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헌법은 인권을 불가침의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의 개념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라고 정의했다.
법전 속 정의로운 인권이 세상에 구현될 때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는 자주 '현실의 벽' 앞에 박탈된다. 인권에도 자격이 필요하고, 계급이 나뉜다. 그래서 인권은 침해라는 단어와 밀접하다.
이러한 간극을 메우려던 사람들이 30년 전 수원에 '다산인권센터'라는 인권단체를 만들었다. 경기도에 인권이란 씨앗을 뿌렸고, 어느덧 한 세대가 흘렀다. 다산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의 차별과 배제뿐 아니라, 이에 저항하며 인권의 가치를 지키려 했던 흔적들이 보인다.

인권의 싹을 틔우다
다산은 김칠준 변호사 등이 설립한 다산합동법률사무소의 부설 기구로, 지난 1992년 '다산인권상담소'란 이름으로 첫 활동을 시작했다.
이보다 몇 해 전 수원에 법률사무소를 개소한 김 변호사는 노동·시국 사건과 관련한 법률 지원을 주로 하면서, 노동인권과 관련한 전문적인 상담과 지역에서 벌어지는 노동운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다산인권상담소가 문을 열게 된 계기다.

이렇듯 초기 다산의 활동은 노동과 관련한 법률 상담과 지원이 주를 이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노동영역을 넘어선 사회 전반의 인권 현안에 관심을 쏟게 된다.
특히, 인권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 자체가 적었던 90년대부터 인권교육사업에 매진한 것이 특징이다. 다산은 이 당시 사회복지대학을 열거나 청소년 대상 인권교육을 추진하고, 수원인권영화제를 개최하는 등 시민사회에 인권이란 가치를 공론화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했다. 이후 2000년, 현재의 이름인 다산인권센터로 독립하게 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 인권활동을 한다고 하면 유쾌하지 않은 분위기가 있었다. 어떤 사건에 성명을 내고 시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권 감수성과 관련한 체계적인 교육도 필요했다. 인권교육이 체계화되고, 이런 인식들이 확장하면서 노동인권과 시국사건뿐 아니라, 인권 전반에 대한 활동을 해야겠다는 내부 논의 끝에 다산인권센터란 이름으로 독립하게 됐다."(송원찬 전 상임활동가/현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장)

2000년대 들어 다산은 국가폭력에 대응하고, 노동·이주노동자·장애인 인권 등 활동 영역을 크게 넓혔다. 특히, 수원에 본사를 둔 삼성전자의 노동조합 탄압에 대항한 활동과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촉발한 대추리 사건에서 지역민과 연대해 투쟁한 경험 등이 지역 인권단체로서 다산의 정체성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이 크게 있었다. 활동 당시 모든 부문의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아 반대 싸움을 했다. 미군기지 확장을 막기 위한 싸움 안에서 인권 운동의 담론을 만들고, 인권단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부딪히는 것뿐 아니라 정체성과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최성규 전 상임활동가/현 4·16재단 간사)

합동법률사무소 부설기구로 출발… 2000년 '센터'로 독립
인권교육 체계화… 이주노동자·장애인 권리 활동영역 확장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박근혜 대통령 퇴진 '수원 촛불'
30주년 보고서 발간… 반올림 등 다른 단체의 모태되기도
사람과 사람을 잇다
다산은 인권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역할을 자처했다. 특정 영역의 인권 이슈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단체가 아닌 덕에 다산은 연대를 기반으로 지난 30년간 일일이 열거하는 게 어려울 만큼 다양한 인권 현안에 대응해 왔다. '수원 촛불'은 다산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지난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수원역 광장에서 처음 타올랐던 경기시민들의 촛불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거쳐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다산 3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25일 열린 토론회에서 발표된 '다산인권센터 30주년 보고서'는 다산의 이 같은 역할에 대해 "인권운동 내에서 중요한 의제를 먼저 발굴하고, 다른 단체에 활동을 제안하는 촉진자"라고 평가했다.
다산의 이러한 역할은 코로나19 시국에 더욱 두드러졌다. 다산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발생하는 각종 인권 침해 요소를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안팎에서 이 같은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활동을 곧장 이어갔다.

실제로 다산은 지난해 11월 코로나19라는 재난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던 노숙인, 이주노동자 등에 대한 경기도 지원정책의 한계를 지적한 토론회를 열어 정책적 보완을 요청했다.
또한,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를 구축한 다산은 국가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해 코로나19 사망자가 늘어났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국가에 '기억과 추모할 권리'를 요구했다.

다산이 뿌린 인권이란 씨앗은 또 다른 인권단체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일종의 인큐베이팅 역할을 한 것인데, 다산은 경기복지시민연대, 인권재단 사람, 반올림, 인권교육 온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의 창립에도 기여했다.
무엇보다 다산은 지역민의 삶에 주목했다. 실로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이 차별받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사람과 사람 간 거리를 좁히려는 활동도 꾸준했다.
다산이 참여한 경기이주민공동대책위원회가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민들의 구술생애사를 책으로 엮어 발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과정에서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다산의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도 생겨났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다니고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그전부터 입시 위주 교육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는데, 고등학교를 가보니 딱 입시교육이 전부였다. 학교를 자퇴한 2019년 다산인권센터에서 '문득 인권'이라는 인권교육을 듣게 됐다. 학교 밖 청소년이 된 이후 삶의 공백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 그 공백을 인권교육을 듣고, 다산에서 자원활동을 하며 채울 수 있었다."(김별 벗바리)
이러한 발자취를 남긴 다산이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한 세대가 가는 동안 인권의 영역은 점점 확장했고, 시대의 요구에 따라 인권과 관련한 현안도 변화를 거듭해 왔다. 그간 지켜온 '인권에는 양보가 없다'는 신념으로 다산도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모두가 인권을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바람처럼 인권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됐다. 반대로 나의 권리를 앞세우며 타인의 삶을 배제하는 일, 차별과 소외가 당연한 분위기가 됐다. 인권이 역행하는 시대, 더 선명한 인권을 위해 나아가겠다."(랄라 상임활동가)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