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1.jpg
무릎이 삐죽 튀어나오는 작은 의자에 앉았다. 나무 장작을 넣은 난로가 따뜻한 공기를 내뿜고 있었다. 잠깐 기다리는 동안 풍금 소리를 청해 들었다. 한눈에 봐도 오래돼 보이는데 아직도 소리가 짱짱하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3학년 2반 교실에는 잊고 있었던 추억과 기억이 머물고 있었다.

김포 덕포진교육박물관은 교사였던 김동선, 이인숙 부부가 집도 팔고 퇴직금도 털어서 만든 소중한 공간이다.

"지금은 보물이 됐지만 그땐 쓰레기를 모아놓은 것 같았죠. 어떤 분이 '김 선생은 뭐하려고 이렇게 쌓아 두냐'해서 웃었더니 '부부가 같이 미쳤군'이라는 얘길 들었어요." 이 관장이 주변 사람들이 말렸던 교육박물관 탄생의 비화를 털어놓았다.

h1.jpg
덕포진교육박물관 내부 모습.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교과서부터 작은 필기구까지 쉽게 버리지 못한 김 관장의 습성은 박물관의 밑천이 되었다. 김 관장이 교육과 관련된 물건을 소중히 모아온 데에는 '언젠가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박물관을 통해 아이들이 감성과 인성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길 바랐던 것이다. 그저 하나의 바람에서 머물렀던 그 생각은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되자 더욱 확고해졌다.

더는 교사생활이 불가능했던 이 관장은 학교를 그만두고 깊은 우울감에 빠졌다. 김 관장은 "그만두게 해서 미안하다. 학생들을 만나게 해주겠다"며 아내를 위로하고, 고향인 김포에 교육박물관을 세웠다. 3학년 2반은 이 관장이 마지막으로 담임을 맡았던 학급이다. 인터뷰를 위해 앉아 있던 교실에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 숙연해지면서 또 한편으로는 뭉클했다.

교과서부터 작은 필기구까지 한 데 모아
불의의 사고 후 더욱 확고해진 교육 이념
섬 폐교서 조개탄 구해오는 등 손때 가득

 

h2.jpg
덕포진교육박물관 이인숙, 김동선 관장.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이 박물관 구석구석 김 관장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다. 섬에 있는 폐교에 가서 조개탄을 구해오기도 하고, 강원도의 학교에서 버리려 놔둔 책걸상을 새벽같이 나가 실어오기도 했다. 교과서나 옛 유물들을 기증해온 고마운 이들도 있었다.

"옛날 물건을 보면 가슴이 떨리고 온몸에 경련이 난다"던 김 관장의 열정, 그런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지 않은 것이 뒷바라지였다"고 말한 이 관장의 따뜻한 마음이 한꺼번에 전해졌다.

그리고 풍금 소리에 눈물을 흘리던 관람객, 밥을 잘 안 먹던 아이가 박물관에 다녀간 후 달라진 일, 옛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공유하며 후원금을 주고 간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김 관장과 이 관장에게는 이 모든 것이 박물관을 만든 보람이자 재산이다.

"두 관장님은 무엇에 꽂히셨냐"고 질문했다. 이 관장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사랑에 꽂힌 거죠." 아내에 대한 사랑, 아이들에 대한 사랑, 교사로서 가진 교육에 대한 사랑. 그러고 보니 덕포진교육박물관은 온통 사랑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202204010100003410000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