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단 땅끝 해남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들어오는 풍경은 드넓게 펼쳐진 황토밭이다. 해남 밭 75%는 적황색 토양이다. 해남 고구마는 4월부터 10월까지 황토밭이 듬뿍 머금은 게르마늄과 해풍을 맞고 태어난다.
해남은 전남 고구마 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전남 최대 주산지이다. 전국 생산량과 재배면적에 대해서는 10% 비중이다. 해남 500여고구마 농가는 지난해 생산량은 물론 품질도 향상시키며 처음으로 농가소득 2억원을 돌파했다.
23일 해남군에 따르면 지난해 해남지역 고구마 생산량은 3만7천9t으로, 전년(3만2천908t)보다 12.4%(4천101t) 증가했다. 지난해 해남 농민 538가구는 2천199㏊ 규모 고구마 농사를 지었다. 재배면적은 전년보다 239㏊(12.2%) 늘었다.
해남 고구마의 ㎏당 단가는 2019년 2천30원→2020년 2천870원→2021년 2천930원 등으로 꾸준히 올랐다. 덕분에 해남 고구마 농가 총소득액은 전년보다 14.8%(140억원) 증가하며 1천84억3천700만원을 기록했다.
비용을 뺀 순소득도 지난해 14.8%(66억원) 증가하며 500억원을 넘겼다. 농가당 소득은 지난해 2억200만원으로, 전년(1억6천700만원)보다 20.8%(3천500만원) 뛰었다.
해남 고구마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지리적표시(Geographical Indication) 농산물 42호로 등록하며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지리적표시제는 농수산물 또는 농수산 가공품의 명성·품질 기타 특징이 본질적으로 특정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기인하는 경우 그 특정지역에서 생산된 특산품임을 표시하고 있다.
해남군은 지난 2010년 '땅끝해남 웰빙고구마 산업특구'를 지정하며 지역 특화산업 경쟁력을 강화했다.
해남군은 최고 품질 고구마를 생산,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해남고구마산업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하고 2025년까지 297억여 원을 투입해 생산과 유통, 가공에 이르는 총 26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적황색 토양과 해풍… 친환경 재배 최적 환경
일교차 커 당도 높아… 지리적표시제 등록도
해남군, 올해부터 신품종 '소담미' 본격 출하
종합발전계획에 따라 군은 고구마 우량종순 안정생산 기반구축과 선별·세척·치유(큐어링) 등 시설·기술 지원에 나선다. 생산과 수확 후 관리를 세분화해 품질을 균일화하고 상품성도 높여 나갈 예정이다.
현재 해남에는 3개의 유통조직과 14개의 가공식품 생산업체가 활동하며 전국 소비자를 만나고 있다. 대농(大農)의 경우 6~12단계 선별을 통해 도매시장에 출하하고 있으며 중·소규모 농가는 온라인 쇼핑몰과 직거래 판로를 통해 수익성을 키우고 있다.
25년 고구마 농사를 지어온 박태열(59) 해남군고구마생산자협동조합 대표(해남고구마연구회 총무)는 해남 고구마 명성의 비결로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일조량, 바닷바람을 꼽았다. 그는 지난 연말 해남 고구마의 위상을 지킬 고구마생산자협동조합을 70여 농가와 함께 창립했다.
"해남 고구마는 청정 황토밭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자라 색깔이 유난히 선명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땅끝해남은 사시사철 따뜻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오히려 일교차가 심한 덕분에 고구마가 훨씬 달콤해집니다. 고구마를 심는 4월이면 전북지역보다 기온이 낮을 때도 있고 때로는 동해도 발생할 정도랍니다. 해남을 둘러싼 모든 자연기후가 고구마 재배에 최적 환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16.5㏊ 규모 밭에 이른바 '꿀고구마'로 불리는 베니하루카와 밤고구마인 진율미 등 여러 품종을 골고루 재배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해남군이 본격적으로 도입한 꿀고구마 대체 신품종인 '소담미'를 올해 6만6천여㎡ 규모로 넓혀 키워볼 계획이다.
