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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고대국가에서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이 이어져 왔다. 빵 한 조각을 만들어도 거대한 선박을 건조해도 그에 걸맞은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고물은 어떨까. 사용하고 효용가치를 잃은 고물 역시 거래 과정에서 세금을 납부한다. 고물을 수집해 재가공 판매하는 데서 수익, 즉 소득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금을 내고도 처벌을 받는 고물업도 있다. 바로 동스크랩(폐동)이다.

동스크랩 업계 종사자들은 허위 세금 계산서를 발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1차 고물 수집자(나까마, 고물상)로부터 고물을 사들여 '무자료 거래상'으로 분류되기 때문인데, 현 상황을 바라보는 과세당국과 업계 시각은 첨예하게 갈린다.

과세당국에서는 비자금 조성 등 명목으로 세금을 탈루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업계에서는 애초 사익을 취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맞선다. 양측의 주장과 근거, 현 상황을 짚어봤다.

# "세금탈루 가능성" vs "억울하다"


과세당국은 세금 탈루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즉, 폐동 유통업 종사자들이 소득세 감면 등 세금 계산서 발행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구조인데 매입 단계에서 자료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것이다.

일부 종사자들이 수십억원대 매출 거래서를 발행한 뒤 사라지는 무자료 거래상, 이른바 폭탄업체일 가능성도 우려했다. 실제 거래를 했더라도 허위 세금 계산서를 교부하거나 수취해 조세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고 봤다.

국세청과 세무서, 세무사들은 "세금 탈루 가능성이 있어서 의심되는 업체들을 고발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반면 업계에서는 세금 탈루는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한다. 업계 종사자들을 범법자로 내모는 현 상황에 대해 날을 세우기도 했다.

업계 종사자 A씨는 "폐동을 1차 수집자인 고물상으로부터 사들일 때 세금 계산서를 발행할 수가 없다. 무짜(현금거래를 뜻하는 업계 은어)로만 거래한다"며 "매입, 매출 단계에서 자료 거래에 대한 비대칭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어 "사업자 등록을 내고 고물을 수집하다 보면 과세관청 고발로 견딜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고물수집자와 '무자료 거래' 특성 불구
과세당국 "세금탈루 의심 고발 불가피"
업계는 '허위 세금계산서' 억울함 호소
"매출 일정규모 이상땐 정상 인정 필요"


이처럼 업계 종사자들은 무자료 거래를 허위세금 계산서 발행 및 수취 혐의로 오인해 과세관청에서 고발을 남발하고 있다고 억울해한다.
 

이들 역시 고물상들이 수집한 동스크랩을 사들일 때 계산서를 끊거나, 매입자들의 신상 정보를 알고 있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고물상들의 신상 정보를 알거나, 대다수가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고물상과 자료 거래를 한다면 과세당국의 고소 고발은 고물상으로 향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설명이다.

업계에 10년여간 종사했다는 B씨는 "잘못한 게 없는데 과세관청의 의심을 받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사람까지 생긴다"며 "매입 자료가 없더라도 폐동 매출 단계에서 규모가 일정하다면 정상 거래로 인정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폐구리 야적장
시흥 한 폐기물 처리업체에 폐동이 쌓여있다. /경인일보DB

# 부가가치세 매입자 특례 납부제란?


폐동 유통 업계에서 벌어지는 세금 전쟁은 해묵은 문제다. 논란의 중심에는 '부가가치세 매입자 특례납부제도'(선납제)가 있다. 2014년 시행한 이 제도는 폐동 거래 시 매입자와 매출자가 전용 계좌(동스크랩 계좌)를 통해 거래하도록 했다. 부가세 탈루를 막기 위한 조치다.

매입자가 매출자에게 폐동 공급가액을 입금하면 이 중 부가세 10%가 자동으로 국가에 납부되며, 이체 시 공급가액의 0.3% 가산세까지 함께 납부 해야 한다.

그러나 선납제를 시행한 지 8년째를 맞았음에도 업계 종사자들은 불편을 토로한다. 국고 활용도만 높였지, 정작 종사자들에게 돌아온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애초 부가세 탈루를 막으려 도입했다면 종사자들을 조세 포탈범으로 오인하는 사례는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부가세 탈루 방지 '선납제' 도입 8년째
매입자와 매출자 '전용계좌' 통한 거래
실제 세수확보 늘고 불법사례 줄었지만
"국고 활용도만 높아" 종사자들 불편


부가세 부담은 폐동 매입자가 하더라도, 부담 주체는 폐동을 공급하는 매출자인 만큼 이미 납부된 부가세를 돌려주는 행정 절차도 필요하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실제로 세무서를 상대로 부가가치세 환급 소송을 벌인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다면, 국가 입장에서는 선납제 시행 뒤 세수 확보 목적을 달성했을까. 적어도 세수 확보가 용이해진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업계에서는 제도를 시행한 첫해인 지난 2014년 세수가 2천억원가량 늘었다고 주장한다. 국세청과 일선 세무서에서도 선납제 시행으로 폐동 유통업 종사자 중 부가세를 탈루하는 사례가 줄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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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 탈루 기소 '법원 판결 제각각'

법관 현실 이해따라 유무죄 갈려… '복불복 게임' 고통받는 폐동업자

"세금 계산서를 왜 발행하지 않았죠?" 수원고법에서 허위세금계산서 교부 등 혐의로 재판을 진행 중인 이모씨 1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정은(가명)씨는 이러한 취지의 질문을 듣고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정은씨는 폐동 유통업에 10여년 가까이 종사했다. 그는 무자료 거래상으로 내몰린 이모씨에게 폐동을 공급한 당사자라며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정말 모르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업계에 대한 지식이 없어요. 폐동 업계에서 1차 수집자는 세금 계산서 발행을 할 수가 없거든요. 재활용 쓰레기잖아요. 누가 거기에 계산서를 발행하나요?"

폐동 업계에서는 세금 탈루 혐의로 법 심판을 받는 건 '복불복 게임'이라고 한다.

대다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허위세금계산서 교부 및 수취 등) 혐의로 법정에 서는데 업계 상황을 이해하는 법관이 많지 않다는 주장이다.

일부는 매입과 매출금을 합한 거래 공급액이 30억원 미만이었다는 점을 인정받아 특가법이 아닌 조세범 처벌법이 적용돼 형량이 감경 되지만, 이마저도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해진다.

30억원 미만땐 감경… 그마저도 징역·벌금형
재판 증인 나선 무자료 공급자
"재활용 쓰레기 누가 계산서 발급하나"


당사자의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인데도 정작 결정권을 쥔 법관의 인식은 천차만별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한 마디로 법관이 누구인가에 따라 운이 크게 작용한다"며 "재판부에서 업계를 이해하는 정도의 차이에 따라 형량이 좌지우지 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유무죄 평결이 난 판결문을 들여다봤다. 쟁점은 하나였다. 재판부에서 업계 특성상 도매상 이전 폐동 매입 단계에서 무자료 거래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해줬는지 여부다.

서울고법 제3형사부는 지난 2012년 특가법 위반(허위세금계사서 교부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 김모씨는 징역1년6월을 선고 받았다. 김모씨는 벌금 6억원 추징 명령도 받았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최초 수집 단계에서 계산서 발행이 어려운 업계 현실 등에 비춰볼 때 피고인의 거래 행위가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김모씨가 폭탄업체라는 취지의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유사한 최근 수원지법 제12형사부에서는 같은 혐의로 법정에 나선 피고인 이모씨에게 징역3년 6월을 선고하고 벌금 100억원 추징을 명령했다. 이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은 오는 21일 열린다.

/김영래·김준석·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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