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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대형 무지개 깃발이 펼쳐지고 있다. ‘이상한·기이한’이란 의미의 단어 퀴어(queer)는 게이·레즈비언·트랜스섹슈얼·바이섹슈얼과 같은 다양한 성소수자를 아우르는 말이다. 사람을 만날 장소가 필요하고, 사랑을 나눌 기회를 찾아다닌다는 점에서 퀴어는 비(非)퀴어와 다르지 않다. 2022.7.16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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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인프라'가 서울에 편재된 것은 사실이지만 변화의 바람도 조금씩 불고 있다. 화성 향남 공감의원 산부인과는 경기 남부권에서 트랜스젠더 호르몬 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이다. 지난해 7월 개원해 올해 1주년을 맞은 공감의원 산부인과 이혜연 원장을 만나 한국 사회 성소수자 의료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원장은 트랜스젠더 환자 진료에 대해 "특이할 게 없다"고 이야기했다. 처방하는 약물에 차이만 있을 뿐 트랜스젠더 환자라고 해서 특별히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공감의원 산부인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성별 구분 없는 1인 화장실'이 눈에 띈다. 성중립 화장실*은 아직 한국 사회에서 낯선 풍경이다. 이 원장은 성중립 화장실에 대해 오직 트랜스젠더만을 타깃으로 삼지는 않았다는 점을 드러냈다.

"의도를 가지고 한 거죠. 만약 환자 수가 똑같다고 가정하면 항상 여자 화장실 회전율이 더 떨어지잖아요." 산부인과 특성상 여성 환자 비율이 월등히 많기에 성중립화장실을 두는 게 일석이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진료를 받으러 오는 트랜스젠더 환자 비율은 얼마나 될까. 이 원장은 "아직은 한 손에 꼽는 정도의 숫자"라며 "어쨌듯 아우팅 위험이 있기 때문에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 '믿을 만하다'는 식의 평판이 생겨야 환자가 늘어난다"고 했다. 퀴어프렌들리한 병원일지라도 트랜스젠더 환자에게는 병원에 오는 것 자체가 이미 아우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처음 접수할 때 신분증을 확인하거나 주민등록번호를 적는 과정을 거치잖아요. 겉모습으로 봐서 생물학적 여성인지 남성인지 모르겠는 경우에 힐끔거리는 시선도 있고, 아예 진료접수를 거부하는 곳도 있고요. 그래서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에 가지 않는 거죠." 트랜스젠더들이 감기에 걸려도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도 같다.

트랜스젠더 개개인의 몸 상태에 맞는 적확한 처방을 내려줄 의료진도 부족하다. 이 원장은 "성소수자가 문자 그대로 소수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현대 의학이 주류, 다수 중심으로 발전해 왔어요. 백인 남성 중심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 인종 간의 차이를 연구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성소수자는 숫자로도 소수잖아요. 그러다 보니 연구 결과 자체도 부족하고, 교육도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측면이 있죠." 

산부인과 女비율 월등 '일석이조'
아우팅 우려 진료 손에 꼽을 정도
비보험 부담 커 "사회적 변화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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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 슬로건으로 지난 16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빗속에 도심을 행진하고 있다. 2022.7.16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트랜스젠더 환자가 직접 의사에게 필요한 약물을 이야기하거나, 상담 없이 처방만 받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여기서 서울 강북에 있는 전문 병원에 가려면 2시간 정도 걸려요. 왔다 갔다 하는 게 힘드니까 처방만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는 분들이 있는 거죠."

병원에서 트랜스젠더 진료를 거부하는 이유에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이 원장은 "의대 다닐 때 한 번도 트랜스젠더 관련 내용을 배운 적이 없어요. 다른 병원들이 성소수자 진료를 하지 않는 건 해당 내용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했다.

"최근에야 서울대 의대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제가 학생 때 '나중에 이런 수업도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얘기하던 그 시점에서부터 거의 20년 이상이 걸린 거죠."

이 원장은 한국 의료 서비스가 보다 다양한 주체를 포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차원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의료인 한 개인이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수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의대 수업이나 전공의 수련 때 소수자 집단의 건강에 대해 연구하는 교육 과정이 있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수자 친화적인 의료기관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 의료 항목은 비보험에 해당하기에 비용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보험이 안 되니까 부르는 게 값이에요. 주사 한 대에 얼마냐고 묻는 전화가 오는 이유가 이거 때문이죠." 그는 "트랜스젠더는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면 평생 주사를 맞아야 한다. 수술을 결심한 경우 비용은 천문학적인 액수가 된다"며 보험 적용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이 원장은 현재 상황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 듯했다. 그는 "10~20년 전하고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어요. 성소수자 의료 연구회라는 학회도 준비 중이고, 편견 없이 접근하는 의료진들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이야기했다.

이 원장은 끝으로 성소수자 진료를 다루는 병원이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성소수자 진료가 엄청 대단하거나 특이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진료의 일환으로서 이런 성소수자 관련 과목을 확대하는 병원들이 많아졌으면 해요."

/신지영·이시은·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 성중립 화장실: 남성과 여성, 이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나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