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평생 생사고락을 함께한 이발소는 제 인생이나 다름없습니다."
포천시 양문리 시골의 한 도로변에서 자그마한 이발소를 운영하는 이응수(68)씨는 26년째 한 자리를 지키며 손님을 맞았다.
빨강, 파랑, 하양 삼색등이 돌아가는 이발소는 그가 처음 자신의 손으로 장만한 가게다. 이발소 안에는 한눈에도 세월을 짐작하게 하는 가죽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손때 묻은 이발 도구들은 그의 인생을 들려주는 듯했다.
10대 시절 가세가 기울며 일찍 생활 전선으로 내몰린 그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주고 기술을 가르쳐 주는 곳은 이발소밖에 없었다.
이씨는 "아버지의 빚보증으로 하루아침에 3남 1녀의 가장이 되자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며 "당시 15살짜리 아이에게 숙식 제공은 꿈의 일자리로 보였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시작한 이발소 생활은 마치 숙명처럼 그의 인생이 돼버렸다. 그동안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고 가정도 일궜다. 무엇보다 그에게 큰 보람으로 남는 건 봉사였다.
이씨는 "내 가게를 마련하고 생활이 차츰 안정되면서 항상 가슴에만 담아뒀던 일을 실천해보자는 생각에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고 봉사로 오히려 얻는 게 더 많은 것 같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손때 묻은 이발도구 반평생 생사고락
의정부 등 돌며 홀몸노인 머리 손질
NGO·인명구조 활동… 표창장 다수
그가 처음 한 봉사는 서울과 의정부, 동두천 등지를 돌며 홀로 어렵게 사는 어르신들의 머리를 손질해주는 일이었다. 평소에도 이발소를 찾는 어르신 손님에게는 대부분 무료로 이발을 해주곤 한다.
어느 순간 환경보호에 관심이 생긴 그는 환경 NGO(비정부기구) 활동에도 열심이다. 우연한 기회에 배우게 된 스킨스쿠버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봉사로 이어졌다. 여름이면 피서객이 많이 찾는 마을 인근의 포천천과 영평천에서 물에 빠진 인명을 구한 것도 수차례다.
그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구조자 중에는 매년 이발소 앞에 선물을 두고 가는 이들도 있다. 그가 한사코 답례를 거절해 몰래 놓고 가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따뜻한 봉사로 받은 기관 표창만 해도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이씨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보면 남 일 같지 않아 봉사를 시작했지만 가보처럼 아끼는 이발소 의자처럼 언제나 한결같았으면 한다"며 "힘이 닿는 한 봉사는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포천/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