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자재 가격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승폭을 키워가면서 올해 들어 건설현장내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공사비 조정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면서 현장 '셧다운'이 예고되거나 실제 현실화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전 정부가 원자재 가격 상승을 분양가에 바로 반영하게끔 제도 개정에 나섰지만 서민들은 높아진 분양가에 한숨짓고, 건설사들은 생존 전략을 모색하는 등 모두 시름이 깊은 모습이다.
■ 치솟은 건설 원자재가격
= 건설자재 가격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세계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6월 건설 브리프'에 실린 '건설 자재가격 급등의 영향과 향후 대응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이 완화되면서 건설 수요가 증가해 자재 공급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올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하면서 공급 감소가 본격화됐다. 이는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일부 품목에 한정된 게 아닌 자재 전반에 걸쳐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시멘트는 1년 새 46%, 철근은 72%까지 가격이 올랐다는 게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의 분석이다 .
원자재 가격 상승은 공사비 조정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졌다. 수도권 골조 공사 전문업체들의 모임인 서울·경기·인천 콘크리트연합회는 다음달 11일 수도권 공사현장 셧다운을 결정한 상태다.
철물, 합판 등 핵심자재 가격이 지난해 대비 50% 이상 올라 시공사측에 공사 계약금 20% 인상을 요청했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3월 경기·인천지역 공사 현장 5곳이 잠시 가동을 멈추기도 했다.
수도권 골조업체들 "내달 셧다운"
정부는 '건축비 조정 가능' 개정
분양가 상승 전망에 서민들 한숨
상황이 이렇자 정부는 기본형 건축비를 주요 자잿값이 15% 이상 오르면 수시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분양가를 심사할 때도 자재비 급등분의 일부를 반영토록 제도를 개정했다. 건설 원자재가 상승분을 감안하면 분양가는 1.5~4%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분양가 상승을 마주하게 된 서민들은 착잡하다. 대출 규제 등이 여전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분양가 부담이 덜할 공공주택 등에 수요가 몰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건설사들도 원자재가격 상승 문제를 해소하기엔 이번 제도 개정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게 중론이다.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은 지난 23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자재 가격 폭등에 대한 추가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건설 자재 상승 여파에 6월 경기도 주택사업경기전망지수는 86을 기록하며 전달인 5월(93.4)보다 7.4p 낮아졌다. 지수가 기준치인 100 이하면 주택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전망하는 비중이 크다는 뜻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주택사업자는 단기 이익보다 생존에 사업전략 비중을 둬야 할 때"라고 제언하기도 했다.
■ 후분양이 대안될까
= 건설 자재 가격이 오르자 착공을 늦추는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월까지 건축 허가는 13.1% 증가했지만 착공은 오히려 13.3%가 감소했다. 이는 건설자재 가격 상승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건축 허가가 났음에도 공사비용이 오르자 쉽사리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는 곳이 나타났다는 얘기다.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건설자재 인플레이션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 속에 건설 업계에선 최대한 공사·분양 일정을 늦추는 모습이다. 이와 맞물려 후분양에 대한 관심 역시 업계에서 높아지고 있다.
건설원가가 치솟은 지금 상황에선 예정 분양가보다 실제 분양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후분양할 경우 건설 원가 상승분을 건축비에 반영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에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감 등도 한몫 한다.
올 하반기 분양을 계획했던 광주지역내 A업체도 자잿값이 가파르게 상승하자 '후분양' 카드를 쓸지 심각하게 고민했던 곳 중 하나다. 그러다 정부가 최근 기본형 건축비 조정 및 분양가 심사시 자잿값 급등분을 일부 반영키로 하면서 사전분양을 이어가기로 했다.
'후분양' 상승분 반영 가능하지만
구매예정자, 가격부담 증가 우려
건설사는 시장 상황 변동에 타격
후분양 시 주택 구매 예정자들 입장에선 분양가가 높아지는 점이 변수다. 가격은 오르는 반면, 선분양보다 더 빨리 중도금과 잔금을 마련해야 하는 점도 고충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일정을 늦추면 금융비용 부담은 있어도 그만큼 자재 가격 상승분을 건축비에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후분양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후분양 시 리스크가 없진 않다. 자잿값이 급등한 현재로선 건설업계에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부동산 경기가 유동적인 만큼 현재 같은 분양 추세가 이어지리란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정부 정책 기조나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분양 흐름이 결정된다. 정부 정책 등에 따라 분양 매수심리가 꺾일 수도 있고 올라갈 수도 있다. 시장 변동은 예측이 쉽지 않은데 후분양은 이에 대한 부담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강기정·윤혜경·김동필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