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팔탄공적비
경기도 내 유일한 최다선 조합장이자 최연장자인 팔탄농협 나종석 조합장이 22일 공적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누가 해도 할 일이면 내가 하자. 언제라도 할 일이면 지금 하자. 지금 내가 할 일이면 더 잘 하자'.

'성실'에 관한 나종석(76) 팔탄농협 조합장의 지론이다. 그는 평소 이 말을 자주 했다. 또한 평생 이 말을 실천했다. 팔탄농협에서 30년째 일하고 있으니 직원들도 모두 이 말을 알고 있다. 나 조합장은 스스로 먼저 실천했고, 직원들에게도 함께 성실하자고 권했다.

어느 날, 그의 말이자 실천이자 삶인 이 글귀가 크리스털패에 새겨져 그의 책상에 놓였다. 직원의 선물이었다. 일을 하다 가끔 글귀에 눈길을 둔다. 직원의 손을 통해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 글귀를 보며 성실함이 지닌 힘을 실감한다.

그는 지난 1993년 제8대 팔탄농협 조합장으로 취임한 이후 30여년 동안 조합장 6선을 이루었다. 조합원 2천여명의 팔탄농협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20억5천여만원을 달성했고, 조합원에 대한 환원사업 및 영농자재 보조지원 등으로 21억1천여만원을 지원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실적은 나아졌다. 내년에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를 치르니 15대 조합장으로서의 임기가 1년 남았다. 조합장으로 보내는 마지막 1년이다.

성실함으로 전국 최우수 농협으로 우뚝 세워… '미농 공적비' 제막 영광
일손 부족한 농촌에 '건답직파' 재배방법 찾아… 올 60가구 70만㎡ 계획
왜소한 덩치 40㎏쌀 옮기는게 버거워 미곡종합처리장 설립 결심 보람도


22일 팔탄농협 주변으로 모처럼 활기가 가득 찼다. 작고 조용한 마을에 공적비가 서니 농협 사람이고, 마을 사람이고 왁자하게 모여들었다.

이날 오후 2시에 '미농(米農) 나종석 조합장 공적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경기도 내 유일한 최다선 조합장이자 최연장자로서 그가 세운 업적을 기리고자 조합 임원들이 이를 준비했다. 농협중앙회 이성희 회장을 중심으로 공적비설립위원회가 결성됐다.

화성시 10개 농협 조합장들이 모두 참여했고, 팔탄농협 임원들도 합세했다. 이들은 공적비에 '팔탄농협을 연 3회에 걸쳐 전국 최우수농협으로 우뚝 세웠다. 비약적인 사업 성장을 꾀하면서 쌀 재배 농가를 위한 미곡종합처리장 설치, 벼 직파재배를 적극 권장하여 농가 일손을 줄이는 데 힘을 쏟았다.

경기도 내 유일한 최다선 조합장이자 최연장자로서 농협중앙회로부터 농업자금과 농기계, 차량 등을 유치하여 경영을 호전시키고 조합원의 부담을 경감시켰다' 등의 업적을 적고, 농협 운동의 표상으로서 그 뜻을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는 마음을 담았다.

공적비의 글귀는 한눈에 읽히지만 30년의 시간 동안 성실함 하나로 팔탄농협을 전국 최우수농협으로 일군 그의 노력에 관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은 날이 저물 때까지 회자됐다.

나종석 팔탄농협조합장40000

'미농'이라는 나 조합장의 호는 김훈동(전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팔탄농협 사외이사가 지었다. 쌀 '미'자와 농사 '농'자니 쌀농사라는 뜻이다. 만나면 맨날 쌀 이야기만 하니까 나 조합장에게 이만한 이름이 없다는 설명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나 조합장은 6년째 건답직파 재배를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건답직파는 모내기를 하지 않고, 물을 대지 않은 마른 논에 볍씨를 바로 뿌리는 파종방법이다. 벼를 못자리에서 육묘해 본답에 이앙하지 않고, 본답을 정지한 다음 직접 볍씨를 파종해 수확할 때까지 같은 자리에서 재배하는 직파재배의 일종으로, 생력재배 기술이 필요한 농사법이다.

