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 내 병가 제도의 핵심에는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이 있다. 현행 근기법에는 '병가'가 명시돼있지 않는데, 이 때문에 대다수 사업장은 '취업 규칙'에 근거해 병가를 운영한다. 그러나 취업 규칙에 병가를 명시하는 것 자체도 사측 자율에 맡겨져 있고 5인 미만 소규모 영세 사업장은 취업 규칙 자체가 없는 곳이 대다수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경기도에만 31만1천680개에 달한다.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는 85만4천878명이다. 해당 수치는 2019년 말 기준으로 코로나19 이후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배달 노동자 등 초단기간 노동자 수가 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5인 미만 사업장은 더욱 늘었다는 게 고용노동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병가'는 의무 조항이 아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일주일 격리를 하더라도 무급으로 휴가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주15시간 미만 노동자수 증가
5인 미만 사업장의 상황은 어떨까. 근기법 적용 대상에서 벗어난 해당 사업장은 사실상 노동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시피 하다. 5인 미만 사업장 권리 보장 활동을 하는 권리찾기유니온은 사업장 규모와 별개로 근기법 전면 적용을 촉구하며 길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권리찾기유니온 정책실장 하은성 노무사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도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병가와 상병수당은 대한민국에서는 근기법상 제대로 명시돼있지 않다. 상병수당은 일정 기간 몸이 아파 일을 못하면 소득 일부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제도로 사업 취지는 유급 병가와 일맥상통한다. 병가는 법에 규정되지 않았고, 상병수당은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거 규정이 명시됐지만 시행령에 관련 내용이 없다.
해외 선진국들의 사례는 다르다.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2020년 발표한 이슈 페이퍼 '외국의 유급 병가, 상병수당 현황과 한국의 도입 방향'에 따르면 세계 조사 대상국 중 173개국은 이미 법정 유급병가와 상병급여를 도입했다.
상병급여·법정 유급 병가 없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상병 급여가 없는 곳은 한국, 미국, 스위스, 이스라엘뿐이며 이 중 법정 유급 병가마저 없는 곳은 한국과 미국이 유일하다.
코로나19 치료 및 예방적 격리가 늘어나며 기존 상병 급여를 확대한 곳도 생겨났다. 독일, 아일랜드, 포르투갈,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에선 직장인이 아닌 자영업자에게도 상병 급여를 확대 지급하기도 했다.
이재훈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포괄적 혼합형 보장 체계 구축'을 언급하며 "유급 병가를 법제화하고 상병 급여를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노동자들의 '쉴 권리' 보장에 나섰다. 21대 국회 들어 코로나19 관련 병가 및 상병수당 관련 법안은 다수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김정호(김해을) 의원은 지난 2월 중소기업협동조합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몸이 아프면 일을 하지 못하는 소상공인에게 지급하는 상병수당을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외에도 더불어민주당 정춘숙(용인병) 의원과 같은 당 박광온(수원정) 의원은 국민건강보험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더불어민주당 서영석(부천정) 의원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노동자의 아프면 쉴 권리 보장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병가 제도가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관계자는 "현행법상 병가는 회사 내규에 따라 정하는데 무급인 곳이 많다"며 "병가를 회사 자율에 맡기는 꼴이라 하루에도 5건 이상씩 사용자와 노동자 문의가 쇄도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적 공백으로 인해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제도적으로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원금 통해 임금 손실 보존"
유급 휴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라면 정부 지원금을 적극 활용하라는 의견도 있었다.
박소영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노무사는 "병가를 법제화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임금손실이 무서워서 무급병가 대신 연차를 사용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박 노무사는 "병가를 법제화하는 건 다소 먼 이야기일 수 있다"며 "노동조합 단체 협약 등을 통해 연차를 쓰지 않고 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거나 지자체 지원금으로 임금 손실을 보전하는 등의 방법이 있으니 현재는 이런 방안을 노동자들이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