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여 년 전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힙(hip)'했다. 화려한 레이저 조명과 일렉트로닉 음악, 신성한 듯 신명 나는 퍼포먼스가 한데 어우러져 작품을 둘러싸고, 그 속에서 1천여 개의 모니터가 한꺼번에 켜지는 순간 어떠한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는 강렬함과 세련됨이 느껴졌다.
18.5m의 원형 탑에서 쉴새 없이 돌아가는 모니터 영상은 1988년 당시에 작품이 줬을 법한 전율을 선사했다. 그렇게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4년 만에 관람객 앞에서 다시 불을 밝혔다.
재가동한 '다다익선'… 새 기술 도입 가능성 열려있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중앙에 자리한 다다익선은 수리를 반복해 오다 지난 2018년 보존과 복원을 위해 가동을 중단했다. 수명이 있는 기계를 오랜 시간 작동시키다 보니 생긴 불가피한 문제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내·외 전문가의 의견 등을 거쳐 '작품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되, 불가피한 경우 일부 대체 가능한 디스플레이 기술을 도입'하기로 보존·복원의 방향을 정했다. 모두 1천3대의 브라운관(CRT) 모니터로 만들어진 작품은 중고 모니터와 부품 등을 확보해 손상된 737대의 모니터를 수리하고 교체했다.

더는 사용하기 어려운 위쪽 부분의 작은 모니터 266대는 외형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평면 디스플레이(LCD)로 바꿨다. 하지만 이미 작품에 쓰였던 모니터와 관련 부품은 생산이 중단된 상황이다. 중고품을 최대한 확보하고 있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다.
권인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언제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새로운 기술이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서 대체 디스플레이 기술을 적용하는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18.5m 원형탑 4년만에 모니터 풀가동
737대 손상 수리·266대 LCD로 교체
그럼에도 이번 다다익선의 재가동은 '미디어 아트의 보존 처리'라는 논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계기가 됐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미디어 아트의 역사를 다시 쓴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며 "이번 다다익선의 보존 처리 과정이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좋은 역할을 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737대 손상 수리·266대 LCD로 교체
다다익선은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1주일에 4일, 하루에 2시간가량 가동된다. 영상도 4점만 선별해 상영하던 것에서 원래 제작됐던 8점 모두를 상영하게 됐다.

200여 점 아카이브 기획전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 구세대와 신세대가 만나 하나의 협연을 펼치는 백남준의 작품 세계에서 다다익선 역시 수많은 사람의 협업과 열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다다익선의 재가동을 기념해 구성된 기획전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은 설치 전의 과정부터 현재 운영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아카이브 200여 점과 구술 인터뷰로 구성돼 있다.
아카이브 기획전 '…즐거운 협연' 눈길
34년간 작품 운영 보존·복원 인터뷰도
34년간 작품 운영 보존·복원 인터뷰도
작품 '한국으로의 여행'은 1984년 30여 년 만에 한국을 찾은 백남준이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해 취재진과 팬들을 만나고, 선친의 묘를 찾아가는 모습을 기록한 것으로, 이 시점 이후 백남준은 한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다.

이와 함께 다다익선을 설계한 건축가 김원, 백남준 작품의 테크니션 이정성, 영상을 직접 제작한 폴 개린, 다다익선 최초 설치 당시 학예업무를 총괄한 유준상 등 다다익선과 관련한 여러 인물의 인터뷰들이 상영된다. 다다익선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고, 그들이 기억하는 백남준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등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34년간 작품을 운영하며 발생했던 여러 문제에 미술관이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한 기록과 보존·복원 과정을 기록한 영상도 다다익선에 대한 이해를 돕고, 특히 백남준의 활동과 구술기록, 연주 등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동시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함께 전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새로운 시선을 만나볼 수 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