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산시를 너무 사랑하는 오산 사람 김유훈 (주)오산양조 대표는 한때 잘 나가는 식품유통업체를 운영했다. 그 옛날 장이 서고, (구)양조장이 자리했던 인근에서 3대째 채소 등 식품을 판매했다. 번화하던 곳은 세월이 흐르면서 구도심이 됐고 공동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2015년 즈음 오산시는 구도심의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김 대표는 사업을 그만두었다. 오래된 자신의 사업장이 도시재생에 방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쉬움이 남았다. 사업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그 장소에 대한 추억이 흐려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구도심의 중심에 양조장이 있었다.
김 대표는 "어린시절 늘 양조장 근처에서 놀았어요.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어서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땅을 파서 타일을 붙여 만든 저장실과 자전거를 타고 말통에 막걸리 배달하던 사람들, 고두밥을 식히려고 널어놓은 풍경은 언제나 그리웠어요"라고 회상했다.
당시 도시재생 사업을 주관하던 오산시 공무원 이필온 팀장과 대화를 나누던 중 지나가는 말로 "양조장을 복원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술에 대한 애착이 많았던 오서윤 오산양조(주) 양조기술이사는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오산에 지역을 대표할 만한 술이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꼈다. 다양한 전통주 교육을 통해 전통과 전통주에 대해 이해하면서 그 아쉬움이 더욱 커져갔고, 없으면 만들어보자는 열정으로 2016년 오산시에 사업계획을 제출했다.
여러 교육기관에서 전통주에 대해 배우면서 동시에 오산시에 마을기업 형태의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오산을 대표하는 전통주를 빚고, 그 술로 오산을 알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목표 달성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다.
지역자원 순환을 위해 지역 농산물인 세마쌀로 빚은 전통주를 지역주민과 소통하는 매개체로 사용한다는 아이디어는 도시재생의 목적과도 잘 맞았다.
이 팀장이 다리역할을 하여 오산 양조장의 부활을 바라는 김 대표와 오산 전통주의 탄생을 꿈꾸는 오 이사가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나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016년 말, 한때 오산식품이었던 자리에 오산양조가 설립됐다.

# 오산의 술
오산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는 오산에서 나는 세마쌀을 사용한다. 2018년 출시한 '오산막걸리'와 '오매백주'는 고두밥을 두 번 쪄서 만든 이양주다.
'오산막걸리'는 이름처럼 담백하다. 예전 집에서 빚어 마시던 탁주 본연의 맛을 뽐낸다. 일체의 합성 첨가물 없이 전통방식으로 쌀과 물, 누룩으로만 제조한다.
'오매백주'는 오산의 상징새인 '까마귀'와 오산의 꽃 '매화'를 합쳐 만든 이름이다. 알코올 함유량 12%로, 쌀이 당화돼 올라오는 자연의 단맛을 즐길 수 있는 묵직한 탁주다.
김유훈 대표 "어릴때 풍경 그리워" 오서윤 기술이사와 의기투합
오산시 도시재생 발맞춰 '대표 전통주 생산' 농업회사법인 설립
2021년 출시한 '하얀까마귀'는 세 번을 쪄서 만든 프리미엄 탁주로, 오산과 막걸리에 관한 스토리가 담겨있는 제품이다. 까마귀가 하얗다니, 영문을 물으니 오 이사는 "까만 까마귀가 막걸리를 마셔서 하얘졌다는 스토리다. 예전 문헌에 하얀까마귀가 나타나면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내용이 있다"며 막걸리의 미백작용과 까마귀의 상서로움을 동시에 설명했다.

