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정부는 실외 마스크 착용 전면 해제를 선포하고 코로나19 재유행의 고비를 확연히 넘어섰다고 자평했다.
코로나19는 햇수로 벌써 3년이나 우리 일상을 지배했다. 마스크를 벗는 일이 오히려 더 어색해졌을 만큼 우리 일상 곳곳이 바뀌었다. 이렇게 달라진 일상만큼 공공의료체계도 코로나19를 전후로 많이 변했다.
감염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켜냈지만, 일상적인 공공의료체계는 치명타를 입었다. 이를 복구하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공공의료기관이 가진 과제인데, 특히 1천400만 인구를 책임지는 경기도의료원이 느끼는 부담은 더욱 크다.
누가 뭐라 해도, 코로나19 위기극복의 1등 공신은 경기도의료원과 같은 공공의료였다. 경기도의료원도 코로나19 감염병 대응 현장의 최일선에서 경기도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누구보다 코로나19 극복을 기뻐해야 할 정일용(61) 경기도의료원 원장은 공공의료체계의 회복이 더디기만 한 것이 안타깝다. 지난 23일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에서 정 원장을 만났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은 그의 얼굴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은 지난 2020년 1월 비상 진료체제에 돌입해 올해 5월23일 전담기관 해제까지 햇수로 3년을 지역사회 감염병 확산과 예방에 '올인'했다. 만성 질환자들이 떠나면서 도의료원의 입원·통원 환자 수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절반 이상 떠난 환자들은 돌아올 기미가 없다.
도의료원이 코로나19에 전력을 다한 3년의 세월은 환자들에게 '울며 겨자먹기'로 비용 부담이 큰 인근 민간 병원으로 떠나게 만들었다. 대거 환자 이탈은 공공의료 위기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환자는 떠났고, 공공의료 기관의 책무만 남은 셈이다.
코로나19는 공공의료의 위기
정 원장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공공의료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며 "공공의료에 감염병 대응은 기회가 될 줄 알았지만, 결과적으로 도의료원의 모든 시설과 인력을 감염병 대응에 투입하다 보니 고혈압, 당뇨, 관절, 치매, 뇌졸중 등 취약계층 만성 질환자들에 대한 진료를 전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수원병원의 경우 코로나19 유행 전까지만 해도 외래환자가 일 평균 60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200~300명을 넘지 않는다. 다른 지역 의료원과 각지 공공병원들도 마찬가지"라며 "환자 숫자가 줄어들면 당연히 입원이나 병상 가동률이 떨어지게 된다. 의료원을 찾는 환자 수의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 원장은 이어 "공공의료기관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진료 실적을 회복하려면 4년이 넘게 걸린다는 국립중앙의료원 연구 결과가 나왔다. 우리 의료원의 상황도 마찬가지"라며 "그렇다면 이 기간 동안 적자를 어떻게 보전할 것인지,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해있다"고 덧붙였다.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한 중앙정부가 책임지고 손실 틈 메워야
또 유행 찾아와 초기 대응 맡기면 도민·국민에 피해 돌아갈 것
경기 인구수 비해 병원 부족… 권역별 종합병원 1곳씩 늘려야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지방의료원의 수익은 28.9% 감소했고, 평균 월별 병상이용률도 지난 1월 36.3%에서 지난달 40.6%로, 더디게 회복하고 있다. 지방의료원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진료실적을 회복하려면 52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또 유행 찾아와 초기 대응 맡기면 도민·국민에 피해 돌아갈 것
경기 인구수 비해 병원 부족… 권역별 종합병원 1곳씩 늘려야
정 원장은 "올해 6개 병원의 예산 규모가 4천300억원인데, 이 중 국비와 도비로 지원을 받는 금액은 290억여원 정도뿐"이라며 "공공의료기관이라고 해도 지금까지 전체 예산의 10%에도 미치지 않는 지원을 받고 병원을 겨우 운영하다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부진에 빠지면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정 원장은 결국 공공의료원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한 중앙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그는 "도의료원 나름대로 정상 궤도에 올라서기 위한 노력을 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생긴 재정 적자의 틈은 도와 중앙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메워야 한다"며 "재차 감염병이 찾아와 공공의료기관에 초기 대응을 맡긴다면 회복하기 어려운 희생의 시간을 견딜 수밖에 없다. 결국 피해는 도민,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한센인 치료한 젊은 의사, 경기도 공공의료 재건에 목소리 내다
