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통큰기사 불법촬영 피해 기획 관련
인천의 한 다중이용시설 여자화장실 입구에 '불법촬영은 범죄입니다!'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발생한 지 약 4년이 지났지만, 유사한 또는 이보다 진화한 수법의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인지역 디지털 성범죄 대응 및 피해자 지원 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피해자의 절반가량은 10·20대 여성이었다. 2022.3.2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20년 초 이른바 'n번방 사건'이라고 불리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며 국민의 공분을 산 지 약 2년이 됐다. 사건 이후 여러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정부와 지자체가 디지털 성범죄 대응에 노력하고 있지만, 불법 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는 여전히 곳곳에서 뭇 여성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영상을 촬영·유포하고 이를 가지고 협박하는 사건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지인의 얼굴 사진으로 만든 딥페이크 영상이나 10대 청소년과 발달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악질적 디지털 성범죄가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실정이다.

경인일보는 범죄 피해자의 어려움과 현장 수사의 한계점 및 제도적 보완 사항 등 디지털 성범죄 사각지대를 세 차례에 걸쳐 집중 진단한다. → 편집자주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20대 여성 김서윤(가명)씨 일상은 어느 날 받은 전화 한 통으로 무너져 내렸다. "불법 촬영 피해자로 확인되셨습니다." 지난해 7월께 인천의 한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이 전화 이후 김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그는 "처음에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며 "일상생활에 집중하기 힘들어 모든 걸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가해자는 인천의 한 20대 사업가 A씨로, 2020년 9월께 이른바 '길거리 헌팅'으로 김씨와 만나 사업 이야기로 친분을 쌓은 뒤 이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김씨가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된 건 그보다 약 10개월 후인 지난해 7월이었다.

"불법촬영 피해자" 경찰 연락
믿기지 않는 현실, 직장 그만둬
심리치료중 계속된 합의 전화

 

김씨는 심리 치료를 받으며 회복에 집중했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은 여전히 그를 괴롭혔다. 그는 "경찰과 검찰로부터 사건관련 연락을 계속 받아야 했다"며 "가해자 측에서 합의를 요구하는 전화도 수차례 걸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건을 잊으려고 노력해도 이러한 전화들 때문에 잊을 수 없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체포 당시 A씨의 USB와 하드디스크 등에서 발견된 불법 촬영 영상만 약 80개였다. 중·고등학생 등 청소년들의 영상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는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김씨는 "영상이 유포되지 않았길 바라고 있다"면서도 "가해자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올 때마다 이 사람도 내 영상을 본 것은 아닌가 불안했다"고 했다. 이어 "사람들 시선이 너무 무서워져 개명과 휴대전화 번호 변경까지 고민했다"고 했다.

A씨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돼 올해 1월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김씨는 "이제 겨우 1심 선고가 났다"며 "재판이 대법원까지 가게 되면 앞으로 수년 동안 이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대법 판결까지 수년 걸릴수도"
"디지털 성범죄 예방 강화해야"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n번방 사건 이후 2년이 지나는 동안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유포된 영상을 완벽히 삭제 못 하거나, 가해자 처벌 수위가 낮은 등 기술적·법률적 한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을 늘리는 등 디지털 성범죄 예방을 위한 선제적 조치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관련기사 3면([n번방 사건 2년, 여전히 불안하다] 창문 넘어 들어온 '검은 손'… 가해자는 지금도 같은 아파트 산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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