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신의 생애 첫 장편영화 '경아의 딸'을 전국 극장에 개봉한 김정은 감독은 자신이나 자신이 만든 영화에 '인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좋다고 한다. 김 감독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인천영화'라고 얘기한다. 인천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의미다.
최근 백승기·이란희·정승오 감독 등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영화인이 선전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영화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정은 감독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지역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김 감독의 이번 장편 개봉을 반가워해야 할 이유다. 전국 60여개 상영관에서 일제히 개봉한 영화 '경아의 딸'을 만든 김정은 감독을 인천 동구 '화수부두'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매일 '스코어' 지금은 얼떨떨한 느낌… 빨리 다음 작품 하고파
'제작·배급 지원' 인천영상위 없었다면 완성 어려웠을 것
인천의 공간들 저마다의 시간 품고 숨은 이야기 갖고 있어
디지털 성범죄 소재에 겁내시겠지만 희망적 모습 그렸다
-'화수부두'는 이번 작품 '경아의 딸'에서 주인공 경아가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정리할 때마다 찾는 중요한 장소로 등장했다. 개봉 후 다시 찾은 소감은 어떤가.
"작년 겨울에 이곳에서 촬영을 했으니까. 1년이 넘었네요. 감회가 새로워요(웃음). 화수부두에서 촬영은 3일 했는데, 사전준비할 때 혼자 여러 차례 왔고요.
경아의 남편이 이 근처 공장 지역에서 일을 했고요. 남편에게 폭력을 당했을 때 혼자 마음을 풀기도 하고 그랬던 장소입니다. 화수부두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잖아요. 울적하면서도 청량한 느낌 그런 분위기 때문에 이곳을 택했어요."
-시나리오를 구상한 시간까지 합치면 꼬박 4년이 걸렸다. 첫 장편이 전국의 극장에 걸려 관객을 맞고 있다. 영화감독이 첫 장편을 완성했을 때 기분이 어떤가.
"저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거든요. 어쨌든 '결국' 완성해서 관객분들을 만나는구나 생각이 들어요. 감개무량하죠. 상영관에 걸려있고 계속 그날의 '스코어'가 매일매일 올라오고 있으니 신기하기도 하고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이런 과정들이 단편영화를 했을 때는 하지 못했던 경험이니까요.
시간이 지나야 내가 개봉을 했고, 관객을 만났구나 이런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지금은 그냥 얼떨떨한 느낌으로 살고 있습니다. 빨리 다음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지금은 큽니다."
-편집 등 후반 작업이 무척 오래 걸렸는데, 영화를 '결국' 완성해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제가 '결국'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촬영은 했는데 편집이 무척 오래 걸렸어요. 편집을 중간에 쉬기도 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쉬었어요.
편집 기사님이랑 한 두어 달 작업하고 잘 풀리지 않으면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하고 그 과정이 계속 반복이 됐죠. 영화가 완성이 되기는 하는 건가 걱정이 많았죠. 쉽게 뚝딱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전국 개봉관에서 상영하는 첫 장편이다 보니 주변 분들의 반응도 특별할 것 같은데.
"감사하게 부모님이 봐주셨어요. 부모님은 처음에 이번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하는지 모르셨어요. 지난 작품들처럼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끝나는 것으로 아셨나 봐요.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도 상영하고 시사회도 하고 언론에도 소개되니 주변 분들에게 관련 기사도 공유하고 뿌듯해 하셔요. '네가 만든 작품 중에 제일 낫더라'고 하셨어요. 무서운 소재를 자극적이지 않게 따뜻하게 만들어서 좋았다면서요.
여성 지인들은 공감한다는 말을 많이 해요. '이건 내 이야기다'라면서. 많이 울었다는 분도 있었고요. 남성인 지인은 거부감 없이 불편하지 않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고들 해요. 모든 남성을 불필요하게 나쁘게 그리거나 죄인취급 하지 않아 영화를 받아들이면서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혹시 영화에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나. 이번 작품을 자평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제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충분히 전달했습니다.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잘했다'는 생각. 영화를 만들 때 결국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거든요.
그런데 직접 만들다보니 내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기가 힘들어요. 더군다나 이 작품은 4년간 쥐고 있던 작품이다 보니 객관화하기가 힘들었어요.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었는데, 저는 진정한 관객이 될 수 없는 게 항상 조금은 슬퍼요."
-'인천영화' '인천감독', 지역색이 감독과 작품에 붙는 수식어가 괜찮은지 인천이 영화를 하기 괜찮은가.
"'경아의 딸'은 인천영화가 맞습니다. 인천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난 단편도 그랬고, 인천영상위원회의 지원이 컸습니다. '2019년 씨네인천 기획개발지원', '2020년 씨네인천 제작지원', '2022년 개봉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았는데요. 제작부터 배급(개봉)까지 과정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큰 힘이 됐습니다. 만약 지원을 받지 않았다면 작품을 안정적으로 완성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영화에 인천 배경이 대부분입니다. 화수부두, 대건고, 소래포구, 인천가족공원 등. 제가 살아온 공간이어서 인천을 담는 건 아니고요. 인천의 공간은 저마다 시간을 품고 있고 숨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공간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어 좋습니다.
이제는 인천 영화인들의 자부심이 조금씩 생기고 있어요. 옛날에는 인천을 사람들이 시골로 알아서 촌사람 취급받고 그랬는데 이제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인천으로 영화를 하러 오고 있습니다.
든든한 조력자들이 많아요. 인천영상위원회,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 독립영화협회 등이요. 전문적인 수업도 들을 수 있습니다. 영화인으로 살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인천은 영화하기 좋은 도시입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영화인데, 전 남자친구가 동의 없이 유포한 동영상 때문에 삶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은 연수와 지켜보는 엄마 경아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막연하게 불편해 할 수 있겠다 싶다.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나.
"연대와 위로가 영화의 주요 키워드입니다. 보시는 분들이 주인공들을 응원하고 또 그분들의 아픔을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디지털 성범죄를 다룬 영화라고 하니 겁을 내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이 힘들지만 부딪히고 일어서 나아가려는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영화를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인공의 고통에 관객 여러분이 함께 공감해 주셨으면 합니다."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 기자 yong@kyeongin.com
■ 김정은 감독은?
섬세하고 사려 깊은 태도로 약자를 살피는 시선으로 작품을 쓰고 만들려고 노력한다. 여러 영화제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충무로' 아닌 인천의 기대주로 연출력을 인정받는 감독이다.
최근까지 모두 5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다. 노량진 임용고시생의 이야기를 통해 청춘을 돌아본 단편 '우리가 택한 이별',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함께 하며 우정을 쌓은 두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 '야간근무' 등으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 1992년 인천 출생 ▲ 2015년 용인대 영화영상학과 연출전공 졸업 ▲ 2015년 단편 '우리가 택한 이별' 제52회 대종상단편영화제 본선 진출 ▲ 2017년 단편 '야간근무' 디아스포라영화제 개막작 선정 ▲ 2018년 단편 '막달레나 기도' 제6회 인천독립영화제 등 초청 ▲ 2022년 장편 '경아의 딸'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왓차가 주목한 장편상·CGV아트하우스상 ▲ 2022년 '경아의 딸' 제27회 아이치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