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현 인하체육인회 회장이 유도 입문 60년 만에 공인 9단에 올랐다. 대한유도회는 정기승단심사를 통해 김도현 회장의 9단 승단을 결정했으며, 지난 11월 말에 단증을 교부했다. 김 회장은 8단 승단 이후 12년 만에 9단에 오르며 '유성(柔聖)'의 반열에 섰다.
이로써 인천광역시의 유도 9단은 김 회장까지 3명으로 늘었다. 전국에서 유도 9단은 각 광역시·도에 2~3명 정도 있다고 보면 된다. 유도에서 9단 승단이 이처럼 힘든 이유는 단순히 유도를 잘한다고 해서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도에서 5~6단 정도면 실질적인 기술은 모두 익혔다고 말한다. 그 이상은 유도 발전의 공헌과 훌륭한 인격 등 기술 외적인 요인들이 조건으로 작용한다. 유도에서 최고의 단인 9단이 되기 위해선 유도부(팀) 창단을 비롯해 새 기술을 만들어내거나, 지역 체육 발전에 공헌하는 등의 활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평택에서 출생한 김 회장은 평택중 입학 후 1학년 때 접한 유도에 심취했다. 김 회장은 "남들은 보름 동안 익힐 낙법을 하루 만에 다 배웠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면서 "당시 너무 무리했는지 며칠 후 쇄골이 부러졌는데, 집에서 알면 운동을 못 하게 할까봐 아픈 것을 감추고 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동급생보다 덩치가 컸던 김 회장은 2~3세 많은 고교 선배들과 운동을 같이했고, 기량도 그만큼 빨리 향상됐다. 때문에, 동급생과 경기에선 진 적이 없었다.
평택고에 진학한 김 회장은 당시 경기도 제1의 도시였던 인천시에서 열리는 대회에 종종 나섰다. 당시 경기도 학생 유도는 평택고와 인천 송도고가 양분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교의 맞대결은 빈번했으며, 라이벌 의식도 상당했다.
김 회장은 1968년 인하대(당시 인하공과대학) 응용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체육 특기자가 아닌 입학시험을 통해서였다. 대학에서도 학업과 유도 선수로 활동을 병행하며 1학년 때 출전한 전국체전에서 3위에 입상하는 등 성인 무대에서도 기량을 인정받았다.
군 복무 후 복학해선 일선 체육관에서 운동하면서 후배들도 지도했다. 졸업을 앞둔 때 행정 일을 보면서 후배들을 이끌어달라는 대학 측의 부탁을 받은 김 회장은 고민 끝에 학교에 남았다. 김 회장의 이 결정은 결과적으로 인하대 총동창회 상근부회장, 현재 인하체육인회 회장까지 이어지게 만들었다.
김 회장은 1975년 졸업 후 인하대 학생과에 근무하면서 경기도유도회 전무이사로 일했다.
1981년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해 경기도와 분리되면서 인천시유도회 전무이사로 활동을 이어갔다. 2000년까지 25년 동안 유도회 전무이사직을 유지했다. 전무이사로 있으면서 김 회장은 인천 동구청 여자 유도와 인천시체육회 남자 유도팀 창단을 이끌어냈다.
특기자 아닌 시험으로 입학… 비교수 출신으로 첫 대외협력처장 역임
인천시유도회 전무이사 역임… 남·여 유도팀 창단 이끌어내기도
대학에선 1982년 유도부 창단 이후 체육 전문 조직인 체육진흥과 설립에 힘을 쏟았다. 체육진흥과는 씨름, 배드민턴, 역도 등의 종목 창단에 앞장섰다. 야구와 배구 등 기존의 인기 종목팀들과 함께 비인기 종목 팀들의 창단을 해낸 것이다.
