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집에는 물티슈가 없구나? 물티슈 쓰면 편한데 왜 안 써요?', ' 나무젓가락 쓰면 설거지 안 해도 되는데 편하지 않아요?' 같은 말들이다. 나도 몰라서 안 쓰는 게 아니라는 걸 길게 설명할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만 쓰레기가 줄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래서 어느새 우리 집은 물티슈가 없는 집, 일회용품 안 쓰는 집, 환경을 사랑하는 집이 되었다. 그리고 조금 불편한 집으로 불리고 있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전혀 부담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지만, 아직 그러한 마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막연하게 불편함만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편리한 방법이 많은데 왜 굳이 불편하려고 애쓰는가에 대한 질문도 있고, 가정에서 소소하게 하는 자연 보호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혼자서는 큰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어 그렇게 마음이 모이면 작은 것도 결코 작지 않음을, 연대의 힘을 나는 믿는다.
과일을 씻을 때 과일 세정제 대신 소프넛을 사용하거나 폴리 소재로 되어 있는 플라스틱 수세미가 아니라 자연물 수세미 말린 것을 사용하는 것, 집에 종이컵이나 나무젓가락 같은 일회용품을 더는 사지 않는 것, 손을 닦는 티슈를 두는 대신 수건을 두는 것 같은 이런 사소한 실천은 하다 보면 전혀 불편하거나 어렵지 않다. 오히려 쓸 때마다 자연에 발자국을 덜어낸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가 멋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비할 때 자연에게 좋은 선택을 하면 다른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덕분이다.
여전히 누군가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물으면 환경 보호에 대해 연설을 하고 다짐을 받아내진 못한다. 하지만 웃음으로 기꺼이 불편함을 자청할 용기는 있다.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 환경을 생각하며 하는 작은 소비와 실천이 결국 나를 건강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불편함 앞에 당당히 선다.
그 용기 있음이 기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