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인터뷰 이 빅토르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에서 최근 만난 '인천 함박마을 고려인주민회' 리 빅토르 회장은 "원주민과 고려인이 손을 마주 잡고 더불어 사는 함박마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1860년 무렵부터 구한말,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역사를 지나 독립의 기쁨을 누린 1945년 8월15일까지 한국을 떠나 러시아 등 구소련 지역에 이주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농업 이민, 항일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을 이유로 한국을 떠나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1937년 당시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조국과 멀리 떨어진 지금의 중앙아시아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머나먼 땅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조국을 그리워하며 민족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들과 그 후손을 가리켜 고려인이라고 부른다.

최근 고국인 한국으로 향하는 고려인이 늘고 있다. 이들이 국내에 정착해 모여 사는 마을도 전국 곳곳에 만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인천 연수구에 있는 '함박마을'이다. 현재 함박마을에 사는 고려인은 6천여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에게 2021년은 참으로 다사다난한 해였다. 지난해 4월 전국 최초로 고려인 스스로 힘을 모아 만든 마을 주민회인 '인천 함박마을 고려인주민회'(이하 인천 고려인주민회)가 발족했다.

연말에는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진자의 가족이 고려인 등을 대상으로 한 교회 행사에 참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함박마을 고려인들은 감염 확산에 대한 우려로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

공감 인터뷰 이 빅토르

인천 고려인주민회 리 빅토르(39) 회장을 최근 인천지역 고려인 지원 시민단체인 '너머인천고려인문화원'에서 만났다.

리 빅토르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고려인 3세다. 할아버지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나 1937년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고 한다. 리 빅토르씨의 아버지는 그곳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자랐다. 리 빅토르씨가 나고 자란 곳도 우즈베키스탄의 한 고려인 마을이었다.

그는 "고려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알아간 것 같다"며 "할머니가 러시아말을 잘하지 못하고 함경도 사투리를 사용하셨는데, 어린 시절 대화하면서 한국말도 조금씩 하게 됐다"고 말했다.

리 빅토르씨는 사범대학에 진학해 한국어문학과를 선택했다. 졸업 후에는 여행사와 골프장 등에서 우즈베키스탄에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통역 가이드일을 했다.

그는 "우리 민족의 언어라는 점에서 애착이 있어 한국어를 배웠고, 관련 일을 하면서 동포인 한국 사람을 만나면서 친밀감을 느꼈다"며 "살면서 꼭 한 번은 조상들이 살던 고국인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회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고려인이면서 대학 동창인 친구가 한국에서 자동차 판매일을 하고 있었는데, 리 빅토르씨에게도 한국행을 권한 것이다.

그렇게 리 빅토르씨는 2013년 한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대전에서 중고 자동차 판매일을 하던 그는 아내와 두 자녀가 뒤따라 한국에 오면서 인천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연수구 함박마을 인근에서 산다.

그는 "아이들은 언어 문제 등으로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대학교와 중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 언어 탓 어려움 겪어 지금은 대학교·중학교 잘 다녀
일자리·자녀 교육 위해 한국 찾지만 '고국 방문'에 의미


고려인들은 일자리, 자녀의 교육 등 다양한 이유로 한국을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고려인들이 한국으로 향하는 공통적인 이유가 하나 있다고 리 빅토르씨는 말했다. 바로 '우리 민족의 나라'라는 점이다.

리 빅토르씨는 "고려인들은 주로 더 나은 일자리와 자녀를 위한 양질의 교육을 위해 한국을 찾지만 무엇보다 고국을 방문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크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에 온 고려인들은 대부분 언어장벽에 부딪혀 애를 먹는다. 함박마을에 거주하는 고려인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함박마을에 사는 원주민과 교류하기 어렵고, 일자리를 구하기도 녹록지 않다.

그런 점에서 함박마을에 사는 고려인의 주민자치회인 인천 고려인주민회의 의미는 남다르다. 2020년 5월 열린 함박마을 도시재생 간담회에 모인 고려인 주민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대변할 자치회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실행에 옮긴다.

인천 함박마을 고려인주민회1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들이 스스로 힘을 모아 지난해 4월 전국 최초로 만든 마을 주민회인 '인천 함박마을 고려인주민회' 공동체 대표회의 모습. /너머인천고려인문화원 제공

함박마을 고려인들의 입장을 대표하고, 안정적인 정착을 도와주는 게 인천 고려인주민회 역할이다. 인천 고려인주민회에는 함박마을 상인모임, 인천 노인 모임, 인천 엄마 모임, 인천 청년모임, 인천 장애인 가족모임 등 다양한 공동체가 운영되고 있다.

인천 고려인주민회는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리 빅토르씨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주민회 활동 중 하나다.

그는 "가끔 언론에 일부 고려인들이 범죄와 연루됐다는 게 나올 때마다 우리의 이미지가 함께 안 좋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우리는 고국에 돌아와 정착한 고려인 1세대인 만큼 여러 사회 활동을 펼쳐 고려인을 향한 그릇된 인식을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범죄 연루 안타까워… 여러 사회활동으로 인식 개선
'자녀에게 재외동포 자격 부여' 그동안 목소리 낸 결과물


최근 고려인들을 들뜨게 한 기쁜 소식이 있었다. 법무부가 이달 3일부터 고려인 동포의 미성년 자녀들에게 재외동포(F-4) 자격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고려인 동포의 미성년 자녀들은 대부분 방문동거(F-1) 자격을 받아왔다. 친척 방문, 가족 동거 등 주된 체류자격에 따라 부여되는 방문동거 자격은 체류기간이 제한돼있고, 직업활동도 할 수 없다.

이제는 부모의 체류자격·기간과 상관없이 국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고, 취업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리 빅토르씨는 "자녀들에게 재외동포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고려인들이 그동안 의견을 모으고 목소리를 내온 결과물"이라며 "인천 고려인주민회도 더욱 나은 정주 환경을 위한 제도 개선에 힘쓸 생각"이라고 했다.

리 빅토르씨는 끝으로 "무엇보다 함박마을에 사는 원주민과 고려인이 손을 마주 잡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한국과 중앙아시아 문화가 공존하는 더불어 사는 함박마을을 만들어 다른 고려인 마을에도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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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태양기자 ksun@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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