일본 품종을 대체하기 위해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이 개발한 '소담미'는 단맛이 강하면서 꿀고구마보다 저장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건강과 면역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고구마에 대한 수요가 부쩍 늘었음을 실감한다"며 "20년 넘는 단골이 고구마를 캐는 10~11월만 기다리고 있기에 다음달 심을 고구마 종자를 키우고 밭 갈기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해풍을 머금은 황토밭에서 자란 해남 고구마는 때깔부터 다릅니다."
해남군 옥천면 신죽리에서 2㏊ 규모 고구마 농사를 짓는 인경기(66) 해남군고구마대농협동조합 총무는 "고구마는 후숙하면 더 맛있어지는 매력이 있다"고 귀띔했다.
40일간 후숙땐 더 달콤…
'겉뜨속차' 아이스 고구마
다이어트 도움 말랭이도
게르마늄이 다량 함유된 황토땅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해남 꿀고구마는 당도가 28브릭스(Brix)에서 높게는 32브릭스도 나온다. 사과와 수박, 오렌지는 당도가 12브릭스만 넘어도 '고당도'로 친다.
인 총무는 고구마를 고를 때 기회가 되면 한 번 분질러보기를 권했다. 맛있는 고구마는 속살에서 뽀얀 진액이 나온다. 고구마는 40일 가량 후숙하면서 자가 치료(큐어링)해 상처를 회복하며, 수분이 줄어들면서 전분이 당분으로 변한다. 여기서 만들어진 당분이 끈적끈적한 진액이 되는 것이다.
인 총무는 "고구마 크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너무 작거나 크지 않은 중학생 주먹 만한 크기로, 한 개 180g 안팎 중량을 고르면 무난하다"며 "흔히 왕고구마나 길쭉이 고구마를 '못난이 고구마'로 부르는데 이들 역시 맛탕이나 튀김으로 맛있게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고소하고 포슬포슬한 밤고구마, 달달하고 촉촉한 호박고구마를 그냥 찌거나 구워먹어도 맛있지만 고구마의 변신은 무궁무진하다. 해남군 직영 쇼핑몰 '해남미소'(hnmiso.com)에서는 생고구마 외에도 고구마 말랭이, 고구마스틱, 고구마빵, 아이스 고구마 등 건강한 먹거리를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고화력에 뜨거운 김을 불어넣어 만든 '아이스 고구마'는 해남 고구마 농가의 효자품목이 됐다. 전자레인지나 자연해동으로 껍질만 살짝 녹여먹으면 '겉은 뜨겁고 속은 차가운' 아이스크림 고구마로 거듭난다.
조금만 공들이면 고구마 셔벗, 고구마 라떼를 만들어 집 안에 작은 카페를 차릴 수도 있다. 아이스 고구마와 고구마 말랭이는 식이섬유와 무기질 성분이 많아 체중 감량과 변비 해소를 도우면서 '국민 간식' 반열에 들고 있다.
해남 고구마와 유기농 해남쌀, 자색 고구마 가루로 만든 해남 고구마빵은 빵 애호가들의 '빵지 순례길'에 이름을 올렸다. 실제 고구마처럼 생겼어도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는 재미는 덤이다.
외식사업가 백종원씨는 지난 2020년 과잉 생산된 '해남산 못난이 고구마' 300t의 판로를 모색하면서 고구마 생채와 고구마 수플레 팬케이크, 고구마 피자 등 다채로운 조리법을 공개하기도 했다.
23일 해남군 유통지원과에 따르면 지난해 '해남미소'를 기반으로 한 해남산 생고구마 온라인 매출은 20억1천900만원으로, 전년보다 140.6%(11억8천만원) 급증했다.
해남 고구마 온라인 매출은 2019년 4억6천300만원(1만8천152건)→2020년 8억3천900만원(3만4천584건)→지난해 20억1천900만원(7만8천448건) 등 고공행진 중이다.
고구마 말랭이, 아이스 고구마 등을 필두로 한 고구마 가공식품 온라인 매출도 생고구마 성장세 못지않다. 고구마 가공식품 온라인 매출은 2019년 1억1천800만원(9천725건)→2020년 8억5천900만원(4만470건)→지난해 9억8천700만원(4만6천857건) 등으로 2년 새 8배 넘게 뛰었다.
/광주일보=백희준·박희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