼아 인근의 아파트값도 높여준다.
이렇게 서울의 한강 다리가 시민의 사랑을 받는 데는 아무 부담 없이 강남과 강북을 빠르고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본연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강의 가장 하류에 위치한 일산대교는 사정이 다르다. 김포, 고양, 파주의 수백만 경기도민들은 10여 년째 일산대교를 건너며 고통을 호소한다. 이들 지역을 보다 빠르고 쉽게 오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다리지만 그 자유에 대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탓이다.
그렇게 10여 년간 해묵은 갈등이 최근 들어 격화된 모양새다. 무료화 통보, 집행정지 가처분 인용 등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절차적 오류, 정치적 수사 등 일산대교를 둘러싼 논란의 모든 것을 떠나 일산대교가 경기도민이 받아온 차별의 상징이 됐다는 덴 이견이 없다. 일산대교는 서울의 한강 다리처럼 경기 서북부 도민들의 명물이 될 수 있을까.
■ 갈등의 본질은 경기 서북부 주민을 향한 차별
"일산대교는 1㎞당 652원의 요금으로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109원)의 5배, 천안-논산 간 민자고속도로(59.7원)의 11배나 되는 통행료를 지급해야 지나갈 수 있는 '나쁜' 다리입니다."
법원이 일산대교(주)가 제기한 '경기도 공익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인용 결정을 내린 후 김포시가 발표한 입장문의 일부다.
김포시는 일산대교를 두고 시민의 교통권과 이동권을 보장해야 하는 공공재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산대교의 길이는 약 1.84㎞에 불과하다. 채 2㎞도 되지 않는 다리를 건너기 위해 소형차는 1천200원, 중형차는 1천800원, 대형차는 2천400원을 지불해야 한다.
어쩌다 한 번 지나는 길이라면 몰라도, 매일 아침 일산대교를 통해 출퇴근해야 하는 도민이라면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일산대교는 2008년 수익형 민자사업으로 조성됐다. 대림산업 등이 도비 299억원을 포함한 민간자본을 조달해 일산대교를 건설하고 2038년까지 운영관리를 행사, 통행료를 받기로 했다.
그러던 중 이듬해인 2009년 지분 구조조정으로 국민연금공단이 (주)일산대교 대주주로 올랐다. 국민연금이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당시 이들 지역민은 이제 민간운영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운영권이 넘어온 만큼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인수 이후 통행료가 2차례나 인상됐고 도민들의 분노도 더욱 커졌다. 이때부터 도민들이 무료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10여년 해묵은 갈등 '이재명 경기도지사 공익처분 카드'로 격화
내년 본안소송서 '공권력 행사' 운영사와 치열한 법리다툼 예고
이에 2014년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도 일산대교 통행료 인하에 나섰다. 통행료를 낮추기 위해 사업 재구조화를 시도하며 국민연금에 재협상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2015년에는 일산대교 MRG(최소운영수입보장) 보조금 419억원의 지급을 보류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결과는 경기도의 패였다.
이재명 전 지사는 '공익처분' 카드를 꺼냈다. 2011년 개정된 민간투자법을 활용해 손실보상금을 지급하고 (주)일산대교의 운영관리권을 회수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렇게 10월27일 무료화가 시행됐고 공익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며 다시 무료화는 중단됐다. 결국, 원점이 됐다. → 일지 참조
■ 경기도 vs 일산대교(주), 끝까지 간다
결국 일산대교 무료 통행으로 비롯된 갈등의 해결은 내년 공익처분 취소소송(본안소송)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해당 공익처분 집행정치 가처분 인용에 대한 판결문만 봐도 본안소송에서 일산대교와 도의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
먼저, 법원은 일산대교 실시협약에서 정하고 있는 통행료 감면 등의 절차 없이 곧바로 공권력을 행사한 점을 꼽았다.
도는 일산대교 운영사에 통행료 감면을 잇따라 요청했지만, 일산대교가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도가 통행료 감면 요구 절차 없이 공익처분이라는 공권력을 행사해 일산대교가 통행료를 받지 못하도록 한 점과 통행료 징수 금지, 사업자지정 취소 등까지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등에서 다툼이 예상된다고 봤다.
이에 더해 도가 통행료 수입 감소분을 일산대교에 주는 것을 전제로 통행료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실시협약 등에 어긋나는지 여부도 본안소송에서 다뤄질 부분으로 판시했다.
국민연금 상대 교통이동권 지킨 성과… 차별 해결과정 자체 의미
결과에 따라 영종·인천대교 등 '제2의 일산대교' 후폭풍 일수도
도는 무료 통행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자체적 법률 자문 결과, 일산대교 무료화는 교통기본권 등 무료화에 따른 공익적 효과가 충분하며 공익처분 근거법인 '민간투자법'에 따라 일산대교와의 협의나 토지수용위원회 의결을 통해 인수비용을 합당하게 지급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일각에서 국민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손실을 입힌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 판결 결과에 따른 '후폭풍'
일산대교 문제는 결과 여하에 따라 강력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도가 본안 소송에서 이겨 일산대교가 무료 통행이 된다면, 서북부 도민들에게는 반길 일이다. 또한, 경기도가 국가기관 격인 국민연금을 상대로 도민의 교통이동권을 지킨 셈이기 때문에 지방자치의 빛나는 성과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제2의 일산대교' 요구도 잇따를 수 있어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는 것도 배제할 순 없다.
영종대교와 인천대교 무료화 촉구가 그 예다. 국민의힘 배준영(인천 중·강화·옹진) 의원은 정부에 전 국민이 이용해 일산대교보다 공익성이 높은 영종대교와 인천대교도 무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는 일산대교 문제를 '민자사업'에 대한 공권력 행사라는 프레임보다, 경기도민이 겪는 차별을 경기도가 앞장서 해결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크다는 입장이다.
도 관계자는 "일산대교는 서북부 도민들의 교통기본권 보장을 위한 특수성을 고려해 공익처분을 결정한 것"이라며 "이미 일산대교 운영사에 통행료 감면을 위해 수차례 협상을 시도했고 노력했지만, 요청을 거부당했다. 어쩔 수 없이 공익처분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공지영·신현정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