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쓸고 간 흔적은 처참했다.
5일 오전 10시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전원주택단지 일원. 이곳은 지난달 30일 밤 쏟아진 비로 인해 야산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불에 탄 주택 한 채가 산사태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3층짜리 주택은 1층이 주저앉아 두 개 층의 흔적만 남아 언제 쓰러질지 모를 정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 집의 소유자인 박모(46)씨는 2018년 3월 전원주택 생활의 꿈을 안고 이곳에 둥지를 틀었지만, 그 꿈은 4년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사고 당일 밤 11시 이후 빗줄기가 굵어지며 집 뒤편에 위치한 야산 일부가 무너졌고, 산에서 쓸려 내려온 흙이 집을 덮쳤기 때문이다.
산 중턱에 위치한 10m 높이의 보강토 옹벽과 철제 펜스는 무용지물이었다. 대량의 토사물은 순식간에 집 전체를 밀어버렸고 급기야 화재까지 발생했다. 소방 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지만, 산사태로 집 내부 보일러실이 노출되며 빗물과 전기 합선을 일으켜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밤 집중호우 야산 일부 무너져
보강토 옹벽·철제 펜스 '무용지물'
빗물·전기 합선 추정 화재 발생도
한순간에 보금자리 잃고 지인집 쪽잠
아내와 함께 거주하던 박씨는 당시 집을 비운 상태였다. 다행히 인명피해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박씨는 귀중품조차 하나도 챙기지 못한 채 한순간에 보금자리를 잃고 말았다. 임시 거처조차 마련되지 않아 아내는 지인의 집에 머물고 있고 그는 차에서 쪽잠을 청하며 지금까지 그날의 악몽을 되새기고 있다. 박씨는 "여기 살았던 죄밖에 없다"고 탄식하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주 비 예보를 앞두고 이웃 주민들은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당시 산 중턱 옹벽의 일부만 무너진 상태여서, 또 많은 비가 내릴 경우 무너지다 만 나머지 옹벽이 추가로 붕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웃주민 '추가 붕괴' 불안감 호소
현장에서 만난 주민 A씨는 "매 순간이 불안한 상황인데, 행정당국은 흙을 치우고 항공마대로 낮은 벽을 쌓아놓은 임시처방 외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으며, 여행용 가방까지 꺼내 짐을 싸고 있다는 주민 B씨는 "비가 또 오면 일단 무조건 대피부터 하라고 하는데, 그게 지금 우리한테 할 소리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이틀간 긴급 복구 작업은 마쳤고, 추가 조치에 대해 관련 부서들과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용인/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