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Net-Zero)은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전략 중 하나로 손꼽힌다. 기후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탄소를 배출된 만큼 흡수해 '0'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탄소흡수원이 필요한데 그동안 '그린카본'(green carbon)이 주목받았다. 아마존 열대우림 등 나무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취지가 컸다.
블루카본(blue carbon)은 최근들어 주목받고 있는 탄소흡수원이다. 탄소중립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세계 각국에선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블루카본이 그린카본보다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국제사회의 기대다. 블루카본이 지구 온난화를 막을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거대한 탄소흡수원 블루카본
블루카본은 얕은 바다 등에 서식하는 식물과 퇴적물 등 해양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를 의미한다.
블루카본은 2009년 국제자연연맹(IUCN) 보고서에서 처음 언급됐고, 2013년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갈대나 칠면초 등 '염습지', 해양에서 자라는 나무인 '맹그로브', 해초인 '잘피'를 블루카본으로 공식 인정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미국의 한 과학저널에 소개된 '2021 글로벌 탄소수지보고서'(Global Carbon Budget)에 따르면 블루카본의 탄소흡수속도는 산림 등 그린카본보다 최대 50배 빠르고, 그린카본에 비해 적은 면적에서도 더욱 높은 흡수량을 보인다고 한다.
그린카본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탄소 흡수 역량이 떨어지는 반면, 블루카본은 수천년의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탄소 흡수 역량을 갖는다는 내용도 있다.
산림 '그린카본'보다 탄소 흡수속도·유지력 탁월
바다식물뿐만 아니라 바다 밑 토양 등에서도 탄소가 흡수된다. 육상에서는 토양 박테리아들이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산소를 사용하고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 반면 바다 속에서는 산소가 차단돼 박테리아가 유기물을 분해할 수 없다. 이산화탄소가 방출되지 못한 채 유기물과 함께 갯벌이나 바닷속 토양에 저장되는 것이다.
갯벌도 탄소를 흡수한다. 갯벌에 사는 플랑크톤의 일종인 미세조류가 사는데, 이 미세조류가 광합성을 하면서 탄소를 흡수한다. 또 육지에서 흘러든 각종 유기물 등이 갯벌에 쌓이면서 탄소를 저장하게 된다.
■ 한국의 갯벌, 블루카본을 노린다
세계 각국은 새로운 블루카본을 찾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의 경우 '갯벌'에 초점을 맞춰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해양환경공단과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서울대 연구팀 등 10개 기관은 해양수산부의 지원을 받아 지난 2017년부터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갯벌을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블루카본 대열에 합류시키기 위한 연구인데, 지난해 처음 그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국내 갯벌이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갯벌의 탄소흡수 역할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갯벌은 약 1천300만t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다. 매년 26만t가량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있는데, 이는 연간 승용차 11만대가 내뿜는 분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 표·그래픽 참조
특히 인천 앞바다 갯벌의 잠재력이 높게 평가됐다. 742㎢에 이르는 인천 앞바다 갯벌의 유기탄소 저장량은 492만3천여t, 연간 유기탄소 침적률은 3만4천여t으로 갯벌이 있는 전국 해역 중 가장 높았다. 유기탄소 저장량은 현재 저장돼 있는 탄소량을, 연간 침적률은 매년 어느 정도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수치다.
인천갯벌 유기탄소저장량 492만t '전국 해역 최고'
인천 앞바다 갯벌에서 가장 많은 유기탄소 저장량과 침적률이 기록된 이유는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인천 앞바다에 큰 조수간만의 차가 있다는 점, 한강하구에서 유기물과 영양분이 유입된다는 점 등을 요인으로 예측하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권봉오 군산대 해양생물공학과 교수는 "인천의 갯벌은 어패류 등 1차 생산성이 뛰어날뿐더러 미세조류 광합성이 높아 탄소저장소로서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추후 갯벌이 IPCC로부터 국제적인 블루카본으로 인정받으면 인천 갯벌의 역할과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인천시와 '블루카본 프로젝트'
인천시는 탄소중립을 위해 지난해 '블루카본 프로젝트'를 시작한 상태다. 이 프로젝트의 키워드는 '잘피 숲 조성'과 '인천형 블루카본 개발'이다.
인천시는 블루카본이 언급되기 전인 2005년부터 잘피 복원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잘피의 수질 정화 능력에 주목했던 것인데, 잘피를 이식하기 위한 조건과 방법, 이식한 잘피를 번식시키는 방법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인천시는 이를 바탕으로 잘피 관련 특허 6건을 비롯해 해초류 이식에 대한 핵심적인 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인천시는 지난해 9월 옹진군 황서도 해역에 잘피 200수를, 지난 18일에는 옹진군 어평도 해역에 잘피 400수를 각각 이식했다. 잘피가 자리를 잘 잡고 있는지, 어느 정도 생존하는지를 분석한 후 어평도 해역 일대에 300여수를 추가로 더 이식할 계획도 갖고 있다. 황서도와 어평도는 모두 영흥화력발전소 인근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지역이다.
인천시는 '인천형 블루카본'을 개발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인천시가 주목하는 해양 생물은 다름 아닌 '해조류'다. 미역 등 해조류가 이산화탄소 흡수 기능이 있다는 건 여러 국제 연구를 통해 증명됐지만, 해조류 역시 블루카본으로 공식 인정되진 않은 상태다.
인천시는 이를 위해 인천대, 한국남동발전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운영 중이다. 인천대 연구팀이 육상에서 연중 생산할 수 있는 해조류 품종을 개발한 게 배경이 됐다.
市, 수질정화 잘피 연구… 황서도 해역등 이식계획
발전소 배출 CO2 해조류 양식에 활용… 칠면초 사업도
인천시는 육상에서 연중 생산 가능한 해조류를 활용해 한국남동발전 영흥화력발전소에 양식장을 만들고,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해조류 양식에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해조류 외에도 고부가가치 수산생물을 함께 양식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계획도 있다.
인천시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최근 '해양수산연구개발사업' 등 국가 공모사업에도 도전장을 낸 상태다. 공모에 선정되면 최대 5억원 정도의 연구비를 확보할 수 있다.
인천시는 이 외에도 개불을 이용해 갯벌을 정화 시키는 생태환경복원사업, 염생식물인 칠면초 이식 사업 등을 추진하며 블루카본 거점 도시로 나아가겠다는 방침이다.
구자근 인천수산자원연구소 자원연구팀장은 "오래 전부터 잘피 생태계 복원사업을 추진해온 건 인천시가 유일하다"며 "갯벌 등 해양생태계를 잘 갖추고 있는 인천은 블루카본 거점이 되기에 가장 적합한 도시"라고 했다.
이어 "영흥화력발전소 인근에 있는 어평도 해역 전체를 잘피밭으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 블루카본 관련 사업을 꾸준히 모니터링해 사업 범위를 더욱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