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들판의 흩날리는 벼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던 어린 소녀는 시골 풍경 속에서 농부의 꿈을 키웠다. 또래들이 대학 진학에 몰두했던 고교 시절, 양파와 대파가 합쳐진 형태의 양대파 재배에 푹 빠진 사춘기 소녀는 스스로 실험노트까지 작성해가며 특허권 획득을 위한 도전에 나섰다.
밭을 통째로 갈아엎는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은 끝에 3년여 만에 양대파 재배에 관한 특허를 따냈고 내친 김에 미국 특허까지 받았다. '양대파 전도사' 김도혜(25)씨 이야기다.
청년 농부 김씨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유년시절부터 농사일을 익히며 한국농수산대학교 채소학과에 진학한 그에겐 농부의 길은 어찌 보면 숙명이었다.
김씨는 "농사일이 힘들기도 하고 직업 영위가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니 농업이야말로 안정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이따금 비를 맞으면서 고된 일을 할 땐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잠시뿐이다. 농부가 된 건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싹이나 버려지는 양파 아까워 시도
"농업이야말로 고부가 가치 산업"
용인농업기술센터와 협약 재배도
과거 부모님이 정성스레 키운 양파가 싹이 나서 버려지는 게 안타까웠던 그는 양파를 다시 심어 줄기와 잎을 수확했다.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향과 맛은 양파와 비슷하고 식감은 대파보다 부드러운 양대파를 탄생시켰다.
열여덟 소녀의 집념은 생산량 확대 또는 규격 미달로 처분해야 했던 양파 농가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는 계기가 됐다.
김씨는 "양파 재배 방법만 바꿨을 뿐인데 두 가지 채소를 한 번에 맛볼 수 있게 됐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부담이 없어 채소 편식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아직도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널리 알려져서 앞으로 양파 재배 농가에 많은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용인시농업기술센터는 학교 급식 납품 등을 목적으로 친환경 양파를 재배하고 있다. 그러나 납품되지 않은 잔여 양파를 처리하는 데 애를 먹어 왔고, 그러던 중 다행히 김씨와 인연이 닿았다. 지난해 6월 협약을 맺은 뒤 9월 말부터 처인구 백암면 농가 일대에서 양대파 시범재배에 돌입했다.
그 결과 지난 7일 양대파를 수확하는 데 성공, 용인에서 양대파를 재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시는 오는 3월 김씨와 정식으로 협약을 체결해 향후 관내 농가에서 안정적으로 양대파를 재배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김씨는 현재 충남 당진에서 농지은행으로부터 임대받은 토지에 농사를 짓고 있다. 부모로부터 농토를 물려받아 농사를 이어가도 되지만 굳이 어려운 길을 택했다. 김씨는 "스스로 뭔가를 개척해 나가고 싶은 꿈이 있었고, 대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힘들더라도 그게 더 보람되지 않겠느냐"며 환히 웃었다.
용인/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