생력재배는 노동력의 부족으로 인한 농가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된 재배방법이다. 노동력과 농자재 투입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농촌에 일손이 부족한 현실에서 농가의 자생력을 지키기 위해 방법을 찾은 것이다.

팔탄농협은 조합원들에게 비료, 농약, 볍씨 종자 등을 100% 지원해준다. 파종은 드론을 이용한다. 건답파종용 트랙터와 파종기 등 직파재배 지원용 농기계를 40여 대 보유하고 있다. 2017년 직파재배 농가는 7가구였다. 5년 동안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57가구가 재배 방식을 전환했다.

올해는 60가구가 70만㎡에서 직파재배를 할 계획이다. 경기지역 벼 직파재배의 선두주자로서 2019년 벼 직파재배 파종 시연회를 열기도 했다.

나 조합장은 "나는 앞서가긴 해도 뒤로는 안 간다"며 "농사를 크게 짓는 사람들은 앞으로 직파재배를 해야 한다"고 필요성을 강조했다.

30년 세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고르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가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나 조합장은 "1993년에 적자인 상태로 조합장 업무를 시작했다. 줄일 수 있는 건 뭐든 줄이고, 어디든 내 손 하나를 더 보탰다. 그 당시에 내 몸무게가 50㎏이 조금 넘었는데, 왜소한 덩치에 40㎏짜리 쌀자루를 옮기는 게 버거웠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미곡종합처리장(RPC)을 짓기로 했다. 취임 1년 후 적자 경영을 흑자로 전환한 그는 1997년 미곡종합처리장을 신축했다. 이후 조합원들이 생산한 쌀의 시장 경쟁력을 높이고 판매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나 조합장이 6선을 달성하며 지역에서 '왕조합장'으로 불리는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섬세한 마음 씀씀이로 조합원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그의 강점이다.

그는 "미곡종합처리장을 만들어 놓으니 조합원들이 많이 고마워했다. 비용은 많이 들었지만 보람이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조합장으로 일하는 재미는 집집마다의 사정에 따라 베풀고 배려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지금은 예식장에서 결혼을 하지만 예전에는 집에서 결혼을 했다. 이들을 찾아가서 축하하고, 초상이 나면 장례식 치르는 걸 도와주며 살았다. 워낙 돈이 없던 농협이었으니 그렇게라도 했다. 그런데 내가 조합원들에게 감동을 주니 조합원들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나종석 팔탄농협조합장5

팔탄들녘을 땀으로 적신 '작은 거인' 나 조합장은 내년 7선에 도전하지는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오랜 시간 최선을 다했으니 아쉬움이 없다.

팔탄농협이 3년 연속 전국 최우수농협에 오른 것은 그의 자랑이다. 대학생들에게 사비로 장학금을 지원해준 것은 평생을 살아온 고향에 대한 사랑이다. 사심 없이 일했고, 받은 만큼 베푼 것은 그의 자부심이 되었다.

지난 2019년 경인일보가 주최한 경인봉사대상에서 농업인 부문 수상을 하며 받은 상금을 팔탄면 농요민요보존회에 기부하기도 했다.

나 조합장은 "이 자리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30년 동안 상도 많이 받았다. 그런걸 받고 열심히 안 할 수가 있나"라며 "내년에 조합장으로서 임기가 끝나도 할 일은 많을 것이고,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열심히 생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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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김학석·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 나종석 조합장은?

△ 1944년 팔탄면 월문리 출생
△ 1993년 제8대 팔탄농협 조합장 취임
△ 1997년 제9대 조합장
△ 2008년 제12대 조합장
△ 2012년 제13대 조합장
△ 2015년 제14대 조합장
△ 2019년 제15대 조합장
△ 2011년 화성시문화상 수상
△ 2015년 대한민국훈장(철탑산업훈장) 수상
△ 2019년 자랑스러운 전국농협조합장상 수상
△ 경인일보 경인봉사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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