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펄펄 날았는데 지금은 몸이 굳었지."
박영일(60) 김포경찰서 형사과장은 젊은 시절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회상에 잠겼다. 36년 경찰생활 중 33년을 수사 분야에서만 근무한 그는 다음 달 제복을 벗는다.
박 과장은 서울아시안게임이 열리던 1986년 강폭력전담형사대가 창설될 때 무도경관공채를 통해 경찰에 입문했다. 그는 태권도 4단의 무도인이었다.
강폭력 범죄를 주로 다루다 보니 신문지면을 도배한 수많은 사건 현장에는 그가 있었다. 이 때문에 범인 검거의 짜릿한 경험이 많을 법한데도 그는 가슴 아픈 순간이 더 많이 떠오른다고 했다.
박 과장은 "비가 억수로 오던 날 상관한테 전화가 와서는 서강대학교 공학관 뒤편 야산으로 오라더라.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첫 희생자를 확인하던 날이었다. 바로 다음 날에는 연세대 인근 야산을 대대적으로 수색했는데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한동안 분노감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몇 년 전 파주 30대 부부가 50대 여성을 토막살해한 사건도 계속 생각난다고 했다. 직원들과 고생하며 사건을 잘 마무리해놓고도 그는 재판이 열리는 법정까지 개인적으로 찾아갔다.
박 과장은 "이미 숨진 피해자는 법정에서 말을 할 수 없었기에 피의자 변호인이 뭐라 하는지 들어보고 싶었다"며 "그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보며 착잡했다"고 회고했다.
36년 경찰생활중 33년 '수사분야'만
업무관련 특허출원 '옥조근정훈장'
계급의식 없는 '친절한 과장님' 불려
박 과장은 자기계발에도 꾸준히 노력했다. 지난 2008년 그는 전국 모든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행정안전부 주관 '창의혁신공무원' 시상식에서 경찰업무 관련 국가특허출원 및 장비개발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0년에도 경찰청 주관 '과학수사대상'에서 선진수사에 기여한 공로로 과학수사분야 유일한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2018년 경정으로 승진해 울산 울주서와 파주·김포서에서 형사과장을 잇달아 맡았다.
박 과장은 '친절한 형사과장님'이었다. 직원들에게 화를 내는 적이 없었다. 순경에서 출발한 그는 계급의식이 없었다. 부하에게도 존댓말을 쓰고 격려를 자주 건넸다.
최근에는 지적장애인 암매장사건과 김포FC 유소년선수 사망사건, 고교생 실종사건이 동시에 겹쳐 모든 언론의 문의가 빗발치는 와중에도 끝까지 따뜻한 태도로 취재에 응했다.
떠나는 박 과장은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고 직원들과 사회적 정의를 실현했다는 일체감을 느낄 때 보람이 컸다"고 했다. 나긋한 어조로 그는 먼 곳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정년퇴직이라는 걸 하게 됐는데 후회는 없어요. 열심히 달려왔으니까."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