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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승진훈련장서 포사격 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경인일보DB
경기 북부지역에는 '아시아 최대 사격훈련장'으로 불리는 포천 영평사격장(로드리게스 사격장)을 비롯해 320여 곳에 달하는 군 사격장이 자리하고 있다. 경기도 내 전체 사격장 380여 곳 중 85% 정도가 북부에 집중된 셈이다.

과거엔 마을에서 목숨을 잃는 피해가 생겨도 '안보'라는 이름 아래 덮어 둬야 했다. 시대가 바뀌고 주민들이 차츰 목소리를 내면서 정부의 시선도 달라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투쟁은 필사적이었고 마침내 '군용 비행장·군 사격장 소음 방지 및 보상에 관한 법률(군소음보상법)' 시행을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피해 당사자인 주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최근 찾은 영평사격장 주변 마을은 이런 진전에도 불구 여전히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사격장을 둘러싼 갈등은 달라진 게 거의 없었으며 오히려 정부와 군에 대한 불신만 팽배했다. 승진사격장 주변도 냉랭하긴 마찬가지였다.

군소음보상법이 시행되고 훈련도 줄었지만 문제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언제쯤 경기 북부지역에 포성과 불안이 사라지고 최소한의 사람다운 생활, 주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회복될 수 있을지 살펴본다.

주민 '냉랭' 정부·軍 불신… 약속 깬 야간사격 답변도 없어
대전차 연습탄 집 안방 떨어지고 유입된 불발탄 폭발 '공포'
法보상 기준 현실 동떨어져… 전문가 "피해 규모 파악 먼저"
피해는 '소음'만이 아니다
지난 8월 말 영평사격장에서는 한미연합 훈련이 실시됐다. 대규모 통합화력 훈련으로 전차와 자주포에서 밤낮으로 포탄을 쏟아냈다. 헬기에서도 포격이 있었으며 심지어 공격기(A-10)도 동원될 태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한 달 전 주민들과 한 약속이 허무하게 깨진 순간이었다. 심지어 야간 사격을 항의하러 간 주민들은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주민과의 상생을 부르짖던 정부와 군은 입을 닫고 있다. 북부지역 군 사격장에서는 소음만이 주민을 괴롭히는 게 아니다. 소음과 진동은 기본이며 유탄과 도비탄, 군 차량 도로 점유, 먼지, 산불, 환경오염 등 요인은 다양하다.

주변에 20곳이 넘는 사격장과 비행장까지 있는 이동면의 한 초등학교는 학생들이 만성적인 난청을 호소하는가 하면 교사와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가 매우 낮아 교사들이 재직을 꺼리는 '기피 학교'가 된 지 오래다.

영평사격장 앞 구호4
포천 주민들이 영평사격장 정문을 바라보며 소음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

2015년 영평사격장 주변 영북면 소회산리·야미리와 영중면 성동리에서는 대전차 연습탄과 미사일이 밭과 폐쇄된 기도원, 심지어 집 안방으로 잇달아 떨어져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2012년 4월 포천 시내 한 고물상에서는 사격장에서 사용된 불발탄이 유입돼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폭발이 일어나 업주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관광객이 자주 찾는 산정호수 인근은 훈련 기간 대규모 군 병력과 차량, 장비 이동으로 일대 도로가 통제될 때면 1~2시간씩 교통체증을 겪기 일쑤라 지역경제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2014년 영중면 영평리에선 아파치 헬기 저공비행으로 축사와 주택 지붕이 날아가고 농작물에 피해가 발생하는 사고가 잇달았다.
'화'만 부른 군소음보상법
군 헬기장이 있는 양주시 가납리 주민들은 지난해 12월 군소음보상법 시행령(안)이 나오자 불만이 폭발했다. 법 제정 당시 기대와 달리 보상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소음대책 지역은 하루 동안 소음 평균치로 정해지는 데 이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소음피해를 호소하는 가납리 상당수 지역이 빠지게 된다. 게다가 헬기장 주변에는 소음측정소가 10곳에 불과해 광범위한 가납리 일대 소음피해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한 주민은 "측정소에선 고작 2번 정도 측정하는 게 전부라고 하는데 이렇게 해서 주민들이 겪는 소음피해를 어떻게 똑바로 잴 수 있겠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보상금을 정하는 기준도 훈련기간, 전입 일자, 근무지 등 다양한 변수를 포함하고 있어 얼마든지 감액될 수 있는 점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시 관계자도 "근무지나 사업장 위치가 군용비행장 정문으로부터 100㎞ 이내면 30%를 감액하고, 100㎞가 넘을 때는 보상금 전액을 삭감하도록 하고 있어 주민들의 반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 보상금 산정은 2010년 대법원 판례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그간 물가상승 등의 현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 이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돼 왔다. 일부에서는 군사시설로 똑같은 피해를 보는데 미군 주둔 지역과 차별을 두는 건 부당하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용산공원법'의 경우 보상비를 100% 지원한 사례도 있다.
해결책은 정말 없나
군 사격장 주변 주민 피해 대책이 나올 때마다 주민은 주민대로, 군은 군대로 불만을 쏟아낸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양측이 만나더라도 늘 평행선만 달리다 결국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갈등만 반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우선 주민들이 겪고 있는 피해를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측면으로 나눠 정확히 파악한 후 주민이 필요로 하는 대책과 지원사업 중심으로 지원방안과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한 주민피해 규모를 산정할 때 사격장과 떨어진 거리에 따른 부동산 가격 하락과 기회비용 등을 반영하거나 사격장 운용 여건과 주변 지역 영향 등을 비교분석 지표로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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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영평사격장(로드리게스훈련장) 주변에 거주하는 한 주민이 20여년 전부터 수거해 마당에 걸어둔 탄피 모습. /경인일보DB

군 사격장 주변 주민들은 대체로 소음과 진동 등 실생활에 지장을 받는 것에 대해 큰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시·군 관계자들은 "주민들이 특히 야간 사격에 대해 극도의 불만을 표출한다"고 입을 모았다.

군 사격장 실태조사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주민피해 유발 요인에 따른 피해방지와 주민지원 방안이 각각 마련돼야 하나 우선 시행 중인 군소음보상법에 주민지원사업이 반영되고 피해 지역 지정기준과 보상금 지급기준도 조정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수십 년 간 국가안보 요충지 역할을 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묵묵히 인내하며 희생하고 있는 경기 북부 주민들이 최소한의 쾌적하고 안전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군과 정부는 대책 마련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일상 회복이라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김환기·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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