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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球都)' 인천. 1883년 개항과 함께 야구도 인천에 처음 들어왔다.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삼연(三然) 곽상훈이 1920년 경인기차통학생 친목회 소속 학생을 중심으로 만든 인천의 첫 야구단 '한용단'이 현재 제물포고등학교 자리인 '웃터골경기장'에서 경기를 할 때면 구름 관중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언론인 고일이 1955년 쓴 '인천석금'에는 "야구대회가 있다고 소문만 나면 시민의 팬들은 만사를 제쳐놓고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엿장사도 오고 지게꾼도 대섰다. 할머니도 '스트라익' 하고 할아버지도 '호무랑'(홈런의 일본어 발음) 소리를 외쳤다"고 당시 한용단의 야구 경기 분위기를 전한다.

이후 동산고등학교와 인천고등학교, 제물포고등학교 등 인천지역 야구 명문 고교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인천의 야구 인기는 꾸준히 이어졌다. 그러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뒤에도 삼미 슈퍼스타즈를 시작으로 지금의 SSG랜더스까지 6개 프로 야구단이 인천을 연고로 하면서 '구도 인천'에 대한 시민들의 자부심이 높다.

그런데도 인천에는 고교 야구팀이 더는 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야구 꿈나무들이 다른 도시로 전학을 가거나 아예 야구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이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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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천의 네 번째 고교 야구팀이 드디어 탄생했다. 전국 유일의 섬마을 야구부인 덕적고등학교 야구부다. 덕적고 야구부는 지난 3일 창단식을 하고 인천 야구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비상할 준비를 마쳤다.

전국에 하나뿐인 섬마을 야구부는 주민들의 노력으로 생겼다.

지난해 덕적도의 유일한 고등학교인 덕적고의 전교생이 20명 이하로 줄면서 마을 주민들은 학교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 학교로 진학하는 덕적중에 다니는 학생도 8명밖에 없어 곧 폐교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학교가 문을 닫으면 그나마 마을에 남아있던 젊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섬을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1천300여명에 불과한 작은 섬마을이 머지않아 소멸할 위기에 처한 셈이다.

지난해 6월 '야구부를 창단해 덕적고를 체육 특성화 학교로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섬 주민들은 이를 반기며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명운동을 벌였고, 마을의 주요 어장인 덕적도 인근 바다에서 해사(海沙)를 채취하는 대가로 받은 복지기금 일부를 야구부 창단을 위해 내놓았다.

주민들의 이런 노력은 올해 8월 인천시교육청으로부터 덕적고 야구부가 창단 승인을 받으면서 결실을 보게 됐다. 덕적고 야구부 후원회 이해주 회장은 "마을에 하나뿐인 고등학교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주민들이 똘똘 뭉쳤다"며 "주민들과 학교 관계자들이 온 힘을 합쳐 노력한 덕분에 야구부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천 넘어 '마구마구 전학' 1명밖에 없던 1학년은 12명으로 늘어나
전국서 전지훈련 오는 '서포리 해수욕장'은 우리 동네 체력단련장

창단 승인을 받은 이후 태평양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 SK와이번스 등 인천 연고 프로 야구단에서 포수로 활약한 장광호(54)씨가 초대 감독으로 선임됐다.

장 감독은 코치 2명과 함께 덕적고에서 야구를 할 선수들을 찾아 나섰다. 인천뿐 아니라 다른 지역 고등학교 야구 선수들까지 덕적고에 전학을 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덕적고 야구부 창단 멤버 18명이 완성됐다.

장광호 감독은 처음 부임할 당시 학생들이 생활할 숙소와 연습 장소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다고 했다. 그는 "다른 지역에서 전학 온 학생들이어서 모두 숙소에서 합숙해야 했고, 운동장을 훈련장으로 써야 했기 때문에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덕적도의 한 호텔이 선수들의 숙소로 한 층을 저렴하게 빌려 주기로 하면서 장 감독은 걱정을 덜었다고 한다.

선수들이 훈련할 덕적종합운동장도 우려와 달리 다른 고교 운동장만큼 상태가 좋아 훈련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전국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야구부 선수들이 전지훈련을 오던 서포리 해수욕장은 덕적고 야구부 선수들의 체력 훈련 장소로 훌륭히 활용되고 있다.

 

덕적고 야구부 학생들은 덕적도 생활이 야구 인생의 전환점이 되고 있다고 한다. 주장 최민호(18)군은 "개인 훈련 시간이 전보다 더 늘어났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수술로 1년 유급한 상황에서 가족과 떨어진 낯선 곳으로 오게 돼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덕적도에 와보니 시설이 정말 좋아 깜짝 놀랐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이어 "섬이기 때문에 여가 시간에 게임 등 즐길 것이 없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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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일의 섬마을 야구부인 덕적고 야구부 학생들이 덕적도 서포리 해수욕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덕적고 제공

야구부 학생들은 운동뿐 아니라 학교생활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고 덕적고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덕적고 김수경 교장은 "야구부 학생들이 '수업 중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요'라고 말하는 것에 크게 감동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도심 학교에서는 운동부인 탓에 맨 뒷자리에서 아예 수업에 배제되는 일이 많았을 것"이라며 "학생 수가 많지 않은 우리 학교에선 야구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학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존에 덕적고 학생들에게도 야구부 아이들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1명밖에 없던 1학년은 12명으로 늘어났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조별 수업이나 단체 체육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됐다.
 

섬이라는 특성 탓에 대부분 비슷한 또래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니던 현지 학생들에게 18명의 새로운 야구부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운동에만 '전념' 학교생활 만족 "수업중에 선생님 목소리가 들려"
주장 최민호 "인천지역 막내 팀이지만 내년 시합에서 모두 이길 것"

덕적고 야구부는 내년 10여명의 신입생을 맞이하며 본격적인 도전에 나선다. 장광호 감독은 "아이들의 훈련 모습을 보니, 신입생이 충원된 이후 선수층이 두꺼워지면 전반기에는 고교야구대회에서 16강 이상의 성적을 충분히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초대 주장을 맡은 최민호군은 "인천지역 4개 고교 야구팀 중 막내지만, 내년 시합에서는 나머지 3팀을 모두 이겨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창단 멤버인 우리가 잘해야 앞으로 더 많은 선수가 덕적고에 오지 않겠느냐"며 "덕적고 야구부가 앞으로 영원히 이어질 수 있도록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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