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곶면 행복마을관리소 윤우숙(왼쪽) 사무원과 주정미 지킴이가 길에서 만난 주민에게 안부를 묻고 있다. 2022.7.22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유서깊은 고장이라고는 해도 전형적인 농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주민들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환경에 순응하며 살았고, 마을의 오랜 풍경도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김포시 최북단 월곶면 군하리 얘기다.
군하리에 생기가 돈 건 지난 2020년 말부터다. 회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뭐라도 돕겠다면서 이 무렵부터 마을 곳곳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지킴이'를 자처한 이들은 주민들이 처음 누려봄 직한 생활편의를 제공했다.
지킴이들은 단순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약속된 업무영역에서 급여를 받고 하루 8시간 이상 일하는 어엿한 근로자 신분이다. 그렇기에 막중한 책임감과 마을에 대한 주인의식이 있었다.
앞서 경기도는 아파트가 없는 지역에 아파트관리사무소와 같은 주민서비스를 제공할 목적으로 기초지자체와 예산을 분담하는 '경기 행복마을관리소' 사업을 추진했다. 김포에는 월곶면과 김포본동, 대곶면 등 3곳에서 운영 중인데, 지킴이는 행복마을관리소 직원들을 가리키는 호칭이다.
주민서비스 제공하는 '경기 행복마을관리소' 아파트가 없는 지역에 관리사무소 같은 역할 수도꼭지·문고리 교체 등 주민 일상 스며들어
지난달 22일 오전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월곶면 행복마을관리소 사무실에 지킴이 5명이 도착했다. 관리지역은 군하리와 고막리로 면적만 따지면 동 한 개에 버금간다. 총 10명의 지킴이가 오전·오후조로 나뉘어 근무하는데, 각 조에서 한 명씩은 사무원으로 지원업무를 담당한다.
윤우숙(53) 사무원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또 오후 2시부터 오후 10시까지가 각 조의 근무시간"이라며 "중간에 근무가 겹치는 시간에는 일손이 많이 가는 공동업무나 인수인계 등을 한다"고 설명했다.
행복마을관리소는 주민들의 일상에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 수도꼭지나 문고리 교체, 간단한 집기 수리 같은 것들을 지킴이들이 해준다. 쓰레기 배출을 계도하면서 필요하면 잠복근무도 한다. 오며 가며 말벗은 기본이다.
어르신들이 병원에 다닐 수 있게 됐다면서 정말 좋아하시고 치료를 원하는 시간에 예약해주는 걸 특히 다행스럽게 생각하신다
이날 오전조 지킴이들이 평소보다 일찍 출근한 이유는 병원이송 서비스가 예정됐기 때문이다. 병원이송을 신청한 주민은 일흔아홉의 할머니였다. 최근 병환으로 거동이 불편해져 통진읍에서 치료받게 된 할머니는 객지에 사는 자녀 대신 행복마을관리소 지킴이들을 의지하고 있다.
김기철(66) 지킴이가 할머니를 부축해 차량으로 다가오자 운전석에 있던 이수복(67) 오전조장은 "좀 어떠셔"라며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할머니가 힘든 표정으로 "안 좋아"라고 답하니 이수복 지킴이는 "어머니 오늘 병원 갔다오면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다니셔야 해"라고 기운을 복돋았다.
이수복 조장은 할머니의 병원 접수까지 돕고 치료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다시 자택 앞에 내려줬다. 그는 "어르신들은 본인의 생년월일도 헷갈려 하시는 경우 많다. 내 어머니라고 생각하다 보니 이것저것 알아서 하게 된다"며 활짝 웃었다.
거동 불편한 할머니에 '병원 이송' 지원 "내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알아서" 웃음 젊은 엄마·아빠에 '아동돌봄서비스' 도
주정미(54) 지킴이는 "어르신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병원에 다닐 수 있게 됐다면서 정말 좋아하시고 치료를 원하는 시간에 예약해주는 걸 특히 다행스럽게 생각하신다"며 "노인들은 인터넷에 어둡고 혼자 힘으로 병원에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아 병원예약에 엄두를 못 냈던 것"이라고 말했다.
경력이 단절됐다가 행복마을관리소에서 제2의 인생을 연 그는 "사람들과 많이 접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삶의 보람도 늘었다"며 뿌듯해 했다.
주민들이 선호하는 서비스는 다양하다. 업무마감 시간까지 제공하는 아동돌봄서비스는 젊은 엄마 아빠들에게 소소한 여유를 선사하고 이불 빨래와 제초작업 등도 환영받는다.
피부관리 및 이미용 자격증을 보유한 조화선(65) 지킴이는 "이불빨래 같은 경우 어르신들이 들다가 다치실 수도 있는데 우리가 수거해서 배달까지 해드리니 너무 좋아들 하신다"며 "얼마 전에는 힐링마사지 행사를 했는데 '처음 받아본다'며 아이처럼 기뻐하시더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또 김기철 지킴이는 "코로나 때 방역에 땀 흘리고 여성들의 안심귀가를 돕는 등 주민 안전을 위해 일한다는 데 긍지를 느낀다"고 했고, 이수복 조장은 "내가 조금 더 움직였을 때 주민들이 더 행복해하는 걸 보며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김포시 주민협치담당관실 관계자는 "행복마을관리소는 이상적인 주민자치 모델이라 할 수 있다"며 "타 읍면동에서도 마을관리소를 설치해 달라는 요청이 많다"고 전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행복마을관리소는 일반주택가에서 아파트관리사무소와 같은 생활편의를 제공할 목적으로 추진되는 경기도 주관사업으로, 김포는 원도심인 김포본동과 도농복합지역인 월곶면·대곶면에 문을 열어 각 주민자치회가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도내 100여곳에 개설된 가운데 주민자치회가 운영을 맡는 방식은 김포시에서 최초로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