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개표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에는 '사전투표'가 있다. 20대 대통령선거의 사전투표 수치는 제도 도입 이후 역대 최고 수치인 36.93%를 기록하며 참정권 실현의 긍정적 효과를 보여준 건 분명하다.
하지만 사전투표 제도 도입 이후 투·개표 선거 사무 동원 인력과 비용이 늘어나 '과노동 비효율'이라는 부정적 견해가 공존하고 정치 단일화가 만연한 한국 정치풍토에서 재외, 선상투표 등 사전에 투표하는 제도들에서 사표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 대선에 동원된 경기·인천 공무원 2만345명
=이번 대선에서 선거 사무에 동원된 전국 총 인원은 55만3천여명(추정치)이다. 이 수치는 사전투표와 선거일 투표에 동원되는 사무원과 참관인, 위반행위 예방·단속 인력 등으로 지난해 12월 기준 평택시 인구수와 맞먹는다.
선거 사무원 대다수는 지방공무원이다. 각 지역 선관위는 유관기관에 선거 사무원 참여 독려 공문을 보냈지만, 자발적 참여 효과는 거의 없고 사실상 할당이 있어 강제동원에 가까웠다. 이유는 간단하다. 14시간 장시간 노동에 시급이 6천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선거사무 동원 55만여명 추정
14시간 노동 시급 6천원 불과
대부분 지방공무원에 떠넘겨
경기 지역 투표 사무원과 개표 사무원 4만9천125명 중 1만5천265명이 지방공무원이었다. 지방공무원 강제동원 논란이 끊임없이 일자 선관위도 선거사무원 등으로 참여하는 지방공무원 목표치를 50% 이하로 잡기도 했다.
경기지역은 전체의 31.07%로 목표치 아래이긴 하지만, 기타로 분류된 인원을 제외하면 공직자 중에선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인천 지역도 마찬가지로 투·개표 사무원 1만1천440명 중 지방공무원만 5천80명이 동원됐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 남부의 지자체 공무원 A씨는 "투표 사무원과 개표 사무원 모두 지방공무원이 공직자 중에선 가장 많다"라며 "선관위 직원들도 투·개표소에 나와 있지만, 실제 유권자 응대와 참관인들 사이의 중재와 선거 사무는 오롯이 지방직에 떠넘겼다"고 토로했다.
선관위는 선거사무원으로 동원된 공무원을 사전투표와 본투표를 나눠 집계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현장에선 사전투표로 인해 더 많은 지방공무원들이 동원됐다고 호소한다.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 전국 55만3천여명의 선거 사무원 중에 14만8천여명이 사전투표에 동원됐다.
■ 투표율 제고가 능사인가
= 이번 대선 투표 결과로 볼 때 사전투표는 분명 투표율 제고에 기여했다. 하지만 본 투표에 앞서 이틀간 이뤄졌기 때문에 동원을 원치 않은 선거 사무원들에게 강한 반감을 갖게 한 것도 분명하다.
아울러 무효표 급증에 사전투표가 역할을 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전투표 직전에 이뤄진 단일화로 이번 대선의 무효표가 지난 19대 대선의 2.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전투표를 빼더라도 단일화로 2명의 후보가 사퇴하기 전 투표한 재외, 선상 투표 유권자 표는 총 16만4천986표다. 이 중 사퇴한 후보에게 찍은 유권자의 표는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사표로 전락했다.
거소투표제도 손질 필요 조언
이 때문에 재외 및 선상투표 각각 본 투표일 2주 전과 8일 전부터 이뤄지는 만큼 선관위가 등기 우편으로 투표용지를 보낸 뒤 되돌려 받는 거소투표 제도를 손질해 개선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이공주 상지대 법률행정학과 교수는 "사전투표가 전국 어디에서나 투표할 수 있다는 편리성이 있고, 사전투표 기간이 이틀이기 때문에 유권자의 편의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할지라도 사표와 자유선거 원칙 위배를 비롯한 예상치 못한 부작용과 법률적 문제가 있다"며 "후보, 정당을 떠나 부정선거라는 말이 선거가 끝날 때마다 나오고 선거 사무원으로 동원되는 공무원들에게 과도한 짐을 지운다는 점에서 사전투표를 폐지하고 우리나라 현 실정에 맞는 선거 제도를 형성해야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 도입할 만한 해외 투·개표 시스템은
=정치권 등에선 투·개표 시스템 개선 등 선거 제도 발전을 위한 자체 연구와 용역 등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마땅한 대안을 내놓진 못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연구 자료를 보면 미국의 몇몇 주는 선거사무소에서만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해 공직사회에 선거 사무 부담을 주지 않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또한 유권자가 우편으로 투표용지를 받아 작성한 뒤 직접 또는 우편을 통해 제출하는 부재자투표 방식은 모든 주에서 가능하고 오레곤 주에선 모든 선거를 우편투표 방식으로 한다.
전자투표기 도입 국가도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일부 주는 개표 정확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고 전자투표기를 사용해 실시간으로 투표기록을 계산해 공표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도 전자투표 전면 도입을 공언한 상태다. → 표 참조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