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간 이어져 온 '대형마트 의무휴일제'가 전국을 흔드는 이슈로 부상했다. 윤석열 정부는 여러 정책 개정안에 대한 국민 제안 투표를 진행, 득표 상위 3건을 국정에 반영하겠다고 했는데 이중 1위를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차지한 것이다. 무려 57만7천415표를 받았다.
투표 마감 전부터 중복 투표 등 각종 논란이 일자 정부는 상위 3건을 별도로 발표하지 않았지만, 1위에 오른 안건인 만큼 시행 여부를 둘러싼 관심과 찬반 논쟁이 뜨겁다.
코로나19 사태로 소비 트렌드가 변화한 가운데 대형마트에 10년 전의 영업 규제를 적용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게 업계 목소리다. 반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소상공인들은 대형마트 영업 규제는 최후의 보루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달라진 대형마트 위상
국내 대형마트 성장의 역사는 경기도·인천시의 팽창과 무관치 않다. 1993년 서울 창동에 1호점을 개설한 이마트는 1996년 업계 최초로 용인에 물류센터를 조성한 이후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경기지역에 세를 불리고 나섰다. 2006년에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물류센터를 여주에 열 정도였다. 한때 이마트와 어깨를 견줬던 까르푸는 1996년 1호점을 부천 중동신도시에 개점했다. 1·2호점을 서울에 낸 롯데마트도 1999년 성남 분당신도시에 3호점을 내고, 3개월 만에 5호점을 구리에 조성하면서 경기도 진출을 본격화했다. 대구에서 출발한 홈플러스도 2000년 3호점과 4호점을 안산과 수원에 잇따라 개점했다.
대형마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신도시를 비롯한 대규모 택지 개발이 잇따라 경기도·인천시에서 이뤄지면서 지역을 막론하고 도시가 팽창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소비력이 커지자, 그 틈을 대형마트가 파고들었다. 좋은 서비스, 저렴한 가격, 쾌적한 쇼핑 환경은 많은 소비자들을 대형마트로 불러들였다.
대형마트가 빠르게 늘어나자 가장 큰 위협을 느낀 곳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다. 특히 바로 옆에 대형마트가 들어선 곳은 사정이 더 심각했다. 2010년 전통시장 인근에 대형마트가 입점하지 못하도록 규제한 유통산업발전법이 제정된 배경이다.
이후 2012년에는 한 달에 두 번 의무적으로 휴업하도록 하는 규제가 더해졌다. 백화점마저 위기의식을 느껴 리뉴얼을 추진할 정도로 대형마트의 위상은 대단했지만 '권불십년'이었다.
비대면·온라인 쇼핑 확산 여파 '줄폐점'
유통환경 변화 커… 관련법 실효성 도마
노동자 일감 감소 '을들의 전쟁' 치달아

코로나19가 결정타가 됐다. 비대면 소비가 확대되면서 대형마트 매출은 직격탄을 맞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됐지만 온라인으로 향한 소비자들의 발길이 다시 대형마트로 돌아오진 않고 있다.
경인지방통계청의 '6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경기도 대형마트 판매액 지수는 1월엔 123.5였지만 6월엔 94.5까지 낮아졌다.
문을 닫는 대형마트도 늘고 있다. 롯데마트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 전국 매장 12곳의 문을 닫았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3호점인 안산점을 폐점했다. 이마트 시화점 역시 올해 말 폐점을 앞두고 있다. → 그래픽 참조
"실효성 없어진 규제" VS "대형마트, 여전히 위협적"
10년 새 대형마트의 위상이 달라지자, 유통산업발전법은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다 윤석열 정부의 국민 제안 투표가 분수령이 됐다.이전과는 달리 유통산업발전법을 둘러싼 논쟁이 '을들의 전쟁'으로 치닫는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대형마트가 위축되면서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설 자리가 좁아져서다.
마트 직원들뿐 아니라 아웃소싱 업체에 소속돼 대형마트에서 판촉을 담당하던 직원들도 각 브랜드 업체가 대형마트 대신 온라인 비중을 높여가자 일감이 줄어드는 추세다. 이에 회사뿐 아니라 노동자들도 대형마트 규제 완화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전통시장·소상공인 "규제완화 반대" 고수
소비자 1천명 설문조사 "현행 유지" 29.3%
골목상권 활성화 효과 물음에 34% "있다"
지난 2일 한국노총 전국이마트노조는 "일자리 유지와 고용이 가장 큰 복지"라며 대형마트 출점 제한 및 휴무일 온라인 배송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대형마트는 의무휴업일엔 온라인 주문 배송을 할 수 없다.
전통시장·골목상권 소상공인들은 규제 완화 움직임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커머스 강세에 대형마트가 위기라고 하지만 전통시장·골목상권이 느끼는 어려움은 더욱 큰 가운데, 대형마트 의무 휴업제마저 사라지면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소매 유통업체 5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2년 3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 중 수퍼마켓의 전망 지수는 51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는 86이었다. 수퍼마켓의 경기 전망이 대형마트보다 훨씬 좋지 않았던 셈이다.

지난 10일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상인연합회,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대형마트는 변화한 유통 환경에서 피해자인 양 위장하고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유통산업발전법의 목적이 퇴색한 것처럼 논란을 부추긴다"며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및 온라인 배송 규제 완화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오세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대형마트 의무 휴업제는) 골목상권과 동네 수퍼마켓, 전통시장 소상공인의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이자 울타리"라며 "사회적 안전망을 팽개치면 골목상권·전통시장의 붕괴와 유통 질서의 파괴를 초래해 사회 공동체 구성원에게 더 큰 불편과 불이익이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에 여전히 일부 소비자들은 전통시장이나 동네 수퍼마켓을 대체 장소로 선택한다는 점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더한다. 그나마 대형마트가 문을 닫을 때 전통시장 등으로 향하던 소비자들마저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지난 6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1년 이내 대형마트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소비자 67.8%는 대형마트 영업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현행대로 유지돼야 한다고 응답한 소비자도 29.3%였다. 영업 규제가 전통시장·골목상권 활성화에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에도 48.5%는 효과가 없었다고 답했고, 34%는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에 전통시장에서 장을 본다는 응답자는 16.2%였고, 동네 수퍼마켓·마트에 간다는 응답자는 10.2%였다. 25.8%는 식자재마트나 중규모 수퍼마켓, 12.1%는 온라인 쇼핑을 대신 이용한다고 응답했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