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으로 너무 즐거운 경험을 했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주셨던 사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고 그리울 겁니다."
지난 4년간의 여정을 끝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마시모 자네티의 표정에서 짙은 아쉬움이 배어났다. 2018년부터 경기필을 맡은 마시모는 오케스트라를 안정적으로 이끈 것은 물론, 음악적으로도 성숙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그는 경기필과 함께 레스피기, 베토벤, 슈만 등 기술적으로 어려운 곡들을 시도하는 동시에 다양한 시대와 작곡가의 곡들을 선보였고, 섬세하고 세련된 지휘를 입히며 청중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그의 재임 동안 경기필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했다.
"테크닉·사운드에 놀라" 첫 만남 회상
어려운 곡 시도 '섬세하고 세련된 지휘'
마시모는 "계약 당시 경기필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들어본 상황이었다. 경기필의 테크닉과 사운드에 놀랐고 왜 리카르도 무티가 두 번이나 경기필과 함께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며 첫 만남을 회상했다.
악단의 가치를 알아본 상태에서 협업을 시작했다는 그는 "지난 4년간 연주하는 방식을 우리만의 스타일로 바꿨다. 유동성을 부여하고 새로운 호흡 방식을 만들었다"며 "이전에는 악단이 자기 연주를 하는 데 바빴다면 (연주 표현 방식의) 투명성을 통해 서로 들을 수 있는 마법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마시모 옆에서 경기필의 중심을 잡아온 정하나 악장 역시 "지휘자가 투명함을 많이 강조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경기필만의 언어가 됐다"고 밝혔다.
정 악장은 마시모에 대해 "모든 면에서 최고의 지휘자였다.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마치 동료처럼 대해줘 단원들이 편하게 음악을 했다"며 "워낙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다 보니 즐겁게 연습하고 교감할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된 점은 마시모에게도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백건우, 다니엘 뮐러 쇼트와의 협연, 돈키호테, 시벨리우스 교향곡은 물론 말러 교향곡, 정 악장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등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훗날을 기약하게 됐다.
하지만 다행히도 올해 초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무대에 올리며 마시모의 오페라를 기다렸던 관객들의 갈증을 해소해줬다. 마시모는 밀라노 라스칼라, 베를린 슈타츠오퍼 등 세계 최고의 오페라 하우스와 콘서트홀에서 활약한 '오페라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다. 오페라 지휘자로서 역량을 가감 없이 발휘한 해당 공연은 관객과 평단의 큰 호평을 이끌어 냈다.
정 악장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휘자가 대단한 영감을 줬다. 특히 오페라를 암보로 지휘하는데, 너무나도 완벽하게 외운 것이 느껴져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며 "어느 정도 음악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 리허설 때 한 디테일들도 모두 기억해 지시하는 것이 놀라웠다. 오페라 역시 재밌게 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정하나 악장 "즐겁게 연습 교감하게 해"
코로나 공연·취소 연기에 아쉬움 남아
마시모 임기의 마침표가 될 공연 '베르디 레퀴엠'은 애초 2020년에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합창 등 워낙 대규모로 진행되는 곡인 만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몇 차례 미뤄졌다.
마시모는 "슬픈 곡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계획이나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면서도 "죽음에 대한 생각이나 명상을 담고 있어 현재의 팬데믹 상황과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 기후변화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경기필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많이 보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마시모는 "관객 수가 점차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고, 그것을 놓아야 한다는 것이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경기필이 받는 사랑과 관심이 줄어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고 훌륭한 악단이기 때문에 그 행보를 함께하고 지원해달라"면서 "경기필과 함께한 기억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전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