정 원장은 외과 전문의다. 그는 학창시절에 의과대학생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고 웃었다. 그저 의대 갈 성적이 돼 지원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의사로 걸어온 길은 사회의 약자를 위한 공공의료, 그 외길만 걸어왔다. 한센인을 치료하는 의사로 젊은 시절을 보냈고, 남양주의 합성 섬유 공장인 원진레이온의 직업병 피해를 구제하고자 설립된 원진재단의 구리 원진녹색병원에서 16년 간 원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구리 원진녹색병원에서 퇴직할 줄 알았는데, 경기도의료원에서 4년째 일하고 있다"며 "공공의료에 대한 생각은 돈이 없어도 치료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에서 시작됐다. 대학에서 의사 국가고시를 준비하면서 삶의 방향을 정했고, 이익을 추구하기보단 치료 못 받는 사람들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도의료원 원장을 맡은 뒤 수술보단 정책 협의와 병원 경영에 매진하고 있지만, 구리 원진녹색병원 원장 시절엔 집도 수술도 잦았다. 의사가 9명뿐인 소규모 병원이다 보니 원장이 당직의사로 주말도 없이 병원을 지켰다고 한다. 정 원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원진레이온 산재 피해자들의 암을 진단하고 직접 위암 수술을 한 경험을 소개했다.
정 원장은 "원진녹색병원에서 위암 진단을 받고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보내야 하는 환자가 있었는데, 옮기지 않고 치료를 받겠다고 하셔서 직접 위암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를 해드린 기억이 있다"며 "또 한 번은 주말에 당직을 서다 초기 치매 환자 한 분이 떡이 기도에 걸려 급히 절개 수술을 해서 회복시켰던 적이 있었다. 10년도 넘은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고 했다.
이 같은 삶의 궤적을 토대로 정 원장은 현재 경기도 공공의료가 겪는 현실을 직시하고, 누구보다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7개 광역지자체 중 경기도가 종합병원 단위로 가장 많은 6개 병원을 운영 중이긴 하지만, 도민 인구수에 비하면 병원 수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정 원장은 "서울도 여러 특수한 병원을 다 합쳐 13곳이지만, 속을 내밀히 들여다보면 경기도의 공공의료는 인구수에 비해 규모가 작고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의 양도 많다고 볼 수 없다"며 "강원도만 하더라도 의료원이 원주, 강릉, 속초, 삼척, 영월까지 5개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경기도 31개 시·군을 12개 중진료권역으로 나눠 도의료원 각 병원을 지역 책임의료기관으로 정해 필수의료를 담당하고 있지만, 3개 권역은 병원이 전무하다"며 "최소한 중진료권역 별로 도의료원 산하 종합병원이 1곳씩은 더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공의료의 가장 큰 목적은 '취약계층 지원'에 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공공병원은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취약계층을 지원해야 한다"며 "다른 병원에서 하지 않는 중증 장애인 치과 진료나 특수건강검진, 산부인과 특화 사업 등 민간 병원에서 하기 힘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최우선으로 공공의료 기관의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보다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정 원장은 "우리 가족들은 내게 단 한 번도 개인 병원을 열어 돈을 많이 벌어오라고 한 적이 없다"며 "당연히 의사는 나처럼 사는 줄 알고 따라와 준 아내와 딸, 아들에게 고맙다. 앞으로도 치료받지 못해 아픈 사람이 없도록 계속 고민하면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글/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사진/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정일용 원장은?
▲국립중앙의료원 이사▲원진직업병관리재단 이사▲한국보건의료원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 위원▲원진녹색병원 원장▲연천군 보건의료원 외과장▲한양대 의과대학 부속 서울병원 의사▲대한나관리협회(현 한국한센복지협회) 충북지부 관리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