생막걸리를 잘 먹는 법도 알려주었다.
오 이사는 "생막걸리의 유통기한은 30일인데 병입 후 2주가 지났을 때 맛이 가장 좋다. 이것이 기성품과의 차이다. 기성품은 만들자마자 먹는 게 가장 맛있다. 그러나 양조장 술은 합성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고, 원주와 물만 섞어 제품을 내기 때문에 금방 생산된 술보다는 원주와 물이 잘 조화를 이루어 맛과 향이 안정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오산양조에 오면 생막걸리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 드린다. 술의 특징을 알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고, 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술을 함께 마시는 사람과 분위기에 따라 술맛은 얼마든지 더 좋아진다"고 말하며 주당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반면, 김 대표는 주량이 형편없다. 양조장 문을 열던 때, 친구들로부터 술을 한 잔도 못하면서 무슨 양조장이냐는 핀잔을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술맛을 잘 본다. 오산양조가 53도에 달하는 고도주를 개발할 때 김 대표는 처음으로 취했다.
그의 '독산 53' 음주 후기에 따르면 "독산은 증류 후 유약을 바르지 않은 옹기에 3개월 이상 숙성해 독주이지만 목 넘김이 부드럽고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길)바닥에 누우니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증류주로 '독산 53'과 '독산 30', '독산 30 미니어처'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독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게 쉽지 않았다. 식약처로부터 상품명 사용을 허가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식품이름에 '독'과 '산'이 들어가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다.
술을 파는 것보다 오산을 알리는데 더 무게를 두었던 오산양조는 '독산성'에서 따온 이름인 데 왜 쓸 수 없느냐며 국민신문고에 호소하고서 사용 승인을 받아냈다. '53'은 '오산'을 숫자로 비슷하게 나타낸 것이다. '30'은 오산시 시승격 30주년을 기념한다. 지독한 오산 사랑이 느껴지는 술이다.
세마쌀 사용 '오산막걸리'… 市 상징 까마귀·매화 담은 '오매백주'
독산성·오산 발음 살린 증류주 '독산 53'… 국내 입맛 '요리술'도
오산양조가 가진 또 하나의 대표 상품으로 '요리술'이 있다. 단맛이 강한 일본식 요리술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선한 제품이다.
김 대표는 "기존의 요리술은 당도가 34~36브릭스로 음식을 달게 만든다. 오산양조의 요리술은 당도를 18브릭스로 낮춰 요리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알코올 함유량 14%로 재료의 잡내 제거에는 특효가 있다"고 설명했다. 선물용으로도 판매해 명절에 앞서 판매량이 껑충 뛴다.
# 오산의 자랑
오산양조가 하는 일은 오산의 전통주를 만들어서 파는 게 전부가 아니다. 언제나 축제 같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 김 대표와 오 이사의 목표다. 잔치에 술이 빠질 수 없으니 지역의 술을 잘 빚어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정성들여 만들고 있다. 원료부터 제품에 담긴 스토리까지 진정한 로컬브랜드인 것이다.
'축제같은 마을 목표' 주민과 교류 중시 체험·교육프로그램 활발
지역 활성화의 구심점이 되고자 양조장을 하게 된 만큼 지역민과의 교류를 중시한다. 그래서 체험 프로그램과 교육활동을 벌이고 있다. 봄, 가을, 겨울에 전통주 빚기 교육을 진행하고 맥주 빚기, 와인클래스를 운영한다. 인근 도시의 양조장들과 협업해 전통주 알리기 행사를 기획해 두었다.

술을 주제로 하는 오산만의 축제 '플레이술라운드(가칭)'도 열고 싶다. 오산양조 앞 광장과 인근의 오색시장으로 연결되는 거리며 주변의 골목 골목마다 웃음소리가 가득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을 막는 것은 단지 코로나19 바이러스뿐이다.
오 이사는 "양조장을 열고 가장 뿌듯한 것은 우리 양조장에서 전통주 교육을 받으신 분들이 동호회를 결성해 활동하고 계신 것이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오산을 넘어 수원, 화성, 평택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분들이 양조장 운영을 응원해 준다. 공동체가 살아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을 공동체는 이웃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살맛 나게 한다. 사람들을 통해 오산양조와 오산이 알려지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에 감사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산/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