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국방개혁안으로 경기북부에 미활용 군용지가 늘어나면서 이 부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치할 경우 슬럼화로 도시흉물 및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으며, 가뜩이나 국가 안보 규제로 인해 낙후된 북부지역을 위해서라도 공공시설 등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관광·도시개발, 주민 편의시설 등으로의 활용과 더불어 특별법 제정, 정보공유 시스템 구축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독일의 경우 병영막사를 박물관으로 전환해 프러시아의 역사를 전시하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사례가 있다. 가까운 인천의 경우 월미산을 중심으로 조성한 월미공원은 과거 군부대를 인천시가 매입, 공원으로 조성해 주민들에게 휴식공간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인천 부평공원과 부산시민공원도 군공여지를 시민 휴게공간으로 전환한 성공적 사례로 꼽힌다.
특히 철원빙상경기장은 군부대 유휴부지를 활용하고자 민·군·관 상생협력 프로젝트로 추진돼 지역 주민과 군 장병들에게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밖에 서울 대방동과 남양주 퇴계원읍 등 기존 군부대는 도시개발을 통해 공공주택으로 계획하기도 했다.
軍 "국방계획 변경땐 언제든 사용"
허훈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는 "군 부대가 있는 지자체와 주민의 경우 대다수 오랫동안 피해를 감내하며 살아온 곳이 많은 만큼,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관군 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해 활용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면서 "시가지의 경우 택지개발이나 산단 조성, 경관 좋은 곳은 관광지 개발, 기타 지역은 체육 및 교육시설 등 기존 부지의 유산적 가치를 활용하는 방법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경기연구원 관계자는 "정부의 국방혁신 4.0 추진으로 미활용 군용지 발생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효과적으로 활용해 지역의 경제발전과 주민 삶의 질을 제고시켜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군과 지자체가 정보 공유시스템과 협의체를 구축해 공공목적으로 활용하는 창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미활용 군용지 활용 과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자체로선 군이 사용하지 않는 시설물이 생기면 조속한 활용방안을 찾길 바라지만 군은 국방 및 배치계획이 변경될 경우 언제든 유휴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자 군이 미활용 군부지 매각에 나서도 지자체로선 적기에 활용방안을 찾기 어려운 구조다.
국방부는 유휴지가 발생하면 국유재산관리 훈령에 따라 해당 토지를 재산관리인에게 인계하고, 매각 여부 등을 결정한다. 지자체로선 군이 매각을 결정하고 난 뒤에야 해당 토지의 매입 또는 활용 계획을 세울 수 있는데, 관련 정보를 알 수 없고 군의 매각 통보 후 예산이나 계획을 세우면 시기를 놓쳐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정보제공, 보안 등 사유 제한 측면"
미활용 군용지에 남아있는 군 건축물 철거와 토양오염 정화도 과제다.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라 오염토양의 정화책임은 원인자에게 있고, 대부분 미활용 군용지의 경우 군이 정화 작업을 해야 하지만 국방부가 정화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고 계획에 반영하려면 통상 수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경기북부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군이 미활용 군용지를 매각하면서 '국유재산법에 따른 감정평가 금액'이 아닌 '기부대양여 사업관리 지침의 양여 시점 평가액'을 적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면서 "대부분 자연녹지인 미활용 군용지를 팔면서 종 상향된 평가액을 받겠다는 건 군이 결국 지자체를 상대로 땅 장사를 하는 셈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가 서울에선 용산공원 특별법을 만들어 개발하는 반면, 재정이 열악한 경기북부 지자체들엔 국방부 땅을 비싸게 매입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형평성에 어긋난 행위"라며 "국가가 안보를 위해 희생한 경기북부를 생각한다면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미활용 군용지에 대한 정보제공은 향후 군의 재활용 가능성·보안 문제·부동산 투기 우려 등의 사유로 제한되는 측면이 있다. 다만 공익적 목적에 부합하고 정보 취급에 유의한다면 지자체에 적절한 수준의 정보제공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미활용 군용지 관련 특별법 제정은 국회, 정부 유관부처, 지자체 간에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하지은·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