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권시장에는 주가조작과 시세조종 등 불공정 행위를 막고 건전한 시장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법규와 장치가 있다. 반면 가상자산 시장은 하루 평균 11조원 이상이 오가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는데도, 법정 개념조차 없어 '무법지대'가 되고 있다.
증권시장과 가상자산 시장은 대규모·비대면으로 자본 거래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구조와 운영 행태가 비슷하다. 하지만 증권시장과 달리 가상자산 시장은 불안정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증권시장 출범 원년은 1956년이다. 한국거래소는 대한증권거래소라는 명칭으로 출범한 뒤 70년 가까이 존속하며 투자자와 상장사 보호 체계를 확립했다.
반면 가상자산 시장은 첫 번째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출현한 2009년을 기점으로 하더라도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지 13년이 채 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만큼이나 거래 안전성 보장과 재산권 보호를 위한 장치 마련을 선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가상자산 시장의 미흡한 거래 보호 장치
=증권시장의 규제는 투자자를 허위, 조작, 사기 등 불공정 행위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투자자 보호에 근간이 있다.
증권시장은 증권 발행기업과 투자자 사이의 정보비대칭성을 보완하고자 '공시규제'를 엄격히 적용한다. 공시는 증권 발행기업의 정보와 유가증권의 가치평가에 영향을 주는 정보를 제공해 투자자들의 투자의사결정을 돕는 장치다.
증권시장 '공시규제' 엄격히 적용
가상자산 검토보고서는 '일회성'
거래중지·상폐 뚜렷한 기준 없어
"상장·운영 다하면 사고날수 밖에"
가상자산 시장에서 각 거래소는 '가상자산 검토보고서' 형태로 투자자들에게 코인 발행 상장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검토보고서 자체가 일회성이고 공시 사항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코인 발행(상장)사가 건전하고 사업을 꾸준히 영위할 수 있는지도 불명확하다.
게다가 거래소의 투자유의종목 지정, 거래중지, 상장폐지의 뚜렷한 기준도 없어 공시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이뿐 아니라 미공개 중요정보를 이용한 내부자 거래,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를 차단할 상시 기구도 없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의 가상자산 거래업자(거래소) 운영은 제도권 밖에 있기 때문에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꼬집는다.
이 연구위원은 "가상자산 거래소는 상장 심사와 유의종목 지정, 상장폐지 권한을 모두 쥐고 있다. 민간이 하더라도 주식시장의 한국거래소처럼 공적 기능을 가진 곳에서 해야 한다"며 "민간 거래소에서 상장과 운영을 다 하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거래소마다 각각 코인(토큰) 가격이 다른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 탈세 숨기는 가상자산?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발표한 가상자산 일 평균 거래 규모(지난해 하반기 기준)는 11조3천억원이다. 가상자산 시장은 거액이 움직이는 산업으로 성장하면서 세금 체납자의 '뒷주머니' 역할도 했다.
경기도가 지난해 가상자산 거래소에 지방세징수법에 따른 질문검사권을 행사해 체납자 1만2천613명으로부터 압류한 가상자산은 530억원에 달한다.
체납자 1만2천여명 530억원 압류
동결만 가능·원화 매각 동의 필요
문제는 실명 입출금 계좌 제휴를 맺지 않은 코인마켓 거래소에선 체납자의 가상자산을 찾기도, 압류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게다가 체납자의 가상자산을 압류하더라도 계좌를 묶는 동결만 가능할 뿐 원화로 바꿔 징수하려면 체납자의 동의가 필요해 여전히 빈틈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도 조세정의과 관계자는 "일반 금융권의 경우 증권 자체를 압류해 매각하는 추심의 법적 근거가 있지만, 가상자산을 강제 추심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며 "압류한 530억원 중에 60억여원은 31개 시·군 담당자들이 체납자를 설득해 징수했지만, 나머지는 묶어만 둔 상태"라고 말했다.
체납자가 숨긴 가상자산을 압류하기도 힘든 판국에 정부는 가상자산 소득에 과세를 하는 소득세법 개정을 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소비자보호연구센터장도 "정부가 특정 소득을 과세 대상으로 해 국가 재원으로 쓰려면 해당 소득을 발생시키는 거래의 안전성을 보장하고 납세자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며 "가상자산 시장이 법 제정 없이 방치하기엔 너무나 큰 규모로 성장했기 때문에 가상자산 사업자를 기존 금융기관에 준해 관리 감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가상자산업법 제정 논의 어디까지 왔나
=국회에 발의된 가상자산 시장 관련 법안은 전자금융거래법·특정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6건과 가상자산업법안(대표발의 이용우 더불어민주당)·가상자산 거래 및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권은희 국민의당)·가상자산산업기본법안(윤창현 국민의힘) 등 7건 등 총 13건이다. 모두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전자금융거래법과 특정금융거래법 등 기존 법률에 대한 개정안의 등장 배경은 가상자산 사업자의 불공정행위와 거래소 해킹 또는 오류 등으로 인한 피해자 보호 근거 마련이다.
불공정행위·해킹·오류 등 차단
관련 법안 13건 국회 정무위 계류
개정안 제안 이유와 주요 내용을 종합하면 ▲가상자산의 법정 정의 ▲사업자 준수 의무사항 규정 ▲이용자 피해 사전 방지 위한 손해배상 책임 명시 ▲시세조종 행위 등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구제와 보호 규제 정립 등으로 일맥상통한다.
가상자산사업 관련 새로운 법률을 만들자는 제정안 7건엔 가상자산 산업을 보다 명확히 규정해 육성하고 가칭 가상자산정책조정위원회 설치, 가상자산산업발전기금 설치 등 정부 조직·기금 신설안도 담겨있다.
최화인 금융감독원 블록체인 발전포럼 자문위원은 "우선 이용자 보호를 위해 자본시장법 일부 내용을 개정해 가상자산을 금융투자상품에 포함하면 다단계, 유사수신, 시세조종, 내부자거래,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일방적 상장폐지 등으로부터 이용자의 자산과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며 "전담기구를 신설해 시장교란 행위가 발생하는 지점에만 개입하는 핀셋 규제를 적용하는 것도 기술기반 디지털 가상자산시장 생태계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표 참조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지역자치부=김환기 부국장,
정치부=손성배,
경제산업부=김동필,
사회교육부=이시은 기자,
사진부=김도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