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시장은 한 달 전 취임하면서 소통을 강조했다. 이 시장뿐 아니라 모든 단체장이나 각 분야 조직의 리더들이 소통을 외친다. 그러나 대다수 '말뿐인 소통'에 그치고 만다. 그만큼 어려운 게 소통이지만 이 시장은 한 번엔 힘들더라도 사소한 것부터 하나씩 바꿔 나가겠다는 데 방점을 찍고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주간업무 취합 폐지·월례회의 대신 영상 대화
술 대신 커피 '캔미팅' 창의적 생각 이끌기
동물화장장 반대 주민 의견청취 집회 중단
이상일 시장 "조직 유연화 시민에 다가갈것"
불필요한 형식을 양산하는 경직된 문화를 지양하고 실효성 있는 유연한 조직문화를 지향하면서 일의 능률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 간부회의 축소·주간업무 취합 폐지
이 시장은 취임 직후 내부 공직자들로부터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동안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열렸던 간부회의를 2주에 한 번으로 축소했기 때문이다. 또 회의 때마다 필수적으로 제출해야 했던 부서별 보고서류를 없애도록 했다.
준비한 자료를 줄줄 읽는 형식적인 회의 대신 꼭 필요한 내용만 보고하는 간결한 회의를 진행하다 보니 기본 1시간은 훌쩍 넘기던 회의 시간은 30분 이내로 단축됐다. 회의를 위한 회의는 최소화하겠다는 이 시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무엇보다 직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건 주간업무 취합을 없앤 것이다. 이를 위해 매주 각 팀마다 보고용 문서를 만들고 요약된 문서의 내용을 보완하기 위한 보충자료까지 준비해야 했던 공직자들은 두 팔 벌려 환영하고 나섰다. 공직자 내부 게시판에는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익명의 한 공무원은 "공무원은 하늘이 두 쪽 나든 세 쪽 나든, 불합리하든 않든 기존에 하던 걸 그대로 기계적으로 하는데 주간업무 없앤 건 최고의 한 수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고 글을 남겼고 이 글에는 '이건 응원 댓글을 안 달 수가 없다', '과감한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등 수많은 긍정적 댓글이 달렸다.
다른 한 공무원도 "당연히 해야 하는 줄로만 알고 지금까지 해 왔을 뿐, 꼭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사실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획기적인 변화임엔 분명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 언제든지 'Ring my bell'
매달 열리는 월례회의에도 새로운 방식이 도입됐다. 이 시장은 휴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지난 2일 월례회의 대신 영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7급 이하 70여 명의 공직자와 만났다. 격식 없는 대화를 통해 직원들의 생각 또는 그들이 느끼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는 게 이 시장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다소 머뭇거리던 직원들도 차츰 편안한 분위기에 적응하며 질문을 쏟아냈다. 시장의 인생철학을 묻거나 휴가는 어떻게 보냈는지, 어떤 안주를 좋아하는지, 평소 아내와는 어떻게 소통하는지 등의 개인적인 질문도 이어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한 직원은 결혼 6년 차 가장으로서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고 정부의 공무원 감축 문제에 대한 시장의 생각을 묻는 직원도 있었다. 이 시장은 이들의 질문에 조직의 장이자 인생 선배로서 진솔한 답변을 내놓으며 한 시간 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 시장은 "마음을 열고 소통한다면 어떤 형식이든 문제 될 게 없다. 앞으로도 이런 자리를 자주 마련할 테니 자유롭게 대화했으면 한다"며 "내 휴대전화로 언제든 연락을 달라.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면서, 때론 맥주 한잔 하면서 소통하자"고 말했다.
지난 5일에도 이 시장은 민선 8기 용인시의 비전과 슬로건 등에 관해 직원들과 '캔미팅(can meeting)'을 했다. 술 대신 커피로 대체하며 딱딱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이끌어내기 위한 회의를 진행한 것이다.
■ 매주 금요일은 '캐주얼 데이'
최근 공직자들과의 대화시간에 이 시장은 한 가지 깜짝 제안을 했다. 활기찬 조직문화를 만들어 보자는 측면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출근해 보자는 것이었다.
이 시장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는 언젠가 끊어진다. 긴장감을 가지고 한 주를 보내는 것도 좋지만, 우리 일상에도 작은 여유가 필요하다"며 금요일엔 편안한 복장으로 출근하는 게 어떻겠냐고 운을 띄웠다.
이에 직원들이 박수로 화답했고 3일 뒤 곧바로 변화가 일어났다. 이 시장은 금요일인 지난 5일 스트라이프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시청에 나타났다. 이 시장뿐 아니라 간부급을 비롯한 거의 모든 공직자의 옷차림이 가벼워졌다. 정장은 사라졌고 구두는 로퍼나 운동화로 대체됐다.
이날 오전에 열린 간부급 회의에서도 정장 일색이었던 과거와 달리 편안한 차림의 옷을 입은 간부들이 회의장을 가득 채우는 이색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한 직원은 "우리 과장님이 이렇게 캐주얼이 안 어울리는 분인지 몰랐다"며 깔깔 웃기도 했고, 다른 한 직원은 "복장이 편하니 마음도 한결 편해진 것 같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팀장급 한 직원은 "청바지를 입고 출근해 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어색하긴 한데, 이런 사소한 변화가 직원들에게 전해지는 메시지는 분명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시는 이날을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을 '진·캐주얼 데이'로 지정, 공식 행사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유롭고 편안한 복장을 유지하도록 했다.
■ 궁극적 목표는 대 시민 소통
이 시장은 지난달 28일 시청 접견실로 처인구 이동읍 서리 주민 10명을 초대했다. 이들은 지난 한 달간 시청 앞에서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민간업체가 추진 중인 동물화장시설 건립을 반대하는 집회를 진행해 왔다.
이들을 초대한 이유는 당장 해법을 찾기 위한 게 아니었다. 대화의 자리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한, 정확히 말하면 들어주기 위한 이유에서였다.
주민들은 "동물화장시설이 마을 인근에 들어설 경우 주민들이 환경오염 피해를 입게 된다"고 하소연했고, 이에 이 시장은 "주민들의 우려를 알고 있다. 현재 관련 법을 자세히 검토 중인데, 주민들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하며 문제해결에 함께 노력하자고 했다.
주민들은 면담 직후 한 달 간 이어온 집회를 중단하고 시청 진입로 일대에 설치된 현수막도 모두 철거했다. 소통이 이끌어 낸 변화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시장은 같은 날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건립 사업이 추진 중인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영문리 지역의 주민들과도 대화를 이어갔다.
주민들은 국토교통부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주택개발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업 철회를 요구하며 시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도 이 시장은 주민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뒤 공청회 개최 등의 방법을 통해 주민들이 국토부나 LH와 소통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 시장은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시민과의 소통이다. 직원들과의 소통이 필요한 궁극적인 목표"라며 "내부적으로, 또 용인시의회나 경기도, 중앙정부를 넘어 시민들과 활발하게 소통한다면 용인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용인/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