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군 용문산사격장 폐쇄와 이전은 12만 군민의 숙원사업이자 해묵은 과제다. 1984년 2월 전차포 사격장 신설 이후 38년 동안 각종 인명 사고와 재산상 피해가 났지만 군(軍)은 안보논리와 대체부지·이전 비용 등을 이유로 주민들의 생존권은 늘 뒷전으로 밀렸다.
용문산 사격장 부지는 양평읍(42.22㎢) 신애리와 덕평리, 옥천면 용천리 등 3개 마을에 걸쳐 총 4.75㎢(약 144만 평) 규모로 읍 면적의 11%를 차지한다.
1997년 사격장 부지 중 양평군 소유 1.73㎢(36%) 부지의 무상임대 연장을 불허 해도 군(軍)이 계속 사용하자 1999년 처음으로 용문산 사격장 이전을 건의했고, 2001년 염광학원이 용문산에 의료전문대학 설립을 추진했으나 국방부가 동의하지 않아 무산됐다.
20여 년간 탄원서와 입법토론회, 국방부 및 국회 간담회, 성명서 발표 및 규탄집회 등 다양한 활동이 이어졌으나 바뀐 것은 없다.
그러던 중 2020년 11월19일 용문산사격장 '현궁 미사일 오발 폭발 사고'가 정동균 양평군수와 12만 군민의 분노와 인내심을 임계점에 도달하게 했다. 사격장 폐쇄 범시민운동의 도화선에 불을 댕긴 것.
정동균 양평군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고 발생 후 83일만인 2021년 2월 민관군 갈등관리협의회는 '용문산 사격장을 2030년까지 이전한다'는 합의 각서를 체결하고 지평전술훈련장 이전을 위한 국공유지를 교환한다는 성과를 이뤄냈다.
■ 4만여 명 사격장 권역 내 생활
양평군 도심은 용문산을 등지고 남한강을 바라보는 시원한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그런데 도심에서 바라본 용문산 왼쪽 산비탈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다. 겨울철 스키장처럼 반들반들하다.
산비탈에 동그란 원형 안에 숫자가 쓰여 있는 것을 보고서야 대전차포 사격장임을 깨닫는다. 산 오른쪽은 양평읍 도심지로 백안리와 공흥리, 양근리가 있다. 대단지 공동주택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도시의 팽창이 확연하게 보인다.
사격장 오발탄이 표적지를 최대 2.6㎞ 벗어나 날아들었다(2008년 용천리 사나사 주차장). 사격장에서 3㎞ 이내에 들어설 9개 아파트 단지도 피탄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격장 신설 당시인 1984년 양평읍 인구는 1만7천23명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읍 인구는 3만912명으로 향후 2~3년 내 4만명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12만 양평군 인구에 30% 이상이 사격장 권역 내 생활하는 셈이다.
사격장 피해 유형은 소음과 진동, 그리고 파편과 탄두(피)가 인근 민가로 날아 들어오는 경우와 토양과 하천수 오염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격장 부지 4.75㎢ 양평읍 면적 11% 달해
2008년 표적 2.6㎞ 벗어난 오발탄 사고 등
3㎞이내 예정 아파트 단지 9곳 '피탄' 우려
12만 郡 인구 30%이상 사격장 권역내 생활
지난해 3월 '용문산 사격장 갈등관리 협의회'는 현궁 미사일 오발 사고 발생 이후 2019년 기준 155일이었던 사격일수를 110일로 줄이기로 했다. 그간 군은 주민들에게 하루 10~60발의 탄을 발사한다고 밝혀왔다. 연간 1천발의 탄을 사격한 것으로 추정한다. → 표 참조
전차가 포격하는 순간 '펑!', 탄두가 표적에 맞을 때 '쾅!'하는 소음은 160㏈ 정도로 비행기가 뜨는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는 것보다 크다. 탄두가 표적에 맞을 때와 전차 이동 시 진동은 인근 민가 유리창을 깨뜨리거나 벽에 금이 가게 하고 마을 도로를 파손하는 등 주민에게 직접 피해로 와 닿는다.