김 회장은 "당시 영입된 야구의 김기태와 서재응, 씨름의 장지영과 고경철 등은 인하대와 인천체육의 위상을 높인 인물들"이라며 "그때 전국체전에서도 인천시의 획득 메달 중 4분의1 정도를 인하대가 담당할 정도로 인하대 체육이 강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인하대 역사상 비 교수 출신으로는 첫 대외협력처장(2급)까지 역임한 후 정년 퇴임한 김 회장은 인하대 총동창회 상근부회장으로 활동하던 2014년 초 인천시체육회 사무처장으로 부임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개막까지 7개월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지역 체육계의 수장으로서 대회 준비와 성공적 개최에 기여한 김 회장은 그해 12월에 대통령 표창과 이듬해 1월에 대한체육회장 공로상을 받았다.
김 회장은 "체육인으로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시체육회 사무처장으로서 지역에서 개최된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던 때"라면서 "대회기간 동안 한 번 집에 들어갔을 정도로 바빴지만, 국내외 체육인들과 만남을 통해 인천 체육을 알릴 수 있어서 보람 있고 기분 좋았던 순간"이라고 돌아봤다.
인천시체육회 사무처장 퇴임 후 김 회장은 '인하체육인회'의 창립준비공동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2017년 초 창립 후에는 회장으로서 지역 체육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인하체육인회는 인하대 전·현역 선수와 지도자들의 모임이다.
"총동창회에서 일할 때부터 인하체육인회를 구상했습니다. 체육인들 간의 화합과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모임을 생각했었죠. 그러다가 대학에서 경제적 논리에 의해 야구장과 씨름장이 없어지고, 유도부가 없어지면서 더 이상 체육인회 창립을 늦춰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창립 이후 5년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체육인회에선 체육발전기금을 학교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금은 학교 예산으로 충당할 수 없는 부분에 투입되고 있어요. 예를 들면 동계훈련비와 대회 출전비 등은 학교 예산에 잡혀있습니다. 예산에 맞춰서 대회 당일에 개최지에 가서 대회에 출전한다면 선수들이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기 힘들 겁니다. 수일 전에 대회 개최지에 가서 해당 경기장의 분위기도 익히고 선수 본인이 컨디션 조절도 하면서 대회를 준비해야죠. 이러한 비용 등을 체육인회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AG 7개월 앞 시체육회 사무처장 부임해 성공 개최 공로 대통령 표창
인하대 유도부 부활 소식 겹쳐… 가슴에 '유능제강'·'외유내강' 새겨
김 회장과 인하체육인회의 노력과 함께 최근 김 회장의 9단 승단 소식까지 더해진 가운데, 인하대 유도부가 부활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며칠 전 학교 측은 유도부 재창단을 결정했다"면서 "이규생 인천시체육회장이 힘을 보태줬고, 지역 유도인들도 힘을 모아주면서 인천의 유도 꿈나무들이 대학에 진학해서 운동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유도의 매력을 묻자 김 회장은 두 4자 성어로 설명했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은 부드러운 것이 능히 단단한 것을 이긴다는 의미이고, 외유내강(外柔內剛)은 겉으로는 부드럽고 순하나 속은 곧고 꿋꿋하다는 뜻입니다. 수십년 동안 유도를 하면서 깨달은 부분이며 가슴에 새기고 있는 문구들입니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김 회장은 이같이 답했다.
"유도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몸이 허락하는 한 유도뿐 아니라 인천체육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단지 좋아서 하는 거예요. 누가 시켜서 하면 못하죠."
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김도현 회장은?
1948년 평택에서 태어났다. 평택중, 평택고, 인하대 응용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인하대 체육진흥과장, 재무부처장, 총무부처장, 취업센터소장, 생활관장, 대회협력처장 등을 역임했다. 학교에 있으면서 경기도유도회와 인천시유도회에서 25년 동안 전무이사로 활동했다. 이후 인하대 총동창회 상근부회장과 인천시 유도회 수석부회장, 인천시체육회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유도회 심의위원(1반), 인천시유도회 상임고문과 심의위원, 인천시 유도 고단자회 부회장, 인하체육인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