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집신짝 끟을고
나여긔 웨왓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땅에
남쪽하늘 저밑엔
따뜻한 내고향
내어머니 계신곧
그리운 고향집
-윤동주의 詩 '고향집'(만주에서불은), 1936년 1월6일-
최근 발행된 책 '동주의 시절'(류은규·도다 이쿠코, 토향 刊)을 펼치면 처음 나오는 시와 사진이다. 곱디고운 어린아이가 깔끔한 한복과 단정한 신을 신고 동생을 한 손으로 끌어안은 모습이 너무 예쁘다.
어찌 보면 둘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시와 사진의 조합이지만 사진의 내력을 살피면 이 둘의 조합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진은 인천에서 살고 있는 류은규 사진가가 '간도'에서 수집한 것이다. 고향 평양을 떠나 멀리 낯선 땅 '간도'로 이주한 사진 속 주인공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평양에서 찍은 사진이 간도에서 발견돼 현재 인천에 사는 이에 의해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류은규 작가와 인천 관동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아내 도다 이쿠코 부부는 1990년대 초반부터 '간도'지역에 머무르며 혹은 드나들며 그곳의 사진을 찍고, 그곳에서 사는 이들의 사진을 수집해왔다. 최근까지 5만여 점 이상의 자료를 갖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다. 5만여 점 가운데는 사진뿐 아니라 필름, 유리건판 등이 있다.
도다 이쿠코 관동갤러리 대표는 "아마 사진 속 주인공과 멀리 만주에서 이 시를 썼을 때 시인(윤동주)의 심정이 비슷했을 것"이라며 "아련한 추억을 더듬듯 빛바랜 사진을 보며 시인 윤동주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알아갈 수 있는 기획"이라고 소개했다.
인천 류은규 사진가 현지방문 5만여점 자료 수집 세상에 첫 공개
韓민족이 집단거주했던 헤이룽장·랴오닝·지린 등 동북 3성 일대
생활사 다큐 '간도사진관 시리즈'로 윤동주 깊이 있는 이해 도와
'나 여기 왜 왔노' 등 5부… 동생 윤일주 詩·시인 유골봉환 경로도
책 표지 제목 위에는 '간도사진관 시리즈'라는 문구와 함께 '001'이라는 숫자가 붙어있다. 류은규·도다 이쿠코 부부는 30여년 동안 간도에서 모아온 5만여 점의 사진 자료와 기록을 책으로 출판할 계획인데, 이번 '동주의 시절'은 그 첫 번째라는 의미다.
즉 이번 책은 간도를 알아가기 위해서 펴내는 생활사 다큐멘터리 사진 자료집의 첫 책이며, 윤동주가 태어나 자란 곳의 생활사를 기록한 사진을 보며 윤동주를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부부는 간도를 알리기 위해 택한 인물이 윤동주라고 설명했다.
윤동주는 간도에서 태어나 자랐고, 죽어서도 간도에 묻혔기 때문에 윤동주만큼 대중적인 인물도 없다. 때문에 책에는 윤동주의 사진은 없다. 다만 다른 사진이 윤동주가 그 시를 썼을 때의 간도와 그곳 사람들의 모습을 알 수 있게끔 도울 뿐이다.
바닷가 사람
물고기 잡어 먹구살구
산꼴에 사람
감자 구어 먹구살구
별나라 사람
무얼 먹구사나
-윤동주 詩 '무얼먹구사나', 1936년 10월-
간도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간도는 두만강과 압록강 건너 우리 민족이 집단으로 거주한 일대를 일컫는 지명인데 정확한 구역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지금은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지명이다.
일본이 세운 괴뢰정부인 만주국 시절 간도성(間島省)이라는 지명이 있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가 됐다. 지금의 헤이룽장, 랴오닝, 지린 등 조선인이 거주하는 동북 삼성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류은규 작가가 간도에 주목하고 촬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의 사진까지 수집하는 이유는 뭘까. 재중동포들이 부모가 사망하면 사진을 태워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가로서 세상에 한 장밖에 없는 사진이 소실된다는 사실이 그는 너무 안타까웠다고 한다.
이 책 시리즈에 '사진관'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도 비슷한 이유다. 사진관은 지난 시절 중요한 기록물 보관소의 개념을 가졌던 곳이다.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하기 이전 사람들은 기록을 남기려면 꼭 사진관을 찾아야 했다.
사진관에서 일한 사진사들은 초상사진은 물론, 결혼식, 회갑 같은 단체행사와 학교나 단체행사, 광고, 풍경 등 다양한 영역을 다뤘다. 그렇게 촬영된 필름 원본은 모두 사진관이 보관했다.
류 작가는 간도의 현지 사진관으로부터도 많은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이번 책 '동주의 시절'은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나 여기 왜 왔노'를 시작으로 '간도의 일상'(2부), '만주국의 엷은 평화'(3부), '배움의 나날'(4부), '동주 생각'(5부) 등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5부에는 윤동주의 10살 아래 동생인 윤일주의 시도 담겼다. 그리고 윤동주의 유골이 일본에서 돌아온 봉환 경로도 그림으로 실었다.
오줌쏘개디도
빨래 줄에 걸어논
요에다 그린디도
지난밤에 내동생
오줌쏴 그린디도
꿈에가본 어머님게신
별나라 디도ㄴ가
돈벌러간 아버지게신
만주땅 디도ㄴ가
-윤동주 詩 '오줌쏘개디도'-
오양간 당나귀
아-ㅇ 앙 외마디 울음울고
당나귀 소리에
으-아 애기 소스라처깨고
등잔에 불을 다오
아버지는 당나귀에게
짚을 한키 담아주고,
어머니는 애기에게
젖을 한목음 먹히고
밤은 다시 고요히 잠드오.
-윤동주의 詩 '밤', 1937년 7월-
윤동주가 고향에 머물면서 쓴 시 가운데, 그곳 풍경이나 시대 상황을 전해주는 시가 이 책에 많이 담겼다. 예쁜 동시도 많다. 그런데 그의 동시는 결코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시대를 눈여겨보는 냉철한 시선이 깔려있다.
책에는 윤동주 사진은 없지만, 윤동주가 태어나 자라며 본 풍경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도다 이쿠코 대표는 "그런 모습을 통해 우리는 시인이 살아 숨 쉬었던 시절을 상상하며 간도의 나날을 더듬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 편의 시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듯이, 빛바랜 한 장의 사진에도 수많은 사연이 숨어 있다"면서 "사진 속 사람들과 대화하듯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그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