사격장 인근에서 40년을 살아온 윤모씨는 "과거 산 밑 개천에서 물고기와 가재도 잡았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다. 텔레비전 소리가 12로 보고 있다가도 전차가 지나가면 30까지 최대로 올려도 안 들린다"며 "지금 포격 소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전에는 훨씬 더 심했다. 포격과 전차 이동 시 먼지와 진동은 말도 못한다. 유리창이 깨지고 집안 벽이 갈라졌다"고 말했다.
■ "참을 만큼 참았다. 용문산 사격장을 폐쇄하라."
2020년 11월23일 오전. 양평군 양평읍 도심지 덕평리 사격장 입구에 주민 100여 명이 모여 나흘 전(2020년 11월19일) 발생한 '미사일 오발 폭발 사고'에 대한 대규모 규탄 집회를 열었다.
용문산사격장폐쇄범군민대책위원회(위원장·이태영, 이하 범대위) 주도로 열린 집회에 참석한 군민들은 "참을 만큼 참았다"며 "주민 생명을 위협하는 용문산 사격장을 즉각 폐쇄하라"는 피켓을 들고 목청을 높였다.
사건의 발단은 앞서 11월19일 대전차 유도무기 '현궁(晛弓) 미사일 오발 사고'다. 양평종합훈련장에서 현궁 1발이 표적지를 벗어나 1.5㎞ 거리의 옥천면 용천리 논에 떨어지며 폭발했다. 폭발지점 20m 옆은 농가여서 자칫하면 인명피해로 이어질 뻔했다.
집회에 나선 정동균 군수는 "오늘 이후부터 용문산 사격장을 비롯해 관내 모든 군 훈련장에서 사격훈련을 하지 못한다"며 "폭발 소음과 진동, 오발 사고 등 일상생활과 재산권 피해를 감내해온 주민들의 희생을 이제는 끝낼 때가 됐다. 사격장 폐쇄 이전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0년 현궁미사일 폭발로 인내심 임계점
20m옆 농가 '아찔' 잇단 규탄집회·서명운동
합의각서 극적 체결 2030년까지 이전키로
정동균 군수 "군민 공간으로 바꿔나갈것"
양평종합훈련장(용문산사격장) 이전을 2030년까지 추진한다는 합의각서 체결까지 83일이 걸렸다. 정동균 군수와 군의회, 그리고 범대위의 투쟁과정은 일사천리였다.
2020년 11월19일 미사일 오발사고 이후 20일 사격장 폐쇄 성명서 발표, 21일 사격장 진출입로 차단, 23일 범시민 규탄 집회와 10만 서명운동 추진, 24일 군수와 군의회 11사단 항의방문, 12월 2일 정 군수와 정세균 국무총리 면담을 통해 용문산 사격장 폐쇄와 지평리 전술훈련장 부지 환원 등 현안 문제 해결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또한 2021년 1월 범대위, 양평군, 7군단, 육군본부(1차 회의만 참석)가 모여 3차에 걸친 비공개회의를 열었다. 마지막 회의에서 극명한 입장 차로 7군단 관계자가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면서 회의가 결렬되는 일도 있었다. 이후 7군단에서 문제의 해당 문구를 뺀 합의 각서를 제안, 3자 간 협의를 이뤄내면서 합의 각서를 체결했다.
정 군수는 2021년 9월 합의된 날짜보다 앞당겨 차질 없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국회 국방위원회 기동민, 김민기 의원을 만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정 군수는 "김민기 의원과 기동민 의원은 오래전부터 인연이 아주 깊어 저를 아주 반갑고 따뜻하게 맞아 줬다"며 "민선 7기 이후 극적으로 체결한 합의각서에 의해 다시 양평군민의 품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는 용문산 사격장 이전 사업과 지평리 전술훈련장 환원사업에 대해 두 의원에게 적극 힘써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군사시설로 인한 지역주민의 불편을 해소하고 군의 안정적인 훈련 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국방부와 지역사회의 지속적인 소통으로 상생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앞으로 민관군의 지속적인 소통과 더불어 군민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바탕으로 군사시설 관련 현안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정 군수는 "환원 예정된 사격장, 군부대 유휴부지는 조속히 양평군민을 위한 공간으로 바꿔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양평/양동민기자 coa007@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